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21-24 (예수님의 기쁨)

Good4Joy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저와 여러분의 최고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한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 천국에 잔치가 열린다 (눅 15:7)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화를 통해 집 나간 탕자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잃어버린 동전을 찾았을 때, 그리고 99마리를 뒤로하고 한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의 기쁨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하나님을 크게 기뻐하게 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론 (주님의 기쁨)

(눅 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예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성경에 여기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육신으로 사신 생애에 여러 번 기뻐하셨겠지만, 여기에만 유일하게 기록하고 있으니 이 사건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본문을 통해 그 기쁨을 좀 더 자세히 찾아보겠습니다.

본문 분석

  • 본문: 눅 10:21-24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칠십인(NIV, ESV 72인, 개역개정, KJV 70인)의 제자를 세우시고, 교육 후, 전도 여행을 보내십니다. 제자들은 여행을 통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고 돌아와 기뻐하며 예수님께 보고 합니다 (눅 10:1-20). 그리고, 21-24절은, "예수님의 감사 기도" 내용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rejoiced in the Holy Spirit)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기뻐하시며" (ESV "he rejoiced, NIV, "full of joy", KJV "Jesus rejoiced")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의 단어는 ἠγαλλιάσατο (발음: ēgalliasato) 입니다. Grace Community Church 존 맥아더 (John Macarthur) 목사의 설명에 의하면 이 헬라어 단어의 기쁨은 "매우", "격렬한(?)" 기쁨의 표현이라 합니다. 이 헬라어 단어는 성경에 4번 쓰이고 있습니다.

  • (눅 10:21) 오늘 본문
  •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이 구절은 (요 8:31-59)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는 예수님 가르침의 일부로 "나의 때" 즉 예수님의 복음사역, 십자가와 부활의 구원을 보는 아브라함의 "기쁨"의 표현입니다.
  • (행 2: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행 2:14-36)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에서, 다윗의 시편 16편을 인용하며 구원의 기쁨을 표현합니다.
  • (행 16: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바울이 감옥에서 기적으로 풀려 나자 간수가 자살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전한 복음을 듣고 그와 온 집안이 믿어 구원을 받고 간수가 기뻐하는 장면입니다.

4 경우 모두 "구원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으로 돌아가면, 제자들이 전도 여행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기뻐하는데 주님은 (20절) 그보다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권면하십니다. 그리고,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구원자 (메시아 예수님)와 구원의 진리(복음의 능력)을 알아가는 것을 보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감사의 기도

(21)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천지의 주재이신 (Lord of heaven and earth) 하나님의 통치하심 (sovereignty)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같은 표현이 성경에, (1) 오늘 본문, (2) 마 11:23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 그리고 (3) 행 17:24 (바울의 아덴에서 전도), 3번 쓰이고 있습니다.

이것을 (1) 제자를 통해 보이신 예수님의 기적들, (17-20절) 혹은, (2) 예수님의 모든 사역을 가르키는 것이라는 두 해석이 있는데, 뒤 23, 24절로 보아 전자로 해석하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후자로 해석해도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 당시 혹은 현시대 평균보다 나은 이들 세상적 지혜로 즉 교만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 반면 어린 아이들 예수님의 제자들, 즉 겸손하게 주님을 따르는 이들입니다.

아버지의 뜻 하나님께서 통치 주관하심으로 숨기시는 것도 나타내심도 그분의 뜻, 주권입니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하나님의 모든 계시, 즉 성부께서 성자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 우리도 그 권능을 받아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지식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 수도 있으나, 하나님께서 계시 한 자들만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고 주님으로 모시며 따를 수 있습니다. 참고, (고전 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

아들의 소원대로 구원은 하나님 (21절에는 성부 하나님, 고전 12:3 성령 하나님, 그리고 이번에는 성자 하나님)의 주권임이 또 강조됩니다.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조용히 이르시되 비밀스러움과 친근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너희가 보는 것 이스라엘이 그렇게 기다리고 원해 왔던 구원자와 그분의 구원의 역사를 보는 것.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아기 예수를 만난,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 (눅 2:28-30)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라는 고백이 생각납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던 (2:25), 시므온은 구원의 주 아기 예수를 알아봅니다. 많은 이들이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분이 실제로 오셨을 때 예수님을 구원자로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기적과 그분의 지혜로운 가르침으로 잠시 따르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그 믿음이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은 바리새인들과 함께 구원자를 십자가에 매달고 맙니다. 예수님 공생애 당시나 지금도 하나님께 선택받은 적은 수 만이 주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 선택 받음의 감사로, 구원의 기쁨으로, 제자들은 모든 것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주님을 위해 드립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을 자격 없는 우리는 그 구원에 감사드리며, 주님의 기쁨을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마태복음과 비교

참고로, 마 11:25-27은 눅10:21, 22 내용과 거의 같습니다. 차이점은 마태는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로 시작하는 반면 누가는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시작하며 누가는 성령님의 역사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누가복음은 4 복음서 중 성령님의 역사를 가장 잘 표현 혹은 강조하고 있고, 누가가 쓴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불립니다.

마태는 70인전도 여행을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본 단락 (11:25 - 27)의 바로 앞 (20-24) 단락이 예수님의 "회개 않는 도시들에 대한 저주"의 내용으로 눅 10:10-13과 같은 내용으로 보아 마태복음의 이 단락도 누가복음의 같은 사건 안에서 가르침이라 해석하는 것에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마태복음 13장에도 오늘 본문 일부와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13:16,17)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결론/적용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과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고 알아가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하면 더 하나님과 친밀해 질 수 있을까요?

신앙의 초보가 되자

(21)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 에게는 가려졌고, 어린 아이들, 겸손히 주님 따르는 이들에게만 복음의 능력이 보여집니다.

(고전 1:26 ,27)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3: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우리는 어리석은 자, 겸손, 어린 아이들 처럼 순진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복음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적 경험이나 지혜와 더불어 신앙생활 오래 한 분은 (저 포함) 신앙생활의 경험이나 지혜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 만나기 전 지식을 배설물로 여긴다 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 바리새인들은 당시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가장 잘 알고, 율법도 가장 잘 지키던 이들 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종교 지도자들로서 존경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가장 많이 야단치셨습니다. 왜일까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큰 이유는 그들의 교만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하는 교만함. 겉으로 보기에는 혹은 그들의 삶에서 그들이 그렇게 여기고 혹은 주위에서 그렇게 인정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우는 어찌보면 당연하고 또한 그들의 수고에 합당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것이, 수고가, 심지어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지혜가 그들의 기도를, 말씀 묵상을, 예배를, 그리고 사역을, 겉으로만 하는 형식으로 만들어 갈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저도 하나님의 권능이나 임재를 체험했을 때 기쁘고 감사한데 또한 우쭐해지는 모습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큰 사역을 감당하던 사역자들이 정점에 올랐을 때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것을 봅니다. 물론 우리에게 보여지는 오류들이 다 오류가 아닐 수도 있지만 어떻든 저와 여러분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교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어리석은 자처럼,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겸손함, 아니 그것이 현실임을 깨닫는 것. 항상 초심, 초보로 돌아가는 것. 그래야 주님의 능력, 복음의 능력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구원의 기쁨에 동참하자

(20)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구원의 기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입니다.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돌아 왔을 때 천상에 잔치가 열립니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쁨이 우리에게 커다란 기쁨이 됨을 또한 고백합니다.

제가 전한 복음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사건을 몇 번 경험하는 축복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기적적인 사건들을 기억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에 마음이 설레입니다. 또한, 제가 직접 전도하지 않았지만, 주위에서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는 분을 보는 것도 같은 기쁨이 있습니다. 잃어 버린 영혼이 돌아올 때 하나님의 기쁨.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도 같은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22)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임을 알아가며, 자격없는 저는 제가 어떤 말로도 주님께 다 감사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맺음

구원의 기쁨. 한 잃어버린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것,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마13:44)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듯" 구원의 기쁨.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감사하기에, 자격 없기에, 겸손하게 다 드릴 수 밖에 없는 자신을 깨달아 가는 것. 그 구원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 그 기쁨을 위해,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 모든 것을 드리는 것. 그리고 다 드리는 것이 더 큰 기쁨이 되고 그 기쁨으로 더 겸손히 다 드리고 ... (마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는", 그렇게 선 사이클 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하며, 그렇게 인도하시는 좋으신 주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