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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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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1:33-12:9 (파피루스 사본 46판)[1]

고린도후서는 신약 성경 27권 중에 8번째로 바울의 서신서입니다.

[ 고린도전서 <-- 고린도후서 -> 갈라디아서 ]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눈물의 편지로 알려진 그의 서신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호의적인 반응과 회개에 대한 바울의 기쁨과 평안함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 (2: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도직 권한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하고, 기쁨, 고난 그리고 상급이 따르는 크리스천 사역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칩니다.

개요와 구조

고린도(Corinth)의 위치
  • 저자: 바울 (1:1; 10:1) [2]
  • 시기: 3차 선교 여행 중 AD 55, 봄에 쓰인 고린도전서와 같은 해 겨울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 (고전 16:5-8)
  • 장소: 마게도냐 (2:13; 7:5)
  • 목적: 눈물의 편지(2:4)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회개와 호의적인 반응에 대한 바울의 기쁨과 평안함 전달 (1:3-4; 7:8-9, 12-13)
  • 주요 인물: 디도
  • 책 이름 약자: 고후[3], 2 Cor.[4]
  • 고린도: 고린도는 에게해와 아드리아해 사이의 협소한 지형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당시 국제적으로 상업,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올림픽 다음으로 유명했던 운동경기가 고린도에서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쾌락, 운동 경기, 사업, 개인적인 풍요에 열중해 있었고, 그래서 여러 종교, 우상 숭배, 그리고 성적 타락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 눈물의 편지("Letter of Tears" or "Severe Letter")는 분실되어 알려지지 않은 바울의 또 다른 고린도 교회로의 서신으로 바울은 그 서신을 통해 교회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이들을 징계하라고 명했습니다. (고후 2:5-10)

구조

고린도전서는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 양해 (Apologetic, 1-7장)
  • 헌금에 대한 권고 (Hortatory, 8-9장)
  • 격론 (Polemical, 10-13장)

양해 (1-7장)

서신을 집필하는 사도 바울

인사 (1)

서문(1, 2절) 후에 사도는 그가 아시아에서 접한 환난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3-6절) 이야기하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을 격려합니다(7-11절). 그런 다음 그는 그와 그의 동역자들의 성실성을 입증하고(12-14절), 그 후에는 경솔함과 신실치 않다는 전가로부터 자신을 변호합니다(15-24절).[5]

고난과 위로 (1:1-11)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가 되었다는 것으로 편지를 시작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의 하나님이시며, 자비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능히 우리를 위로하셔서 고난을 견디게 하시고 또한 같은 고난에 있는 사람을 우리가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이 아시아에서 겪은 환난을 통해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셨고 소망이 되심을 경험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 (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선고”(ἀπόκριμα apokrima)로 번역된 단어는 답변(answer), 사법적 응답(judicial response) 또는 선고(sentence)를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평결(verdict)과 동의어입니다. 이는 바울이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고 느꼈다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고 무죄 판결을 받을 희망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는 죽음의 시간을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자신이”라는 말은 우리는 확실히 죽을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6]

하나님의 뜻에 아멘 (1:12-24)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방문 계획을 두 번 변경한 것도 너희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경솔하거나 육체를 따라 계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예’ (순종) 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도 하나님의 언약에 예 만 되셨으니 고린도 교인들도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성령으로 인치 시고 보증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굳건하게 하셨으니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 (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그리스도의 향기 (2)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후 2:15)

고린도 방문 계획 변경의 이유 (2:1-4)

바울은 고린도 후서를 쓰기 전에 문제 해결을 위해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으나 오히려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방문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대신 눈물로 편지를 썼는데 이것은 그들을 향한 사랑이 넘침을 알게 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기쁨이 있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근심하게 한 사람을 용서하라 (2:5-11)

이제 바울과 교회를 근심하게 한 사람이 벌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가 회개하였으니 용서하여 사랑을 보여서 교회를 분열하게 하는 사탄에게 속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 (2:12-17)

바울은 눈물의 편지를 디도를 통해 고린도 교회에 보냈을 때 드로아로 복음 사역을 위해 갔었으나 디도를 만나지 못해 심령이 괴로워 마케도냐로 디도를 만나러 갈 만큼 그의 심령이 괴로웠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그리스도의 향기로 표현하며 우리를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지만 그것을 나탸내새는(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감사들 드립니다. 이 향기는 이 사람에게는 사망의 냄새로 저 사람에게는 생명의 냄새로 나뉘며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전했다고 말했습니다.

  • (2: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표현의 형태는 여기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1) 사도 자신이 이제 ‘향기’가 됩니다. 또한, (2) 희생 재물의 개념이 처음으로 도입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위대한 속죄 희생이신 그분의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이는 그들이 그분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항상 주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는' 그분의 희생 정신이 스며들어 상호 침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사람들에게도(참조, 고후 3:3)[7] 해당합니다. 그들에게 동일한 영이 드러나기 시작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참고: 에베소서 5:2;[8] 빌 4:18.[9][10]

새 언약의 일꾼들 (3)

바울에게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육의 마음 판에 쓴 그리스도의 편지이기 때문에 자기 추천서나 어떤 다른 사람의 추천서가 필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 사역자들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능력으로 새 언약의 일꾼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옛 언약은 모세에게 주어졌는데 정죄의 직분이었고 없어질 영광이었지만 바울은 의의 직분이었고 영의 직분이니 영광이 더 크지 않냐고 합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았을 때 그의 얼굴에 영광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이 전통 때문에 유대인들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율법을 읽는데 그 수건이 마음을 덮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주 그리스도로 향하면 이 수건이 벗겨지고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고 그로 말미암아 주의 영광을 보고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니다.

  •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질그릇에 담긴 보배 (4)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7)

새 언약의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은 바울은 오직 진리의 복음, 오직 그리스도 에수의 주 되심만을 전파했으며 자기를 전파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 세상 신들이 믿지 않는 자의 마음을 혼미하게 했기 때문이지 바울이 전한 복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질그릇같은 연약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과 희생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 우리는 또한 예수의 생명이 나타날 것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욱체)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영)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이 땅에서의 고난은 영원한 영광과 비교하면 순간이고 가벼운 것이기에, 또한 우리는 보이는 것이나 멸망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이미지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보물은 사도 바울이 소유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입니다. 금과 은의 보물을 쌓아 두었던 동방 왕들이 질그릇에 동전이나 금괴를 채우는 것이 관례였습니다(비교: Herod. iii 103; 예레미야 32:14).[11] “그래서” 바울은 깊은 겸손의 어조로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우리의 이 연약한 몸, 즉 ‘질그릇’ 안에 우리는 그 귀중한 보물을 갖고 있습니다.”[12]
  •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이제 바울 사도는 그가 이미 소개한 주제로 돌아갑니다(고후 4:1). 그러나 이 일탈은, 만약 그것이 일탈이라면, ‘낙심하지 말라’는 그의 한 궘면을 강조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은 단지 우리가 영광스러운 직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도 아니요(고후 4: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기 때문도 아니요(고후 4:6), 단지 억압받고 고난을 당하기 때문도,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열매를 통해 우리 사역의 복된 결과를 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슬픔과 고통, 우리 죽을 몸의 부패는 단지 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는 결코 시들지 아니하는 생명의 샘이 있으니 곧 새 생명입니다. 이 새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10]

하늘의 거처 (5)

바울은 부활의 몸으로 영원히 살 것을 소망합니다. 이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된 것이고 성령을 하나님이 보내시어 보증한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주를 믿음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바울은 몸을 떠나 주와 함께하는 것을 원하지만 어떠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쓴다고 말했습니다. 반드시 주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신자는 이 삶이 끝난 후에 또 다른 행복한 삶이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잘 확신할 뿐만 아니라, 은혜를 통해 천국이 거처, 안식처, 은신처가 될 것이라는 좋은 소망을 갖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그 집을 짓고 만드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미래 상태의 행복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처소는 지상의 장막, 지금 우리 영혼이 살고 있는 초라한 쇠퇴하고 썩어가는 흙집과 같지 않습니다. 육신의 몸은 무거운 짐이요, 인생의 고난은 무겁습니다. 신자들은 죄의 몸을 짊어지고, 그들 안에 많은 부패가 남아 있기 때문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에게서 육신의 옷과 삶의 모든 안락함을 벗겨낼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리의 모든 고난을 끝낼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영혼들은 찬양의 옷, 의와 영광의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5]

화목하게 하는 직분 (5:11-21)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시고 살린 사람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더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다시 사신 이를 위해 삽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한 것 같이 우리에게도 사람들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신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간청합니다.

  •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워진 사람은 새로운 원칙에 따라, 새로운 규칙에 따라,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새로운 동료와 함께 행동합니다. 신자는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단지 바로잡힌 것이 아니라 새 마음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성격과 행실이 달라집니다. 이는 외적인 변화 이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이전에 구세주의 아름다움을 전혀 보지 못했던 사람이 이제는 무엇보다도 그분을 사랑합니다.[5]

지금은 구원의 날 (6)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은혜받을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은헤받고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로 인해 미혹되어 마음이 좁아진 고린도 교인들에게 마음을 넓혀 바울을 받아 들이라고 말합니다.

  • (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복음은 우리 귀에 들리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복음의 날은 구원의 날이고, 은혜의 수단은 구원의 수단이며, 복음의 제안은 구원의 제안이며, 현재는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일 적절한 시간입니다.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니니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디에 있을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는 은혜의 날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모두 조심하십시오.[5] “이르시되”[13]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 (6:14-18)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 한 사람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니 악한 무리에게서 나와 함께 하지 말라고 합니다.

  •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다른 멍에를 메다(unequally yoked with: ESV)”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아마도 바울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레위기 19:19(“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의 동족 명사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소와 당나귀가 같은 쟁기를 끌 때 서로 멍에를 같이 메지 않았습니다(신명기 22:10).[14] 부부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공통된 유대가 없을 때 그렇습니다.[1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7)

바울은 자신이 잘못 된 행위가 없으니 고린도 교회가 마음으로 바울을 영접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마케도니아에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 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위로의 하나님이 디도가 와서 위로하실 뿐만 아니라 디도가 고린도 교인들의 위로의 소식을 가지고 와서 바울을 기쁘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책망의 편지를 보냈을 때 고린도 교인들을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여 회개를 이루어 바울을 영접하니 기쁘고 디도 앞에서 교린도 교인들을 자랑한 것이 참되게 되었다며 범사에 그들을 신뢰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참된 회개(메타노이아, 마음의 변화)에 따른 근심은 결코 후회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반면 죄로 인한 상실, 실망, 수치심, 파멸, 질병에 대한 슬픔은 가인, 사울, 아히도벨, 가룟 유다 등의 거짓 회개입니다. 이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죽음은 항상, 때로는 육체적인 죽음이며, 진정한 회개가 뒤따르지 않는 한 항상 영원한 죽음은 구원의 반대입니다(로마서 5:21).[15][16]

헌금에 대한 권고 (8-9장)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7b)

풍성한 연보 (8:1-15)

바울은 마케도니아의 교화가 그들의 환난과 기근에도 불구하고 기쁨으로 풍성한 연보를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자원하여 힘에 부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그들 자신을 주께 드렸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말과 지식과 간절함과 사랑이 풍성한 고린도 교회가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 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강요가 아니고 이미 그들이 시작한 일이었고 부유하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가난하여져서 우리를 부유하게 하신 것을 본받아 시작한 일을 완성하라고 말합니다.

  • (8: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출애굽기 16:18 인용입니다.[17] 사도의 생각에 사랑의 역사는 광야의 만나와 같았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모든 것이 채워질 것입니다.[12]

디도와 그의 동역자 (8:16-24)

또한 이 거대한 연보를 관리하기 위해 디도와 한 형제를 보내는데 그들은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단지 조심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나 사람들에게나 비방을 받지 않으려는 것이며 고린도 교회의 사랑을 그리고 바울의 자랑거리라는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성도를 섬기는 연보 (9:1-15)

고린도 교인들은 일 년 전부터 스스로 연보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바울은 마게도냐인들에게 자랑했다고 말하면서 디도와 형제들을 보내는 이유도 이 일이 헛되지 않도록 준비시키려는 의도라고 말합니다. 연보는 그 마음에 정한 대로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행하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며 은혜를 넘치게 하셔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부터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고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 (9:11)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선으로 드린 돈은 육신적인 마음에는 버려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올바른 원칙에 따라 주어지면 그것은 씨앗이 뿌려져 귀중한 증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선한 일과 마찬가지로 자선 사업도 생각과 계획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가 구제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신중하게 생각하면 우리의 기부금을 자선 용도로 바르게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자선은 마지못해 아니라 유쾌하게, 어느 정도 자유롭게 제공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과 사랑이 더 많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덜 낭비하고, 풍성한 성장을 바라며 더 많이 뿌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다가 사람이 패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하시고 우리 안에 넘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것과 현세적인 좋은 것들을 크게 증가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모든 일에 충분하도록 만드실 수 있고,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게 하십니다.[5]

격론 (10-13장)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3)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만큼 거짓 선생들의 반대를 더 많이 받은 곳은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적들이 많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원수들뿐만 아니라 거짓 형제들에게서 오는 위험에 직면하더라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복된 바울 자신도 그렇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가 그의 모든 행동에 있어 흠잡을 데 없고 무해하고, 겸손하고 모든 사람에게 유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악의로 여기고, 그를 질투하고, 그를 약화시키고, 그의 관심과 명성을 훼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고, 그들의 암시에 맞서 고린도교인들을 무장시킵니다.[5]

거짓 선생 분별 (10)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을 육신을 따르는 자라고 비방하고 선동하는 거짓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담대히 대하겠다고 말하며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그리스의 온유와 관용으로 권하니 분별하라고 권했습니다. 바울이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이 무기는 모든 이론을 파합니다. 또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합니다. 거짓 사도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면 바울은 더욱 그리스도에 속한 자가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은 바울이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하다고 하기도 하고 바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강하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치 않다고 비난했습니다. 바울은 너희들은 외모만 본다고 반박합니다. 거짓 선생들은 자신을 칭찬하지만, 바울은 오직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 (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바울의 자기 칭찬은 상황에 따라 왜곡될 뿐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외모만 보며’ 판단했습니다(고후 10:7). 사도 바울은 '미련한 자에게는 그 어리석은 대로 대답하라'(잠언 26,5)는 충고를 염두에 두고, 그러한 관점에서도 거짓 교사들이 그보다 우월하다고 스스로 주장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는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임을 주의 깊게 언급합니다.[10]

바울의 사도권 (11-12)

바울과 거짓 사도들 (11:1-15)

이 장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 사이에서 그의 관심과 평판을 떨어뜨리려고 매우 부지런히 노력하고 그들의 암시로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거짓 사도들에 반대하여 변론을 계속합니다.[5]

고린도 교인들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은 잘도 용납했다고 책망합니다. 이것은 자칭 큰 사도라고 하는 거짓 사도에 의해 미혹된 것이고 이들은 바울을 비방하는 무리였습니다. 바울은 지식도 충분하고 값없이 복음을 전파했고 다른 교회에서 비용을 받아 고린도를 세웠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자비량 선교사로 섬겼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기 때문에 바울은 앞으로도 하던 대로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바울은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서하고 용납하라고 말을 시작합니다.
  • (11: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그의 경쟁자들의 성격에 대한 바울의 평가는 이제 그가 그들에게 우발적으로 우월함을 줄 수 있는 모든 주장을 묵살하기 위해 가차없는 언어로 제시됩니다. “거짓 사도”라는 용어에는 고린도후서 11장 5절의 “지극히 크다는 사도”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이 “속이는 일꾼”은 “그리스도의 사도”인 것처럼 가장하려고 하면서 거짓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10장 7절의 “누구든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는”이라는 말과 고린도전서 1장 12절의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말을 조명합니다.[12]

바울의 참된 자랑 (11:16-33)

바울은 조금 자랑하겠다며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고 말합니다. 관련 말씀: (잠 26:5)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바울은 그들이 내세우는 것으로 자신을 내 보이며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얼마나 많이 당했는지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그가 약한 것이 바울의 삶 속의 하나님 은혜의 능력을 자랑하는 시작이 됩니다.[18]

주께서 보여 주신 환상과 계시 (12:1-10)

바울은 무익하지만, 부득불 세째 하늘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였는데 아마도 이것은 거짓 선생들이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비방으로 환상과 계시가 없으면 사도가 아니라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울은 이 환상이 참되기에 자랑할 만하지만 그만두고 자신을 위해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고 말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아 자만하지 않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고 그것이 떠나가도록 세 번 주께 간구했으나 네게 은혜가 족하다고 말씀하셨으며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는 말씀에 오히려 기뻐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내가 약하다고 느낄 때; 내가 시련을 당하고 본성이 약해지고 실패할 때, 나에게 힘이 주어져 내가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게 됩니다. 시련을 겪을수록 나는 신성한 도움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고, 신성한 은혜의 효능을 더 많이 느낍니다.[6]

고린도 교회의 일을 염려하다 (12:11-21)

바울은 어리석은 자처럼 고린도 교인들의 요구대로 변론했지만 자신의 사도의 표는 고린도 교인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할 것이니 그것이 증거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부모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재물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고 자신을 줄 만큼 사랑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는 것이 고린도 교인의 마음을 사려는 교활한 속임수라고 비방하였습니다. 바울의 마음은 오직 덕을 세우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갈 때도 다른 생각을 할까 두렵고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하나님이 그를 사람들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권면과 끝 인사 (13)

바울은 세 번째 방문을 앞두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점검하라 도전합니다. 그리고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할 것과 온전하게 되기를 구합니다.

  •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금이 시금석으로 평가되고 증명되듯이,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의 기질과 행실과 경험을 증명해야 합니다. 만약 그들이 버림받은 자가 아닌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께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알 것이라고 바울은 믿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들 안에 계셨는지, 성령의 영향력과 은혜와 내주하심으로,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로 말미암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영혼에 대해 질문을 해보세요.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이든지, 아니면 거짓이든 둘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과 그의 사랑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 계시지 아니하면 우리의 믿음은 죽은 것이며 우리는 심판자에게서 승인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5]
  •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삼위일체 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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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자료

각주

  1.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46.jpg
  2. (고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3. https://www.bskorea.or.kr/bible/korbib_shortword01.php
  4. https://www.logos.com/bible-book-abbreviations
  5. 5.0 5.1 5.2 5.3 5.4 5.5 5.6 5.7 Matthew Henry’s Concise Commentary
  6. 6.0 6.1 Barnes' Notes on the Bible
  7. (고후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8.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9. (빌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0. 10.0 10.1 10.2 Cambridge Bible for Schools and Colleges
  11. (렘 32: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봉인하고 봉인하지 않은 매매 증서를 가지고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
  12. 12.0 12.1 12.2 12.3 Ellicott's Commentary for English Readers
  13. (사 49:8)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14. (신 22:10)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15. (롬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16. Pulpit Commentary
  17. (출 16: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18. Zondervan NIV Study Bible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