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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0 (바른 선지자)
바른 선지자
- 본문: 예레미야 19:14 - 20:6
- 일자: 2017/10/26 (목)
- 파일:예레미야20.m4a
서론 (부르심, 사명)
불순종과 우상 숭배로 이스라엘에 마지막 심판이 오고 있다는 하나님의 경고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마지막 때에 심판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예레미야를 세우신 것 처럼, 세상 마지막 때에 복음 전도자로 저희를 세우셨습니다. 당시 예레미야 같은 바른 선지자도 있었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스훌처럼 "평화로다 평화로다" 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더 많았던 것처럼, 오늘날도 사람들의 간지러운 귀를 긁어 주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기에 우리의 사명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바른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본론
본문 요약
예레미야가 도벳이라는 곳에서 돌아왔는데, 도벳은 우상 숭배를 위해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가증한 장소였습니다. 그곳에서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고 돌아와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집 뜰, 즉 성전에서 하나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이에 제사장 바스훌 (성전의 총감독, 대 제사장 다음으로 높은 직책으로 주로 성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을 벌주는 역할)이 예레미야를 때리고, 목에 나무 고랑 (stocks, 큰 칼)을 채우며 박해 합니다. 다음날 풀어주는데 풀려난 예레미야는 바스훌의 이름을 "마골밋사빕 (Terror on Every Side, 사방으로 두려움)" 이라 하며,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하고 바스훌, 그의 가족, 친구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육체적인 박해를 처음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선지자와 박해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 같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배울 수 있는 것,
바른 선지자는 심판의 경고를 그대로 전함
19:15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며, 모든 백성 앞에서 그들이 순종하지 않았기에 재앙을 내리겠다는 경고와 그리고 자신을 박해하는 거짓 선지자 바스훌에게, 20:4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며, 저주와 (4-6), 심판의 말씀을 그대로 전 합니다. 우리도 복음을 바로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믿고 따르는 이에게는 좋은 소식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저주의 소식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그리고 공의의 심판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락하는 세상에서뿐 아니라 예레미야가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심판의 경고를 전한 것 처럼 오늘 교회에 만연한 기복신앙, 뜨뜻미지근한 불순종과 이기주의가 만들어 내는 우상숭배에 우리는 성경의 경고를 바로 전해야 합니다. 저는 셀 리더 혹은 교회 리더라 불리는 것에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제 부족함과 더불어 심판의 경고를 전하지 못하고 귀를 간질이는 잘못된 복음을 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바른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하나님 심판의 경고 말씀을 그대로 전하면 어떤 결과가 옮니까?
바른 선지자는 박해받습니다
예레미야는 구타를 당하고 목에 큰 칼을 차는 박해를 받습니다. 구약의 다른 선지자들도, 복음을 전하는 사도행전의 제자들도 박해받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어려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셨던 예수님도 복음을 전하시면 박해받으셨습니다. 심판의 경고를 전하면, 물론 회개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거부하고 오늘 본문의 바스훌 처럼 겉으로든 속으로든 박해합니다.
그렇다면 바른 선지자를 왜 박해 할까요? 우리는 자신의 부끄러운 죄를 감추려 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회개의 말씀은 그걸 들춰 내려 하니, 마음을 찌르니, 거부나 박해는 죄인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구유에 놓인 아기 예수를 보며 시므온이 예언합니다. (눅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선포하실 회개의 메시지, 복음이 우리의 마음의 생각 즉 죄성을 드러낸다는 것이죠. 복음은, 바스훌이 제사장이지만 거짓 선지자인것을, 겉 모습은 멋진 바리세인이지만 속으로는 외식하는 종교인을,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살인자, 교회 존경받지만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포로노를 보며 간음하는자, 돈, 명예, 쾌락, 자기 사랑의 가증한 우상 숭배자를 ... 복음은 죄인의 마음을 찌르고 우리의 속마음을 드러냅니다. 바스훌이 그리고 백성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미워하고 박해했듯 죄인은 죄가 드러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복음 전도자를 자연스럽게 박해 합니다. 그런데, 바스훌은 제사장으로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회개와 심판의 말씀이 선포되면 믿지 않는 사람뿐 아니라 믿는다고 하는 이들도 박해합니다. 바스훌이나 바리세인처럼, 교회에서 자신의 위치나 사리사욕을 위해 혹은 자신의 믿음이 가짜라는 것이 드러나니까 마음이 불편한 것이죠. 그러므로 교인이라도, 세상에 속해 있다면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 사랑을 받으며, 세상이 좋으니 회개, 심판을 전하는 전도자를 미워할 것입니다.
(요 15:18, 1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바른 선지자는 (1)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그대로 전하고, (2) 박해받습니다. 그리고, (3)
바른 선지자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는 박해에 굴하거나 맞서 싸우거나, 타협하지 않고 바스훌의 얼굴에 대고 심판의 경고를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소개하는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듣고 돌로 쳐서 자기를 죽이려는 이들을 보며,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과 타협이나 굴복이 아닌 도리어 그들을 위해 기도해줍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데로, 십자가에서 본을 보여주신 데로, 스데반 집사는 악을 선으로 이긴 것이죠. 스데반 집사를 이어 다른 제자들도 자신들의 십자가를 지고 박해에 타협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오늘날도 한 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목숨을 잃는 순교자 약 십만 명이라 합니다. 그들은 타협하지 않고 목숨 걸고 복음 전하며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꼭 목숨이 아니더라도, 성도들은 직장에서, 이웃에서, 손해나 박해에 굴하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복음을 전파합니다.
바른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 심판의 경고를 그대로 전하고, 박해받지만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결론
그런데, 예레미야는 박해를 견딜만한 특별히 강한 사람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실 때, (1:6)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했고, 내일 본문 (20:7-12) 조롱, 치욕, 모욕을 당하는 박해를 피하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레미야를 박해에 타협하지 않을 수 있게 했을까 찾아보며 결론으로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강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성도)
(1:9) "손을 내밀어 입에 대시며 ... 입에 두신 말씀", 하나님께서 말씀을 직접 예레미야에게 입에 두셨다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넣어 주신 말씀이기에,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하나님께서 입에 두신 말씀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는, 말씀을 선포할 수밖에 없는 신성한 강요 (divine urge)가 느껴집니다. 사도 바울도 비슷한 고백을 합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떤 개인의 의지나 능력이 아닌 그보다 훨씬 뛰어난 하나님의 강권 (prevailed divine power),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권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1:8) 성령이 임하면 제자들은 권능을 받고 예수님 증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닌 성령님의 권능, 하나님의 강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이죠. 성도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 말씀이신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에 성령으로 중생한 성도는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고는,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게 하는 하나님의 강권, 성령님의 권능을 좀 더 살펴보면, (렘1:17)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 "Do not be terrified by them, or I will terrify you before them."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내 너를 두렵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박해 받을 것이라 말씀하시며,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성령님의 권능은 사람 보다 공의의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게 합니다. 또한, (1:8)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구원하시며 함께하시겠다 약속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 10:22)"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의 권능은 세상보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 믿고 신뢰하게 합니다.
예레미야는 박해받은 후 바스훌에게 경고를 또 전하는 것처럼, 전도자는 박해받으면 더 전합니다. (행 5장) 복음을 전한다고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가 채찍으로 맞고 박해받은 제자들이 두려워하거나 타협하며 복음 전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기뻐하며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매일 전도하기와 가르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박해로, 성령님의 권능, 하나님의 강권을 더 체험하니 성도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으로 즐거워하며 주님이 이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마 5:11, 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박해받으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도, 히브리 기자의 표현처럼, 세상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히11:38).
반대로, 거짓 선지자나 거짓 성도는 하나님의 강권, 성령님의 권능이 없으니, 바른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고 가짜인 것을 숨기기 위해 삶으로 전도니 관계 전도니 하며 박해 피하는 방법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당시는 예수님 믿는 다는 자체가 이미 미움의 대상, 박해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박해 없는, 예수님을 따르는 비용 없는 복음으로, 교회는 성령님의 권능 없고, 형식적인 주일 예배나 식사 기도는 너무 중요한데 주님의 지상 명령 전도 않는 불순종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간지러운 귀를 긁어 주는 거짓 가르침을 따라가며, 시간이 흐를수록, 예레미야나 제자들처럼 좋은 열매 맺는 전도자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스훌이나 바리세인들처럼 외식하며, 이기주의, 기복신앙, 뜨뜻미지근한 더러운 열매 맺으며 박해자가 되어갈 것입니다. 말세에 거짓 가르침 많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런 가르침을 따르며 세상은 더 악해지고, 교회에는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는 교인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며 회개할 때이고, 성도는 성령님의 권능에 의지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심판의 경고, 바른 복음을 전해야 할 때입니다.
맺음
거짓 선지자는 심판받을 자들에게 거짓 축복을 이야기하고, 오늘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지만, 후에 그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반면, 예레미야처럼 바른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그대로 전하며 사람들의 박해 받지만, 굴 하거나 타협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들을 향해 긍휼의 눈물을 흘립니다. 거짓 선지자와 바른 선지자. 저와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인지요?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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