"알림: Good4Joy 프로젝트는 위키를 기반으로 하는 독립 웹사이트(good4joy.org)와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love_of_jesus) 두 곳에서 콘텐츠를 제공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최근 문서들이 있고, 위키는 후에 업데이트하려고 하니 참고하세요."

사무엘하 6 (거룩하신 하나님)

Good4Joy
  • 본문: 사무엘하 6:1-11 (웃사의 죽음)
  • 일자: 2016/7/22

도입 (간증, 질문)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라는 베드로전서 3:15 말씀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가끔 이 말씀을 되새기며 복음을 나누는 마음을 점검하고 스스로 권면하기도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예수님을 믿은 후 2012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과 복음의 기쁜 소식을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전하며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며 너무나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2주 여행을 마치며 미국으로 돌아오기 하루 전 마지막으로 아버님께 복음을 전했습니다. 2주간 경험으로 저는 자신있게 복음을 잘 전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다 듣고 난 후 영접에 대한 아버님의 대답은 No였습니다. 저는 매우 실망했고 화가 났는데, 그만 화를 참지 못하고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믿지 않으신 것에 대한 실망과 제가 화를 낸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합쳐져 무거운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왔어야 했습니다. 후에 제가 좋아하는 베드로전서 3:15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뒤에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심각하게 마음에 담았다면 불미스러운 상황을 피할 수 있었겠다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잘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아픔 경험을 통해서 얻었었는데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생각이 났습니다.

본문

오늘 본문을 요약하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다윗 왕은 당시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던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기로 합니다. 다윗은 장정 3만 명을 동원하여 궤를 수레에 얹어 옮기기 시작했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음악을 연주하며 기뻐합니다. 그런데 수레를 끌던 소가 발을 헛디디자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궤를 붙잡았습니다. 그 행동에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궤를 만진 웃사는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다윗은 두려워하며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지 못하고 대신 오벧에돔의 집에 옮겨놓습니다.

참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쁨으로 궤를 옮기고 있었고 웃사는 흔들리는 궤가 넘어지지 않게 하려한 것 같은 데 하나님께서는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는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찾아보며 은혜받기를 기원합니다.

무엇이 잘 못되었나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민수기와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의 궤는 함부로 만지면 안 되고 옮기려면 덮고, 궤 옆 고리에 막대를 끼워서 어깨에 메고 옮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은 궤를 수레에 올려 소로 끌고 갔으며 만지면 죽으리라 했는데 만졌습니다.

7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웃사의 '잘못함' 영어 성경에는 'irreverent' 즉 궤를 만진 불손함에 벌을 내리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인원을 동원했고, 새 수레와 여러 악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열심을 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이나 규례 자체를 몰랐거나 잊었다기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 즉 그분의 거룩하심을 잊고 말씀을 가볍게 여기며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됩니다.

2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궤 위의 그룹들 cherubim, 천사들 사이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 위대하신 여호와 이름을 언급하며 사무엘서 저자는 그것이 얼마나 특별하고 거룩한 것인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에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으로 말씀을 잘 지켰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죠.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거룩함을 잊고 말씀을 가볍게 여기게 되었을까요?

거룩함을 잊은 이유 (두가지)

교만함

다윗은 온갖 역경을 지난 후 드디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막강한 블리셋과 전쟁에서 승리하며 인생 최고의 순간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승리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이지 다윗이 위대하기에 이룬 것이 아닙니다. 만일 다윗이 이 사실을 잠시라도 잊었다면 하나님 앞에 겸손함이 아닌 교만함으로 그분의 거룩함을 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이나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역대상 13장에도 궤를 옮기는 과정에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승리에 겸손함을 잊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승리의 순간에 겸손함을 잊고 실수 한 다른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5) 예수님께서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베드로는 16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대답하고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는 최고의 칭찬을 듣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예수님께 베드로는 항변하다 23절에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며 이번에는 최악의 야단을 맞습니다. 예수님의 칭찬으로 들뜬 마음이 베드로 스스로 고백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지극히 높은 권위 앞에 겸손해야 함을 잊게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 16절 바로 뒤 17절에 보면,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즉 베드로의 고백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용은, 우리가 여기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도 삶에서 승리나 혹은 고난의 터널을 지나며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 앞에 항상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사역이나 삶에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허락하실 때 우리는 모든 영광을 홀로 받기 합당하신 분께 돌려야 합니다. 모든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것이고 주시기 것도 거두시는 것도 그분의 주권이라는 것을 명심하며 하나님 앞에 머리 조아릴 때 더 높여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은 그분의 거룩하심을 잊게 하고 말씀을 가볍게 여기게 합니다. 그리고,

친숙함

사무엘상 6장 (19), 하나님의 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오기 전 궤 안을 들여다보다가 70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 후 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옮겨져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이상 있었다고 합니다. 몇십 년의 긴 시간이 지나며 70명이 죽은 그 사건의 기억은 퇴색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웃사가 그 사건을 직접 보고 경험하지 못했었다면 그 심각성을 더 쉽게 잊어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집에 있었던 언약궤에 친숙해졌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며 웃사의 마음에 하나님의 궤는 멋진 장식장으로 변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친숙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잊고 수레 위에 궤가 흔들릴 때 두려움 없이 그 궤를 만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친숙이 볼손을 낳는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라는 미국 속담이 떠오릅니다.

크리스천 여론조사 기관인 바나 그룹의 2014년 한 조사의 의하면, 대부분의 미국인은 거룩이 무엇인지 모르고 크리스천들도 거룩함의 중요성이나 의미를 이해하거나 거룩한 삶을 갈망하지 않고 있다 합니다. 그 조사는 이렇게 결론 짖고 있습니다. 오늘날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크리스천의 수는 매우 드물다.

"매우 드물다." 참 무서운 결론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단지 미국교회만의 문제가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거룩, 심판, 두려움을 빼고 자기 편의데로 하나님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우상숭배. 주님께 헌신이 없는, 어렸을 때 부터의 오랜 교회 생활하는 종교인. 헌신, 섬김, 전도 보다는 자기 편한 것, 건강, 성공, 가족, 세상적 복을 바라는 이기주의와 기복신앙. 적당히 하는 신앙 생활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가르치지 못하는 두려움. 성경의 무서운 경고들을 무시하며 마치 평강이 없는데도 "평강하다 평강하다 (예6:14)"하는 모습같습니다. 혹, 하나님의 궤를 만지기 전 웃사의 모습은 아닐까 두렵습니다.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답하십니다. 누가복음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잘못된 친숙함에 빠져 있지 않나 스스로 마음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께 헌신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순종하며 좁고 험한 길을 택할 때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대로(사35:8) 위를 걷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것을 믿습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은 교만과 친숙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고 그것은 죽음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결론

11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웃사를 치셨던 같은 손이 오벧에돔과 그의 집안에 복을 주십니다. 복을 주시는 것도 그리고 그 복을 주시는 환경을 만드시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 직후에 오벧에돔이던지 누구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궤를 존귀하게 여겼을 것이니까요.

제가 아버님께 복음을 전하다 교만해 져서 화를 내며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은 후 약 석달 뒤, 어머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어머님과 함께 침례를 받으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에 주인 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주권자 하나님. 저의 부끄러운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지각을 추월하는 선을 행하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렸습니다.

맺겠습니다.

교만이나 잘못된 친숙함으로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무섭고 가혹한 형벌입니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겸손과 헌신으로 지키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독수리 날개같은 보호요 꿀 같은 축복인 것을 저희는 믿습니다. 이런 믿음을 주시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그 은혜없이는 한시도 설 수 없는 저희임을 고백합니다.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경외함으로 높여 드릴 때 당신의 거룩하심으로 더 가까이 끌어 당겨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과 더 친밀해 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관련 문서

검색: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