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전도)

Good4Joy
칠십 사도의 아이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전도를 가르치셨는지 누가복음 10장으로 묵상하며 정리해 봅니다.

전도는 사명이자 또한 은사입니다. 즉 모든 성도가 같은 역량과 같은 모양으로 전도하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본문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전 사건이기에 제자들이 복음을 전한 것 아니기에 오늘날 우리가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소중함과 잃어버린 양을 향한 하나님의 연민의 마음은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성도 모두에게 증거하기에 본문을 통한 전도를 향한 마음과 교훈은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 본문: 누가복음 10:1-24 (칠십 인을 세워서 보내시다)

서론

(눅 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말씀이신 예수님이 이 천 년 전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성도의 이 땅에서 지상 명령도 전도입니다.

본문(눅 10:1-24)은 예수님께서 70인의 제자를 전도 보내시는 장면입니다. 물론 본문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전 유대인을 향한 특정한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전도의 기본 원리들은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을, (1) "마음 자세와 준비", (2) "하나님 나라 복음 선포", (3) "전도의 결과와 기쁨" 세 주제로 나누어 살펴보고 결론으로 맺겠습니다.

마음 자세와 준비

함께 도우며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칠십 인을 세우사 오늘 본문과 비슷한 전도 교육이, 복음서 여러 곳에 (마 10:7-16, 막 6:7-11, 눅 9:3-5) 기록되어 있지만, 칠십 인을 세워서 보낸 사건은 누가복음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개역 개정과 KJV는 70이라 하고, NIV, ESV는 72인이라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고대 원문도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1] 참고로, 앞 9장에서 예수님께서 12 제자를 보내시는 내용이 소개되고, 오늘 본문은 70인을 보내십니다. 70인을 보내시며,

둘씩 앞서 보내시며 (막 6:7)에도 12제자를 보내시며 둘씩 보내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전도 훈련에서 뿐 아니라, 초대 교회가 성도들을 보낼 때 둘을 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2 (바나바와 바울, 1차 선교 여행), 15:27 (유다와 실라가 안디옥으로), 39-49 (바나바와 마가, 바울과 실라, 2차 선교 여행), 17:14, 19:22 (디모데와 에라스도 마게도냐로) 두 전도자가 함께 보내지는 예를 볼 수 있습니다.

둘이면 서로 돕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전 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또 한 해석에 의하면, 법정에서의 그것 처럼 하나가 아닌 둘이 증거하기에 더 신용이 있기에 둘씩 보낸다 합니다.

[간증] 한인 장로 교회 한 형제님과 함께 전도 - 다른 교파, 다른 교회가 같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며, 전하는 우리도 복음의 신용을 확신할 수 있었고 듣는 분들도 더 신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 도우며 전도할 수 있도록, 둘씩 보내셨습니다. 물론 성경은 빌립, 스데반 집사님, 그리고 아덴에서 바울이 혼자 전도하는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항상 둘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둘이 하면 서로 돕는 유익이 있습니다. 함께하며, 서로를 낫게 여기고 사랑하며, 또 그 모습을 주위에서 보며 저것이 교회구나 알것입니다.

전도하는 마음 자세의 첫째는 서로 돕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마음 자세 두 번째는,

고난 예상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양을 이리, 늑대 가운데 보내신다. 우리는 천국 가기 전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영적 현실을 잘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요일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온 세상은 악한 자 즉 사탄에 속해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하며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고난받을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리고 이리 관련, (마 7:15)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로, 거짓 선지자를 이리로 표현하시며 경고하셨고, 바울도 에베소 교회에 거짓 선생을 경고합니다. (행 20: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세상에 많은 심지어 교회라 부르는 곳에도 많은 거짓 가르침이 있습니다.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같은 말씀이, (마 10:16) 에도 있는데 16절 후반부에, "그러므로 너희들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온유하라"고 권면하십니다. 많은 거짓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잘 분별해야 합니다. 악한 사단은 거짓 가르침과 그가 다스리는 세상으로, 전도를 방해하고 전도자를 박해 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1) 그 후에 (After this) 오늘 본문 전 (눅 9:57-62) 예수님을 따르는 비용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세상 편안함, 부모, 자식, 전대를 다 버리는, 세상 것을 다 뒤로하는 것입니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자신을 부인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심지어는 목숨마저도 바치며 주님을 따라야 한다 하십니다. 그만큼 영생이 천국이 값지게 여기는,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전도자로서 아니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로서 우리는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예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십자가, 좁은 문, 험한 길, 박해받는 삶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죠. 그 고난들은 사실 우리의 성화, 믿음 성장, 그리고 소망이 더욱 명확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 성도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1) 서로 도와야 하고, (2) 전도자는 고난을 예상해야 합니다. 전도자의 마음 자세 세 번째는,

모든 것 하나님 의지

(2) 주인에게 청하여 즉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 모든 사역에 특히 전도에 기도가 빠질 수 없습니다. 이리 가운데로 보내지니, 전도는 영적 전쟁터입니다. 말씀이 전해지는 것, 진리, 복음 선포를 막으려는 사탄의 방해가 많습니다. 평화의 사람을 만나게 하옵소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옵소서. 담대함을 주옵소서. 성령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도와 주옵소서. 천군 천사의 도움을 받게 도와주세요. 전도를 방해하는 사탄을 항상 염두에 두고,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해주세요" 기도하며 전도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영적 전쟁 우리가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가 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하고 모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을 계속 설명하십니다. (4)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여행에 방해되는 되는 것은 가져가지 말며, 모든 제공은 여행 중 만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공급) 의지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전략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으려는 노력이 아닌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또한 전도는 사교나 그 어떤 것보다 긴박한 영혼 구원 사역이라는 것을 가르치신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함에 모든 것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주님은 무엇을 약속하십니까?

(7)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복음 전하는 것은 매우 값진 사역입니다. 가장 값진 사역으로 하나님의 공급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 9: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사도로서 권리를 이야기합니다. 또한,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기쁘게 헌금한 마게도냐와 아가야 (Macedonia and Achaia) 교회를 칭찬하며, (롬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they owe it to them)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우리가 전도하며 그 삯을 받는 것, 즉 하나님의 공급을 너무 불편해하지 말고 감사히 받아도 되겠습니다.

[간증] 어느 날 팀 전도 후, 점심 식사 후 식당에서 나오려는 데 주인께서, 점심값을 다른 분이 이미 지불하셨다고 했습니다. 한 성도께서 우리가 전도하는 모습을 보고, 점심값을 지불해 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제게 물질을 충분히 주시지만, 그 사건은 돈 이상으로 우리에게 큰 힘. 즉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삯, 영적 충전이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전도함에 모든 것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뱀과 전갈은 악한 영 (귀신)들을 원수은 사탄의 표현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롯 방해와, 조롱과 여러 가지 박해를 당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것 같이 성령님의 권능으로 전도자 성도는 최후 승리합니다. 이것은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이니 우리의 권리이자 책임은 믿음입니다. "우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두려워할 필요 없는 것이죠. 사단이 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고, 영생은 빼앗을 수 없습니다.

전도자의 마음 자세와 준비를 요약하면, (1) 함께 도우며, (2) 고난을 예상하고 (3)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 선포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인사하며 복음 전도가 시작됩니다.

복음의 내용

(9, 11)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의 핵심으로 누가복음에 30번 이상 쓰이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침례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짧은 문장이지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이 우리 기도의 뼈대가 될 수 있듯, 이 한 문장이 복음의 내용의 뼈대를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즉 천국의 실재와, "너희에게" 복음을 듣는이가 가져야 할 개인적인 책임감 즉 믿음이겠죠. 그리고, "가까이 왔다" 긴박성이 담겨 있습니다. 복음에는 천국의 실재와 긴박성 그리고 듣는이가 가져야 할 개인적인 책임감이 전해져야 하겠습니다.

사영리, 전도폭발, 어떤 지침서에 있는 복음을 전하던, 이 3가지를 염두에 두고 그 마음을 담아 전해야 하겠습니다. 천국의 실재와 긴박성, 듣는이의 책임감.

복음을 전하면 크게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을 만납니다. 받아드리는, 믿는 사람, 평화의 사람과 그렇지 않고 거부하는 믿지 않는 사람.

평화의 사람에게

(6)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즉 복음을 받아들이면, (7), (8)에서 처럼 그 집에 머물며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복음 선포를 위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며, (7,8) 그 집에 머물며 떡을 떼며 교제하며 하나님 나라 천국을 가르칩니다. 당시는 오시는 메시아 예수님을, 오늘날은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하신 예수님을 가르치는 것이죠. 그리고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성도들이 고난 중에 서로 사랑하며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지 가르치며, 우리가 배운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제자 양육을 하는 것이죠. 믿는 사람의 모임,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죠. 또한, 며칠을 머무는 것뿐 아니라, 5분의 짧은 전도 만남에서도 우리는 제자 양육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열심히 보십시오.", "기도하세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교회에서 함께 교제하세요.", "전도하십시오." 권면할 수 있습니다.

거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시며 명령하십니다. (겔 2: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패역한 자들, 이리 가운데 들어가며, 우리는 당연히 거부를 예상해야 합니다. 참고로,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평안을 받을 사람들에 대한 지침은 7-9절, 3절에 걸쳐 설명했지만, 그렇지 않고 거부하는 경우는 10-16, 7절에 걸쳐 2배 이상의 절을 할애하며,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6)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그들에게 갈 축복이 전도자에게 돌아온다. 즉 축복했는데 그 축복을 받지 않는다면 그 축복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죠. 그러니 거부당하고, 조롱당하고, 박해받는 것은 복을 받는 것이죠. 그리고,

(11)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전도자는 복음을 전하는 책임을 다했고, 복음을 거부한 이들과는 이제 아무 상관이 없다 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 경고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계속 말씀하십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복음을 듣고 거부한 이들은, 가증한 죄로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신 (창 18:20) 소돔 사람들보다 더 한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돔 사람들에 비교하여, 복음을 들은 이들은 회개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13) 고라신, 벳새다, (15)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근처 도시들로, 복음과 함께, 그들의 믿음을 위해,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보이신 곳으로 더더욱 믿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특히 가버나움은, 침례 요한이 죽은 후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 옮겨 사신 곳으로 (마 4:13), 예수님 사역의 본부였습니다. 베드로의 집이 있었던 곳으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머물렀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기적을 눈으로 본 지역들에 비해, 두로와 시돈은 유다가 아닌 이방인의 도시로 복음이나 예수님의 기적 사역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곳입니다.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전도자가 전한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전도자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성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제자는 가지라 가르치시며, (요 15:20-22)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복음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달해야 하고, (10)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그것을 공공연하게, 명확하게 전달하라 가르치십니다. 복음을 전하며, 우리에게, 가장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사려됩니다. 안 그래도 거부하시는데, 그들에게 믿지 않는 결과, 심판의 결과를 알려주어야 하는 것.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리 가운데 보내신 것,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무엇인가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환란을 지날 것이라 경고하셨으니, 고난을 예상하며 주님을 믿고 담대하게 간지러운 귀를 긁어 주는 듣기 편한 복음이 아닌 바른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순종하며 복음을 전할 때 결과는 어떻습니까?

전도의 결과와 기쁨

전도자의 기쁨

주님의 보내심에 순종한, 70인이 전도를 마치고, 권능을 체험하고, 기뻐하며 돌아옵니다. (17)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님께서, (18)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 (Satan fall like lightning from heaven) 귀신들이 제자들에게 항복한다는 것이 사탄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사탄의 권세 아래 어둠에 있던 이가 그 권세에서 빠져 빛으로 나오는 사탄의 패배. 복음을 듣고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은 커다란 기쁨입니다.

[간증] 2014 Castro District의 기적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보람 있고 기쁨의 사역입니다. 제자들은 우리 성도들은, 구원의 기쁨에 동참하며, 복음의 권능을 체험하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죠. 그런데,

더 큰 기쁨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사탄이 패배하는 것, 주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기뻐하지 말고 그 기쁨을 일부러 기분 나빠하라는 것은 아니고 사역에서 승리의 기쁨에서, 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그 권능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해야 하겠죠.

더 큰 기쁨은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 주님께서 "너는 진짜 내 제자다"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구원의 확신이 생기는 것이죠.

[간증] 전도 폭발 교육받으며, 교사분이 전도 대상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훈련생으로 옆에 앉아 들으며, 주님께 더 헌신하고 믿음이 더 생겼던 것을 기억합니다.

주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아는 것. 믿음, 구원의 확신입니다. 제자들은,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과 구원의 기쁨에 동참하며, 복음의 권능, 함께 하시는 주님, 성령님을 체험하고, 우리 스스로 구원의 확신하는 즉 믿음이 더 생기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죠.

(막 10:29, 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박해를 받고 내세에 영생의 확신"하는 것. 복음을 듣고 구원의 역사뿐 아니라 전한 평안을 거부하면 그 평안이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며, 성령님의 권능, 하나님의 천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도는 언제나 승리인 것이죠.

또한 우리 기쁨의 근원은,

주님의 기쁨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21-22)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며 감사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4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기록은 여기 한 곳뿐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한 것에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라 믿습니다. 성령으로 기뻐하시는 예수님을 상상하며 느끼며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천국을 경험하는 것이죠. 이런 축복을 누리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너희가 보는 것 이스라엘이 그렇게 기다리고 원해 왔던 구원자와 그분의 구원 역사를 보는 것. (24)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아기 예수를 만난,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 (눅 2:28-30)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라는 고백이 생각납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던, 시므온은 구원의 주 아기 예수를 알아봅니다. 많은 이들이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분이 실제로 오셨을 때 예수님을 구원자로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기적과 그분의 지혜로운 가르침으로 잠시 따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믿음이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은 바리새인들과 함께 구원자를 십자가에 매달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적은 수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 가르치셨고,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나 지금도 하나님께 선택받은 적은 수만이 주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아무 자격 없는 우리는 그 구원에 감사드리며,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결론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뿐 아니라 또한 직접 하신 전도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동네를 돌아다니시며, 긴박성을 가지고 "회개하라 천국이 다가왔느니라", 계속 선포하셨고, 듣고 믿든 그렇지 않든 복음을 전했습니다. 듣고 믿는 이들에게는 축복을 반대로 거부하는 이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전도함에, 성도간에 서로 도우며, 이리 가운데로 들어간다는 위험성, 소중한 복음에 대한 집중과 긴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우리 입술을 통해 선포되지만,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며,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에 동행하는 기쁨. 귀중한 복음 사역에 동참하며, 천국의 기쁨, 주님과 함께하는 구원의 확신을 누리게 되는 것이죠. 어느 선교단체의 구호처럼, 우리는 선포하고, 주님께서 역사하신다. 우리는 역사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영광을 보며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관련 문서

검색: 전도전략

각주

  1. Zondervan NIV Study Bible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