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것

Good4Joy
이동: 둘러보기, 검색
무척 좋아하던 산악자전거

저는 등산, 캠핑, 스키, 골프 등 아웃도어를 좋아 했습니다. 2002년부터는 산악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무척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흐르는 땀과 상쾌함, 쉼 없이 올라 정상에서 느끼는 성취감, 나무 사이의 좁은 오솔길을 빠르게 내려오는 스릴 등등 ..... 산악자전거에 점점 빠져서 주말에는 물론 주중에도 시간 만나면 자전거를 가지고 산에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는데 어깨뼈와 갈비뼈가 부러져 응급실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제 머리에는 오직 언제 나아서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있나 하는 생각만 있었습니다. 몇 주 후 깁스를 풀자마자 바로 자전거로 산을 올랐습니다. 자전거로 산에서 내려오며 얼굴에 부딪히는 감미로운 바람을 느끼며 세상에 이것보다 재미있고 좋은 것이 또 없을 것이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것

등산로에서 만난 임마뉴엘의 십자가

예수님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먼저 제 마음에 찾아와 주셨습니다. 어느 해 직장 부서 이동으로 산호세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언 듯 교회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이사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를 찾았고, 저는 나이가 꽤 들어 교회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성경 공부를 통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그리고 제가 얼마나 나쁜 죄인인지를 알았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조금씩 알고 느껴가며 기뻤습니다. 그러다 교회를 나간 후 약 3년 후쯤에 (사 6:8)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말씀을 묵상하며 이사야의 고백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하나님께 저의 삶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좋으시기에 자연스러운 선택이고, 또한 그것은 나의 선택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조금씩 더 알아 가며 저의 삶에 많은 변화가 시작되었고 지금도 변하고 있습니다. 저밖에 몰랐던 제가 남을 생각할 줄 알아가고 있고, 받는 것을 좋아했는데 주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아 가고 있고, 화내는 것에 부담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은 부끄러워 말할 수 없는 죄들에서 자유하며 저의 삶은 더 큰 기쁨과 만족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너무나 어리석고 부족한 저마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가끔 감격의 눈물이 흐를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아직도 가끔 산을 오릅니다. 세상에서 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키도 더 크고 싶습니다. 아직도 죄의 유혹에 넘어가는 저를 보며 하나님께 부끄럽고 죄송스럽습니다. 하지만 믿는 것은, 저의 어떤 부족함이나 약함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저는 염려 없습니다. 그분이 좋으시고, 그분이 완벽하시고, 그분이 사랑이시고, 그리고 그분이 신실하시기에 그분의 인도로 저는 기쁨으로 의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처럼요. (시 23:6) 내 평생에 주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정녕코 나를 따르리니 내가 주에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감사한 것들

친구와 가족이 함께하는 추수감사절

하나님께 감사한 것 너무 많습니다. 요한복음의 끝에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모두 책에 담으려면 세상의 공간이 부족하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몇 가지 나눕니다.

아이들 교육

예전에 저에게 가장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들 중의 하나는 아이들 교육이었습니다. 인격적으로 보나 지혜로 보나 너무 부족한 저였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어떻게 하나, 학교에서 잘 못된 친구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 공부를 못해 뒤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 걱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항상 느꼈습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화를 낼 때도 있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심한 상처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잘못하고 있다는 것도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마치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단순합니다. 아이들이 예수님만 제대로 알면 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이고 그들은 풍성한 삶을 누리리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며 평화로운 삶, 남을 섬기는 삶, 이해하는 삶, 사랑하는 삶, 풍성한 삶, 그리고 겸손한 삶을 살다가 나중에는 천국에 사는 그런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공부 잘하고 사회에서 성공했는데 항상 쫓기는 삶, 욕심의 삶, 오해의 삶, 미움의 삶, 그리고 교만의 삶 살다가 종국에는 지옥까지 가는 끔찍한 반대되는 것도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지는 쉬워졌습니다. 말씀을 읽고 가르치며 기도합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말하는 것을 듣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행하는 것을 보고 행한다고 하니 저도 감사하게 기쁘게 그렇게 하게 됩니다. 저도 좋고 아이들도 좋고 ….. 하나님의 모든 것은 항상 win-win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

회사에서 정리해고 (layoff)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매니저에게 그 통보를 받은 날은 제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날 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알아가기 시작하였고, 하나님께 많이 감사하고, 그리고 기쁨의 삶을 살고 있었기에 그 사건에 더욱 놀랐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그 분노, 슬픔, 부끄러움, 그리고 걱정이 반나절 밖에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어려움에 같이하시는 하나님을 느꼈을 때 솟아나는 기쁨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제 마음은 평안, 감사, 기도, 그리고 희망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자전거를 타다 허리를 심하게 다쳐 여러 달을 집에서 누워 있어야 했던 적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때 저는 항상 함께하시며 위로하시고 육체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었고 저는 기뻐하며 심지어는 기뻐서 눈물도 흘렸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 - "It is well, with my soul (내 영혼 평안해)"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죄에서 자유함

전에 저는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도둑질, 부모님께 무례함, 남을 속임, 욕심, 화냄, 또한 너무 부끄러운 것들이라 여기 쓰지 못하는 죄들 ...

하나님의 율법은 굴레가 아니고 저의 삶의 윤택을 위한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을 알아가며 (욕심) 돈에서 자유하고, 걱정에서 자유하고, 불법에서 자유하고, 저의 육체의 욕심에서 자유 하는 것, 죄에서 자유 하는 것 ...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 :) 서서히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아갑니다.

지금도 죄를 짓습니다. 하지만 전과 다른 것은 제가 죄를 짓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끄럽고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한 생각이 들기에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겠다 마음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서 자유할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또한, 죄에 쓰러지는 내 연약함 때문에 죽어야만 하셨던 예수님을 떠오르게 하고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스스로 죄에서 구원받을 수 없기에 ... 십자가 ...

  •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내가 하지 않아도 됨

전에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결정, 그에 대한 책임, 아이들 교육, 주위 환경, 사고, ….

하지만 이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마음이 편합니다. 저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되는구나 알아갑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더 어렵고 불편한 것이로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은 구속이나 불편함이라기보다 제가 기쁘고 풍요롭게 살기 위한 진정한 guideline이라는 것을 알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마 11:3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는 말을 깨달아 가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이 희망으로

이제는 죽음 후가 두려움이나 무지가 아니고 천국의 희망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가끔 허락하시는 천국의 기쁨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들)이 천국에 가면 영원히 계속된다고 하니 얼마나 가고 싶은지요. 죽고 싶다는 심정과는 조금 다른 또 "잘 표현할 수 없는" 입니다 :)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분들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분들도 미워하거나 해를 주겠다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고 축복을 빌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여러 가지 차이가 있고 혹은 오해가 있을 수 있어도 제 안의 마음은 이해와 사랑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인격이기에 실수하거나 죄의 모습이 나오지만, 전과 다른 것은 변명하거나 그것을 미움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다음에는 잘해야겠다 마음먹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에서 희망으로...

풍성한 삶

걱정하지 않으니 바쁜 것이 없고 삶이 더 여유롭고 풍성해졌습니다.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TV, 신문, 인터넷 등의 수많은 정보로 채우지 않아도 제 삶은 풍성하고, 남을 이해시키려고 혹은 변명하려 투자하는 시간이 필요 없습니다. 내가 잘못했으면 사과하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진실을 아십니다. 그러니 성경공부, 기도, 예배, 성도 간의 교제, 혹은 전도에 시간을 더 써도 실질적으로는 더 여유로운 삶이 됩니다. 때론 그렇게 실천하기 힘들지만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더 알아가는 것이 풍성한 삶임을 깨달아 갑니다.

  • (요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질문입니다

질문을 몇 가지 드립니다.

  • 혹시 아직 이 기쁨을 알지 못하시나요?
  • 죽음 후에 천국에 들어가실 것을 확신하고 계시나요?
  • 하나님의 기쁜 소식(복음)을 아시나요?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 교회나 주위에 믿는 분을 찾아보세요. 분의 일생일대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저런 인간들 때문에 안 믿어

라고 생각하신다면 커다란 오해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친구나 친척을 만나면 이 이유로 교회를 찾지 않는다고 하여 정말 안타깝습니다. 믿는 것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교회는 병원

교회를 병원과 비교합니다. 병원에는 병 든 사람이 병든 사실을 알고 병을 고치고자 찾아가는 곳입니다. 병원에는 의사 간호사들이 계시지만 환자들도 계십니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은 병이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 환자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사실을 깨닫고 용서를 받고자 혹은 용서를 받고 찾아가는 곳입니다. 용서를 받고 거룩하게 되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죄를 짓습니다. 아직도 죄인입니다.

병원과 다른 것은, 병원에서는 환자가 불치병이라, 혹은 의사의 오진으로 낫지 않고 죽는 경우도 있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성도들은 모두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리고 죄에서 치료가 되어가며 인격이 변해갑니다. 하지만 아직도 약해서 죄를 짓습니다.

가짜 성도

불순한 목적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도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그런 불순한 목적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의 끝은 결코 좋을 수가 없습니다.

주위에 교회는 다니는데 인격이 변하지 않거나 분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을 사랑하지 않거나 (좋은 것을 알면서도 분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니) 아직 진정으로 믿지 않는 (그 기쁨을 모르는 것이니) 분일 수 있습니다. 사실 크리스천에게 사랑은 가장 큰 계명이니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그 소중한 것을 당신에게 나누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뻐하고, 겸손하고, 삶이 변해가고, 주려고 하고, 그리고 복음을 분에게 전하려 하는 분들 주위에 많이 계십니다. 그리고 분을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 주신 예수님에 초점을 맞추시고 하늘의 복을 받으세요.

저의 예

교회에서 존경스럽지 못한 행동을 하시는 분을 가끔 보며 저분이 과연 크리스천 인가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어떤 분에 비해 인격적으로 나은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그분의 나은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 부족한 부분을 생각하면 저의 기준대로라면 저도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저의 부족함보다 남의 부족함을 더 크게 보고 탓하는 제 죄성에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죄인이기에 죄를 지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을 사시면서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으셨습니다. 인간 중에서 유일하게 죄없이 완벽한 삶을 사신 분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렇게 바르게 사셨어도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창으로 찌르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희 안에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을 보고 싶어 하고, 오해하고, 그리고 심지어는 해하려고 하는 마음이 저희 모두에게 있는 죄성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고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다고 합니다 (We sin because we’re sinners).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혹시 핑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불의한 교회나 교인 때문이라는 것이 핑계 인지 마음을 살펴보세요. 혹시 하나님이 필요 없고 내가 혼자 잘할 수 있다는 마음은 아니신지요. 성경에서 가르치는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교만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부르심에 순종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