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Gospel of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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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넘어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5)

요한복음은 신약 성경의 네 번째 책으로 4복음서 중 하나입니다.

[ 누가복음 <-- 요한복음 --> 사도행전 ]

요한복음은 믿음을 다룬 복음서로 "믿는다"라는 동사가 핵심 단어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영생의 충만한 기쁨은 미래에 준비되어 있으나, 또한, 더불어 믿는 사람은 현재의 충만한 기쁨을 미리 맛봅니다. 요한복음은 이 현재(now) 구원을 강조하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그리고 "믿음"을 공고히 하며 구원을 확신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 (요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개요와 구조

성 요한 대성당의 요한 사도의 무덤 (에베소, 터키)
  • 저자: 사도 요한 (John) [1]
  • 시기: 전통적 시각은 AD 85 (AD 50~70라는 견해도 있음)
  • 장소: 소아시아의 에베소
  • 목적: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강조: 나머지 3개 복음서 (공관 복음)와 다른 조명으로 주 테마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질문과 적용: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사실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 요한복음은 4개의 복음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중 하나이고 다른 3개의 공관복음 (Synoptic Gospels)에 속하지 않습니다.
  • 책 이름 약자: 요[2], John[3]

구조

요한복음은 총 21장으로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1장)
  • 사역 (2-11장)
  • 다락방 강화 (12-17장)
  • 십자가와 부활 (18-21장)

말씀이 육신이 되어 (1장)

하나님의 어린 양 (Lamb of God, Latin: Agnus Deī) (요 1장)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침례 요한은 그분을 증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를 따를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시다 (1:1-14)

  •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말씀이라고 부르는 가장 분명한 이유는 우리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설명하듯이 하나님의 아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한이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합니다. 그는 태초에 그분이 성부님과 함께 게셨다고 단언합니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4]
  •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육신”이라는 용어는 신성과 반대되는 인간 본성을 표현하고 영적인 것과 반대되는 물질적 본성을 표현합니다. 순전히 영적인 “몸”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몸”이 아닌 “육신”을 사용합니다.[5] 참고: 예수님 (Jesus)#성육신 (Incarnation)

침례 요한의 증언 (1:19 - 34)

침례 요한은 구약의 예언에 따라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준비하며 그분을 증언합니다. (같은 내용: 마 3:1-12; 막 1:7-8; 눅 3:15-17)

  •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우리는 뒷문맥에서 요한이 이미 특별한 표징과 신성한 영감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시는 분임을 인식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비록 그분의 지상 사역은 요한의 준비 작업 후에 시작되지만, 예수님의 위엄, 존귀, 그리고 선재로 요한 앞에 계셨다는 것입니다.[6]

제자를 부르심 (1:35-51)

제자를 부르시는 예수님

침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를 따르고, 예수님은 또한 빌립과 나다니엘을 부르십니다.

  • (1:40-41)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안드레의 반응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기를 바라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독점하거나 숨기도록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구세주께로 인도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들을 "위해" 갑니다. 그것은 그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구세주를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개종자들은 친구와 이웃을 "찾아" 구세주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친척들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예수님께 와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7]

사역 (2-11장)

가나의 혼인 잔치 (요 2장)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3년 동안 기적을 행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하셨습니다. 사역의 목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아이심을 사람들이 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2)

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1) 갈릴리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첫 번째 기적(1-11절), (2)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예루살렘에서 지키신 첫 번째 유월절에 관한 기록입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셨고(13-17절), 그 일로 인해 그와 다투는 사람들에게 표징을 주셨고(18-22절), 몇몇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후 얼마 동안 예수님을 따라갔지만, 그들에게 어떤 신뢰도 둘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23-25절)[4]

가나의 혼례 (2:1-11)

예수님은 첫 번째 기적으로 가나(Cana)의 결혼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자여” 원어의 이 표현은 무례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때 즉 십자가와 부활을 향한 신성한 일정은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
  •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다 (2:13-22)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몰아내는 예수님 (마 21:12–17, 막 11:15–19, 눅 19:45–48, 요 2:13–16)

예루살렘의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고 화를 내시며 그들을 성전에서 몰아냅니다. (같은 내용: 마 21:12-13; 막 11:15-17; 눅 19:45-46)

  •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은 (구약) 성경 말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확증하십니다. 이사야 56장 7절의 한 소절(“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되리라”)과 예레미야 7장 11절의 한 소절(“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냐? 너희 눈에는 강도의 소굴로 보이느냐?”)을 합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성전의 고귀한 디자인과 목적(다가오는 명절에 특히 적합한 암시)이, 그 성전을 향한 인간의 사악, 탐욕, 그리고 불경스러운 목적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6]
  •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1절의 요한의 설명처럼 성전은 예수님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몇 년 후 유대 사람들은 이 말씀으로 예수님을 고발합니다.[8]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신다 (2:23-25)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가르치십니다.

  • (2: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요한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그가 하나님이라는 증언하는 것이라 암시합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 수 있습니다.[9]

니고데모의 방문 (3)

니고데모를 가르치는 예수님 (요 3장)

3장은 니고데모에게 하신 영생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침례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증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의 방문 (3:1-21)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유대인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영생을 가르치십니다.

  •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예수님의 포인트는 우리가 바람을 조정하거나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영향은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성령도 우리가 조정하거나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영향력은 느낄 수 있습니다.[9]
  •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의 다른 어떤 구절도 하나님과 인류의 관계, 그리고 구원의 길을 이렇게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성경 전체의 "주제 구절"로 간주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의 정도가 너무 커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하셨음을 알려줍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영광스러운 소망을 줍니다.[10]

침례 요한의 증언 (3:22-36)

침례 요한의 설교 (마 3, 눅 3장)

침례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 계속됩니다.

  • (3: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그리스도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천상에서 오셨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세상 구원의 사역을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참되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11]
  •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사마리아 여인 (4)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가르치는 예수님 (요 4장)

4장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가르치시고, 죽을 병에 걸린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 (4:1-42)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서 한 여인에게 자신이 메시아 임을 가르치십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아 임을 깨닫고 동네에 돌아가 이 사실을 전하고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 (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사마리아인은 이스라엘인들과 이방인의 혼혈로 유대인들을 종교적이나 문화적으로 그들을 하대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근처에 가지도 않으려 했고, 멀더라도 사마리아를 돌아 여행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매우 의외의 일입니다.
  •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말씀은 13절의 “이 물”과 대조적으로 강조됩니다. 그것은 계속되는 육체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외부 공급원이 아니라, 일어날 때마다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는 내적의 결코 마르지 않는 원천, 생수의 샘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가진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에서 나오므로 영생을 수여합니다.[5]
  •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의 영으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리는 요한복음에서 그리스도와 연관되어 있고 (1:14; 14:6),[12] 그것은 크리스천 예배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11]
  •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나의 양식”: 나의 가장 강한 욕망을 만족시키고 다른 모든 욕망을 소멸시키는 것[6]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다 (4:43-54)

왕의 신하의 아들이 죽게 되었는데 그를 고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행하신 두 번째 기적입니다. (같은 내용: 마 8:5-13; 눅 7:1-10)

  • (4: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아들의 권한 (5)

예수님의 가르침 - 산상수훈 (Sermon on the Mount)

우리는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신 모든 것에 대한 신실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행 1:1).[13] 행함과 가르침 이 둘은 서로 얽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가르친 것은 그분이 행하신 일을 설명하고 그분이 행하신 것은 그분이 가르친 것을 확증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5장에는 기적과 설교가 있습니다. (1) 기적은 38년 동안 병을 앓아온 병자를 고치신 것입니다(1-16절). (2) 설교는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죄로 기소되셨을 때 산헤드린 앞에서 자신을 입증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서 자신의 권위를 가르치셨고(17-29절), 성부님, 침례 요한, 기적들, 그리고 구약의 증언으로 그것을 증명하시고, 유대인들의 불신을 정죄하십니다(30-47절).[4]

오래된 병을 고치시다 (5:1-18)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38년 동안 아팠던 병자를 고치십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고 하여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성부께서 일하시니 자신도 일한다고 답하시며 하나님과 자신이 동등함을 가르치십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아들의 권한 (5:19-29)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동등하고 또한 권한이 있으시다 가르칩니다.

  •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성자는 성부의 뜻과 반하는 것을 행할 수 없습니다. 성자는 성부의 뜻과 완벽히 일치하는 것만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부가 하시는 일을 예수님 만이 하실 수 있으므로 성부와 동일하심을 암시합니다.[9]

예수님을 믿게 하는 증언 (5:30-47)

  • (5: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 (5:39)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오병이어 (6)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요 6:9)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허기진 5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세상 필요를 채워주는) 왕으로 삼으려 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으시는 기적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가르치시고, 그를 따르던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떠납니다.

오병이어 (6:1-15)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한 소년이 공급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먹이셨다고 보고합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침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떠나가셨습니다. 누가복음은 그 장소가 벳새다 근처에 있었다고 명시합니다. 군중은 여러 마을에서 걸어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14] 그리고 예수님은 무리를 먹이십니다. (같은 내용: 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바다 위로 걸어오시다 (6:16-21)

밤에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위에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풍랑이 이는 호수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랍니다. (같은 내용: 마 14:22-27; 막 6:45-52)

생명의 떡 (6:22-71)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 가르치시고, 많은 이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상상하는 메시아가 아님을 알고 떠납니다.

  •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4장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생명의 물”과 비교합니다. 여기에서 그들은 “이 떡”, 곧 멸망하는 떡과 구별되는 생명을 주는 떡을 구합니다. 이제 그것은 그들과 함께 존재합니다. 생명이신 그분이 떡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인간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떡이 육신에 속한 것처럼 영의 생명인 영원한 진리를 가르치십니다.[5]
  •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내게 오다"라는 말이 여기서는 "믿는 것"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이로 사용되고 있다. 요한은 그 은유를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분별력이 밝아진,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그 심령이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방향으로 조성된 사람들이 "이끄심"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 누구도 스스로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이 먼저 자신의 성령을 통해 인생에게 접근하셔야 하기 때문이다.[15]
  •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의 포인트는 문자적이 아닌 영적 중요성에 대한 유추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육체의 삶에 중요한 것처럼, 영생을 위해 그분의 십자가 희생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믿어야 한다는 상징적 은유입니다.[9]
  • (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님의 탁월함을 조금이라도 접한 사람들이 느꼈던 매력은 그들로 하여금 그분에게 자신을 맡기고, 그분을 섬기고, 일상적인 직업을 버리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속(redemption)이라는 표현의 일부는 그리스도의 방식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오고”., "따르고”. 함께 “걸을 수”있고, 반대로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주님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의 첫 제자들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 나라의 어휘를 창조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사람들을 매료할 뿐만 아니라 시험하기도 했습니다. 거부감도 있고, 무한한 매력도 있습니다. 그는 체로 쳐서 버리기도, 반대로 구원하기도 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의 마음을 깨뜨려 회개하게 만든 바로 그 행동과 말씀은 다른 사람들에게 조바심과 분노의 항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복음서에서는 떠남과 그 반대로 깊어지는 믿음을 계속 관찰 수 있습니다.[6]

참으로 그리스도인가 (7)

7장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와 그렇치 않은 자들의 반응을 비교하며 관찰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박해하며 그분의 사역을 막으려 합니다.

형제들의 불신 (7:1-9)

예수님의 기적과 가르침으로 믿는 이들도 있었지만, 예수님의 형제들을 비롯하여 대부분은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고 미워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죄를 질책하기 때문이라 알려 주십니다.

  • (7: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그런데 사도행전 첫 장에서 그들이 사도들, 여자들, 그리고 마리아가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행 1:14).[16] 이는 굳은 인간의 마음이 씨를 받아들이는 기름진 땅으로 변화된 예입니다. 사도행전 1장의 끝 부분에 있는 유다의 경우는 그 반대의 예입니다. 결정적인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5:7을[17] 참조하십시오.[5]
  • (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초막절에 가시다 (7:10-24)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유대인들은 교육도 받지 않은 예수님의 지혜에 놀라워합니다.

  • (7: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형제들이 “명절”로 올라갔을 때 예수님은 단순히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갔다는 사실에 주목하세요. 그러나 명절의 순례자 행렬을 따라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조용한 나그네로서 문둥병자들을 축복하시며, 영혼들을 위로하시며, 소수의 은혜받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부어주시며, 그는 예루살렘 성문 근처의 어떤 마을에 도달하셨습니다.[6]
  •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예수를 잡고자 하나 (7:25-36)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 것을 유대인들은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성부의 아들이고 그분의 보내심을 받았다 가르치십니다. 이에 그들은 예수를 잡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 (7: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 (7: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어디서 오셨는지에 관한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큰 소리로 선언하셨습니다. 그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선언과 하나님의 특별한 지식에 대한 주장은 청중들을 자극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잡으려고 애썼으나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돌이키지 아니하실지라도 사람의 손을 묶으실 수 있습니다.[4]

생수의 강 (7:37-39)

그들의 불신과 미움에도 불구하고 믿고 따르라는 예수님의 초청은 계속됩니다.

  •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목마르거든”, “와서”, “마시라” 이 세 단어는 복음 초청의 요점입니다. 필요를 알면 그 필요에 대한 공급원을 찾고, 그리고 그 필요한 것을 받습니다. "목마른", 즉 필요를 느끼는 영혼은 구원자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마십니다” 즉 구원자가 주는 구원을 받습니다.[9]

사람들 사이의 분열 (7:40-53)

예수님을 잡으려고 보냈던(7:32) 사람들이 빈손으로 돌아옵니다. 대재사장들과 바리세인들은 그들을 추궁했고, 이에 예수님을 위해 변론하는 니고데모도 질책합니다.

  • (7: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그들의 당혹스러운 계획에 대한 디고데모의 비판은 지방의 자존심을 반영하는 것인가? 즉, 그들은 니고데모의 현명한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에 저명한 그를 경멸적인 시골의 사촌으로 간주하려 합니다.[6]

세상의 빛 (8-9)

8장에는, (1) 유대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데려와 그리스도께 올무를 쳐 놓습니다(1-11절). (2) 다양한 담론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비난하고 그가 말한 모든 것을 논쟁거리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에 관하여(12-20절),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파멸에 관하여(21-30절), 자유와 속박에 관하여(31-37절), 그의 아버지와 그들의 아버지에 관하여(38-47절), 신성모독적인 비난에 대한 그의 가르침(48-50절), 신자들의 불멸성에 관하여(51-59절) 비난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에 예수님은 죄인들이 자신에게 반항하는 것을 참으셨습니다.[4] 9장에서 예수님은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이를 고치시고,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는 바리세인들을 훈계하십니다.

음행중에 잡힌 여자 (8:1-11)

예수님을 잡으려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만들기 위해 음행한 여인을 끌고 와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뿐 아니라 그들 모두 죄인임을 가르치십니다.

  • (8:6a)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님께서 고발에 처할 조건은 무엇입니까? 율법의 엄격함을 결정하셔야 할 경우에 그분의 인기를 약화시키려고 했다는 가정은 배제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도덕적 해이에 익숙해졌습니다(마태복음 12:39; 마가복음 8:38).[18] 아마도 이 사건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에 관한 문제(눅 20:19-26)와 어느 정도 유사하며 그들은 예수님을 율법과 산헤드린 또는 로마 정부와 충돌시키려고 했습니다. 만일 그분이 그녀를 돌로 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분은 유대 율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녀가 돌에 맞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면 로마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에게서 사형을 선고할 권리를 박탈했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18:31).[19][20]
  • (8:7)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 (8: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세상의 빛 (8:12-30)

  •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하나의 태양이 온 세상을 밝게 비추듯 그리스도도 한 분이시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태양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어두운 지하 감옥일까요! 빛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없었다면 어떨까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걷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류를 바로하는 데 필요한 진리와 죄를 정죄하는 데 필요한 의무의 길에 대한 지침 없이는 방치되지 않을 것입니다.[4]

자유롭게 하는 진리 (8:31-38)

  •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과 가깝게 연결되는 진리로, 철학적 진리가 아닌 구원으로 이끄는 진리입니다. 그 진리는 죄에서 자유를 선사합니다.[11]

마귀의 자식 (8:39-47)

진리를 따르지 않는 마귀의 자식

  •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아들의 신분은 행위에 근거를 두고 있고, 아들은 아버지의 성품을 나타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고 대적하는 행위들은 사단의 모습입니다. 그들의 친자 관계는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정반대로 그들은 사단에 속해 있습니다.[9]

스스로 있는 자 (8:48-59)

예수님은 자신이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셨던 “스스로 있는 자”라고 가르치고 이에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 (8: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단순히 자신이 아브라함보다 나이가 많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출생 전의 선재에 대한 주장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거나 “내가 아브라함보다 먼저 거기에 있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계시된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인 특별한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물을 경우를 대비하여 하나님께 그분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이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 예수님의 선포의 의미와 인식된 대담성은 그분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에 그들이 돌을 들어 그를 치려 하더라”(요한복음 8:59). 그들의 반응을 보면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신성모독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21]

진정한 맹인 (9)

시각장애인 바디매오가 고침을 받다 (마 20; 막 10, 눅 18장)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을 보며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참고: 요 11:4[22]
  •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그리고 예수님은 그 시각장애인을 고쳐 주십니다.

  • (9: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그런데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일한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잡으려 하고 또한 예수님을 믿는 이들도 박해합니다. 심지어 고침을 받은 시작장애인을 쫓아냅니다.

  • (9: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 (9: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그들에게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진정한 맹인이라고 가르치십니다.

  • (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으로 소경된 자들의 시력을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또한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하려 하시는데, 이는 자기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을 무지 속에 갇히게 합니다. 육신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를 어리석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 대한 높은 평가만큼 하나님 말씀에 맞서 인간의 부패한 마음을 교만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마치 사람에게서 박수를 받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침묵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속이고 교만한 자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은혜의 복음을 거부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책은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고, 그들의 죄의 권세는 깨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4]

선한 목자 (10)

잃어 버린 양 (마 18:12–14; 눅 15:3–7), 선한 목자 (요 10:1-21)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심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성부와 하나라고 가르치시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선한 목자 (10:1-21)

예수님은 자신이 양 우리의 문이며 선한 목자라고 비유적으로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은 양들처럼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 문으로 들어와서 풍성한 생명을 얻습니다.

  •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문으로 들어가는 양에게 우리가 항상 열려 있을 것입니다. 그는 폭풍이나 위험이나 밤이 다가올 때마다 들어갈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갖게 될 것입니다. 목자는 자기 양떼를 위해 앞장서서 풀밭을 찾을 것이다. 헌신적인 봉사와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그는 날마다 새롭고 오래된 진리에 대한 지식을 점점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며, 그가 배우는 진리는 인간의 영혼을 위한 양식으로 주어질 것입니다.[5]
  •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 (10:22-42)

예수님과 아버지는 하나라고 가르치시고 이에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이라며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주님은 아버지의 인격과 구별되는 자신의 인격과, 동시에, 근본적인 동일성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동일인가? 그것은 단지 소망, 감정, 정서의 동일성인가? 아니, 그것은 구원 능력의 하나 됨입니다.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의 신성한 활동은 아버지께서 양들을 아들에게 주실 때 전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예수님의 “손”에 있습니다(아무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가 본질의 실제적 통일성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포함합니다.[6]

부활이요 생명 (11)

11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얼마 전에 행하신 놀라운 기적, 즉 나사로를 살리신 일에 대한 역사를 보게 됩니다. 이 기적은 다른 복음서는 없고 오직 이 요한만이 기록하고 있습니다.[4]

나사로의 죽음 (11:1-16)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가 병에 들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바로 가시지 않고 이틀 후에 그들이 사는 베다니을 향해 가십니다.

  •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물론 이것은 향유부음(요 12:1-8)이 이미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사도 요한이 이 글을 썼을 때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대로(마태복음 26:13)[23] 이 사실이 그녀에 대해 잘 알려졌음을 의미할 뿐입니다.[20]
  •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죽음에서 살리시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11:17-27)

예수님께서 도착하셨을 때 나사로는 이미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찍 오셨다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거라며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부활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예수님이 계셨던 곳이 베다니에서 하루 걸리는 거리였다고 합니다. 소식을 전한 사람의 여행 하루 (그가 소식을 전하러 떠난 후 곧 나사로는 죽고), 소식을 들은 후 이틀 지체, 그리고 예수님의 여행 하루로 총 나흘이 됩니다. 나흘이 지났음으로 나사라로 죽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므로 그가 살아나는 기적을 보는 것은 그들의 믿음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는 부활을 자신이 믿는 진리로, 그리고 먼 미래에 일어날 사건으로 현재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지금은 위로할 힘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충만한 강조로 표현된 예수님의 대답의 첫 두 단어는 부활이 그분의 인격으로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녀에게 가르칩니다.[5]

예수께서 우시다 (11:28-37)

  • (11:4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여기서 “비통히 여기시고(was deeply moved)”로 번역된 단어는 일반적으로 화를 내거나 분개하거나 심하게 책망하는 것을 의미하며 마음이 격렬하게 동요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분명히 분노가 아니라 슬픔으로 인한 격렬한 동요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보았으며 또한 동정심과 사랑으로 감동받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비통”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소리를 통한 내면의 슬픔의 표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내면의 감정을 발화한 것이 아니라, 내면적이기는 하지만 깊고 격동하다는 뜻입니다.[7]

나사로를 살리시다 (11:38-44)

나사로를 살리시며 이 기적의 이유는 그들이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낸 것을 믿게 함이라 가르치십니다.

  • (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위대한 말씀은 만유의 성부와 성자 예수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친밀한 관계를 선언합니다. 예수님의 마음 안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끊임없는 온전한 친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의 의식은 천국에 열린 문입니다.[6]

죽이려는 모의 (11:45-57)

나사로가 살아난 기적을 본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합니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오실까 궁금해 합니다. (같은 내용: 마 26:1-5; 막 14:1-2; 눅 22:1-2)

  • (11: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다락방 강화 (12-17장)

12-17장은 십자가 전까지의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대로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며 구원 계획의 성취를 위해 나아 가십니다. 13-17장은 ‘다락방 강화(the Upper Room Discourse)’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가진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가르치고 위안하며 자신의 떠남을 준비하십니다.

승리의 입성 (12)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마 21:1–11, 막 11:1–11, 눅 19:28–44, 요 12:12–19)

12장은 십자가로 향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과 증오, 그리고 믿음과 거부의 모습을 비교 강조합니다.[9]

예수의 발에 향유 (12:1-8)

예루살렘 입성 하루 전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비싼 향유를 부으며 사랑과 존경을 표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에 대한 장례 준비가 됩니다. (같은 내용: 마 26:6-13; 막 14:3-9)

  •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 (12: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그리스도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은 최고의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참된 사랑이 있는 곳에는, 그분께 드리기에 아까운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종들과 그들의 섬김이 비난을 받을수록 주님은 그들을 더 가까이 하십니다. 마리아의 믿음과 사랑의 행위는 너무나 주목할 만한 것이어서 그를 기념하여 미래의 모든 세대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는 모든 곳에서 알려질 것입니다. 이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4]

나사로 죽이려고 모의 (12:9-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자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합니다.

  • (12: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예루살렘에 입성 (12:12-19)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The Triumphal Entry)하시고 큰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고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같은 내용: 마 21:1-11; 막 11:1-11; 눅 19:28-40)

  • (12:13-15)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목적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여 자신이 그들의 메시아요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왕께서 나귀를 타고 오시는 것이 스가랴 9장 9절의 정확한 성취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외쳐라, 예루살렘의 딸아!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관용하시며 나귀 곧 어린 나귀를 타시느니라.” 예수께서는 정복하는 왕으로서 말을 타고 자신의 수도로 들어가시며 당시의 방식대로 사람들로부터 환호를 받으십니다.[24]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12:20-36)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영광)에 관해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셨고 성부께서 답하십니다.

  • (12:27-28)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 (12: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이 말씀은, 말하든 말하지 않든, 군중의 생각에 대한 대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항상 자신의 말을 듣고 계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이 소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표징이 됩니다. (비교 요 11:41-42)[25] 예수님은 그것을 천둥이 울렸다고 하거나 천사가 말했다고 말한 사람들에 대한 응답의 소리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천둥소리나 천사의 말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분의 기도와 가르침에 대한 응답으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귀와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마음에는 그분 아들의 사명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어야 했습니다.[5]

예수를 믿지 아니하다 (12:37-43)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유대인들은 그를 진정으로 믿지 않습니다.

  • (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마지막 날과 심판 (12:44-50)

예수님은 마지막 날과 심판을 경고하며 그들에게 믿으라 명령하십니다.

  • (12:44)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우리 주님께서는 참 제자로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만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도 믿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분께 순종하고, 사랑하고, 신뢰하는 법을 배웁니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그분을 매일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무지, 오류, 죄, 비참함의 어둠에서 점점 더 자유로워집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령이 영생임을 배웁니다. 그러나 동일한 말씀이 그것을 멸시하거나 무시하는 모든 사람의 정죄를 확증할 것입니다.[4]
  •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새 계명 (13)

마지막 만찬, 예수님을 팔러 나가는 가룟 유다: 마 26, 막 14, 눅 22, 요 13장

13장 부터 17장은 다락방 강화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가진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가르치고 위안하며 자신의 떠남을 준비하십니다. 13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며 사랑의 계명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하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다 (13:1-20)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며 섬김의 본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들도 그렇게 겸손히 서로 섬길 것을 명하십니다.

  •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그 의미는 그분이 자신의 고난이 가까웠다는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이 그분으로 하여금 제자들을 잊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상황은 오히려 그분의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상황에 가장 부드러운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떠나는 친구로서 가장 다정한 방식으로 그의 친절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26]
  •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13:21-30)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요 13:23)

예수님은 제자 중 하나가 자신을 배신하고 팔리라 예언하십니다. (같은 내용: 마 26:20-25; 막 14:17-21; 눅 22:21-23)

  • (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 (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요한이 빛과 어둠의 갈등을 강조하고 있다고 짐작한다면 여기서 밤은 단순히 시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 것이다. 또한 가룟 유다의 영혼에 드려지는 어두움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11]

새 계명 (13:31-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5)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십니다.

  •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이르시다 (13:36-38)

예수님을 위해 목숨도 바치겠다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그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같은 내용: 마 26:31-35; 막 14:27-31; 눅 22:31-34)

  • (13: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의 부인은 18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길이요 진리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4:6)

14장은 그리스도께서 미래의 재림뿐 아니라 믿는 이의 현 삶에 함께할 성령님(26절) 사역을 통한 위안의 약속입니다.[9]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14:1-14)

제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은 그가 길이요 진리임을 그리고 그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슬픔을 위로하려면 간단한 말이 필요합니다. 간단한 말은 가장 큰 진리를 나타내는 가장 좋은 옷입니다. 이 열한 명의 불쌍한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떠나실 것이라는 생각에 억눌리고 절망했습니다. 그들은 만약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시면 그분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약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고,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도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간단하고 어린아이 같은 말로 예수님은 그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격려하신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27] 천국에 너희를 위한 자리가 충분히 있다 …
  •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사람들이 성부님께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이 성부님께로 가는 길이라는 것은, 바꾸어 생각하면, 예수님 안에서 성부님이 사람들에게 계시되고, 예수님 자신이 영원한 진리이시며, 그분 자신이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시라는 것입니다.[5]

보혜사 약속 (14:15-31)

  •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아마도 더 나은 번역은 “또 다른 대언자”일 것입니다. 이 단어는 여기와 요한복음 14:26, 요한복음 15:26과 요한복음 16:7에서 삼위일체의 세 번째 인격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이 모든 경우에 우리 주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이 단어를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서에서 주님에게 적용했습니다(요한일서 2:1).[28] 복음서에서 영어 버전은 일관되게 "보혜사"로 번역했습니다. 서신서에서는 “대언자"로 번역되었습니다. "다른"이라는 단어는 서신에서 언급하는 것, 즉 삼위일체의 두 번째 사람과 세 번째 사람의 변호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5]
  •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진리의 영은 삼위일체의 세 번째 인격인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는 성령을 보내어 제자들과 함께 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증거하기 때문에 진리의 영이라고 불립니다(6절 참조).[29]
  •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14:28)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성육신 중에 예수님은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히 2:9)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또한 완전히 신성합니다.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사항은 역할의 복종이 본질적으로 복종과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인성을 입으시고 자신을 아버지께 순종시켰다는 사실이 결코 아들의 신성을 부인하지 않으며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동등함을 감소시키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말하는 “크심”은 본질이 아니라 역할과 관련이 있습니다.[30]

참포도나무 (15)

예수님은 자신이 참포도나무이니 그 안에 거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열한 명의 친구들뿐 아니라 모든 시대의 친구들이 비록 그들이 더 이상 예수님의 육체적 임재를 누리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임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의 살아 있는 에너지, 즉 그분의 영적 실체는 포도나무의 뿌리와 줄기가 가지가 열매를 맺는 동안 영양을 공급하고 유지하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포도나무에 영양을 공급하고 지탱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록 우리가 그분을 볼 수는 없지만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을 알고 사랑하려는 우리의 소망과 그분을 섬기려는 에너지는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는” 한 계속해서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 우리를 통해 흘러들어갈 것입니다.[31]

나는 참포도나무요 (15:1-17)

  •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이를 한 번 구원 받은 이가 열매를 맺지 못해 구원을 잃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해석의 기본인 전체 맥락(진정으로 구원받은 이는 그 구원을 잃지 않는다)을 무시하고 한 부분만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내게 붙어 있어”의 조사는 대부분의 영어 해석본이 “in”으로 쓰고 있고 이는 헬라어 원본에 쓰인 조사 단어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 맥락을 고려 이들은 교회에 다니거나, 겉으로 혹은 말로 만 믿는다고 말하지만 진정한 믿음이 아니기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참고) 우리는 흔히 해석되는 것처럼 이 말을 믿지 않는 세상이나 유대인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참 포도나무의 가지라고 주장하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5]
  •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와 가지라는 확장된 은유를 통해 예수님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기초를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농업 생활의 이미지를 사용하셨습니다. 즉, 포도나무와 포도(마 20:1~16; 21:23~41; 마가복음 12:1~9; 누가복음 13:6~9; 20:9~16 참조) 구약에서 포도나무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시 80:9~16; 사 5:1~7; 27:2~6; 렘 2:21; 12:10; 겔 15장) 1-8, 17:1-21, 19:10-14, 호세아 10:1-2).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아버지를 “농부” 또는 포도나무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표현하셨습니다. 포도나무에는 두 종류의 가지가 있습니다. (1) 열매를 맺는 가지(요 15:2, 8)와, (2)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2, 6절)입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참된 신자입니다. 즉각적인 맥락에서 초점은 11명의 충실한 제자에게 있지만, 이미지는 또한 모든 시대에 걸쳐 모든 신자를 포함합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믿노라고 공언하지만 열매가 없는 가지들은 진정한 구원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포도나무에서 생명이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특히 직접적인 맥락에서 가룟 유다가 고려되었지만 그 이미지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실제로 구원을 소유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확장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를 태우는 이미지는 종말론적 심판과 영원한 버림을 상징합니다(겔 15:6~8 참조).[9]
  •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대명사 “내”는 강력하게 강조됩니다. 그들의 모든 기도와 그분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와 그분께서 응답하실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연합은 그분의 참된 제자의 특징입니다.[5]

세상이 미워함 (15:18-27)

제자들은 이제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께 속했기 때문에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처럼 제자들도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것이라 가르치십니다.

  •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침례를 받은 이름은 그들이 살고 죽을 그 이름입니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위로가 됩니다. 세상의 무지가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미움의 진정한 원인입니다.[4]
  •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여기서는 아버지로부터 보혜사를 보내는 분이 아들입니다. 요한복음 14:16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보냅니다. 요한복음 14:26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으로 보냅니다. 이는 보혜사의 사명이 아버지와 아들의 행위이며, 둘은 하나라는 것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법입니다.[20]

성령님의 사역 (16)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다른 영광스러운 일들 중에 하나는 “내가 상하게 하고 내가 고치는 것”입니다(신명기 32:39).[32] 16장에서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별 설교가 그렇게 마무리됩니다. 1. 그들 앞에 닥친 환난에 대해 예수님의 그들을 상하게 하는 말들이 여기에 있습니다(1-6절). 2. 다음은 그러한 환난 아래서 그들을 고치기 위해 그분이 그들에게 베푸시는 위로의 치유의 말씀입니다. 위로는 다섯 가지입니다. (1) 보혜사를 그들에게 보내시리라는 것(7-15절), (2) 그가 부활하실 때 그들을 다시 방문하시리라는 것(16-22절), (3) 그들의 모든 기도에 화평의 응답을 주시리라 것(23-27절), (4) 그는 지금 성부께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28-32절), 그리고 (5) 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환난을 당하든지 간에 그분의 승리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분 안에서 평화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33절).[4]

  • (16: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예수께서 고난을 겪으셨듯이, 그의 추종자들도 고난을 겪으면서 성경의 성취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그들에게 더 일찍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고, 위로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때 성령의 임재에 대한 이 약속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4]
  •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백부장이 고백한 것처럼(눅 23:47)[33] 성령님께서 나사렛 예수가 의로운 그리스도(요일 2:1)[34]라는 것을 세상에게 확신시킬 것입니다. 그는 확실히 의인이었습니다. 그의 적들은 그를 최악의 인격 아래에 두었지먄, 많은 사람들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확신하지 않았거나 확신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교리에 대한 그들의 편견을 심화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으로 의롭게 되며(딤전 3:16)[35] 속이는 자가 아니라 의인임이 증명됩니다. 그러면 포인트가 확실해집니다. 왜냐하면 그는 위대한 구세주이거나 위대한 사기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사기꾼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매개체나 주장으로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주 예수의 진실하심을 확신시켜 주실 것입니까? 첫째, 그들이 그를 더 이상 보지 않는 것이 그들의 편견을 제거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를 멸시했던 종의 모습으로 죄 많은 육신의 모습으로 그를 더 이상 보지 않을 것입니다. 모세는 죽은 후에 전보다 더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 그분이 아버지께로 가신 것은 그것에 대한 온전한 확신일 것입니다. 약속대로 성령의 임하심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으로 높임을 받으신 증거였으며(행 2:33)[36], 이것은 그의 의의 증거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결코 속이는 자를 그의 오른편에 두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4]
  •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우리의 은혜의 시기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생각해 보고 이를 위해 활력을 얻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슬픔은, 마치 아기를 보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곧 기쁨으로 바뀔 것이었습니다. 성령은 그들의 보혜사가 될 것이며, 사람이나 마귀, 삶의 고통이나 죽음의 고통이 결코 그들의 기쁨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보는 것과 그분의 임재의 증거에 따라 기쁨과 슬픔을 느낍니다. 불신자에게 슬픔이 닥쳐오나니, 그 어떤 것도 그 슬픔을 줄일 수 없습니다. 신자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의 상속자입니다. 우리 주님을 살해한 자들의 기쁨과 주님의 친구들의 슬픔은 이제 어디에 있습니까?[4]
  •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에서 대명사 “내가”가 매우 강조됩니다. 배반과 치욕과 죽음을 직면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리스도께서는 승리를 주장하십니다. (비교. 요한일서 2:13-14; 요한1서 5:4)[37] 그분의 승리로 그분의 추종자들도 승리합니다.[20]

예수님의 기도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 17:1)

제자들을 가르치고 위로하신 예수님은 십자가로 가시기 전 기도하십니다.

17장은 주님의 기도, 주 그리스도의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주기도문이 있는데(마태복음 6:5-15), 그 기도는 스스로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죄 용서를 위해 기도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7장의 기도는 고유하고도 특별한 그의 것이었고 중보자로서 그에게만 적합했으며 그의 중보의 본보기입니다. 그렇지만, 또한, 기도에 대한 교훈과 격려를 위해 우리에게 유용합니다. 구조는, 1.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니다(1-5절). 2. 자신의 백성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1) 그들을 위한 청원을 소개하는 일반적인 간청(6-10절), (2) 그들이 지켜지게 해 달라는 청원(11-16절), (3) 그들이 거룩함을 얻게 하려는 청원(17-19절) (4) 그들이 연합하게 하려는 청원(11절, 20-23절), (5) 그들로 영광을 얻게 하려는 청원입니다(24-26절).[4]

자신을 위한 기도 (17:1-5)

십자가 사역을 마치고 예수님 당신과 성부께서 영광을 받도록 기도하십니다.

  •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창세 전에 자신이 성부와 함께 가졌던 신성의 영광을 성육신하신 인성에도 나타내어 온 인격이 영광을 받도록 청원하십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신격을 부인하는 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창세 전에 성부와 함께 영광을 받으셨다는 결론이 쉽게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가 영원하신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그렇게 하실 수 없기 때문이죠. 여기서 예수님은 중보자이신 그분의 인성 위에 그 영광이 빛나게 해 달라고 성부께 간구하셨습니다.[38]

제자들을 위한 기도 (17:6-19)

예수님께서 떠난 후 제자들이 보호받고, 하나 되고, 그리고 거룩하게 기도하십니다.

  •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진리는 그들의 성화가 이루어지는 영역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진리인 아버지의 말씀을 받았고, 세상에서 분리된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들어갔습니다(17:6-8; 17:14-16). 예수님은 성부께서 이 가운데 그들을 보존해 주시기를 기도하셨고, 이제 이 새로운 삶의 영역에서 그들을 보내신 일을 위해 그들을 구별해 주시기를 더욱 기도하십니다(17:18).[5]

미래에 믿을 자들을 위한 기도 (17:20-26)

당시 제자들뿐 아니라 예수님은 미래의 믿는 이들을 위해 그들이 하나 되고,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하십니다.

  •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와 하나로서 그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대신하여 알리셨으며, 그들이 천국에 가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구속받은 모든 이가 거기서 그들의 사랑하는 친구요 형제로서 그분의 영광을 보고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교리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과 성품을 선언했고 앞으로도 선언할 것입니다. 이는 그와 하나가 되어 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도 그들과 함께 거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성령으로 그분과 연합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채워질 수 있으며, 현재 상태에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4]

십자가와 부활 (18-21장)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겪고, 죽음에서 부활하며 구원 계획을 이루며 승리하십니다.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집니다.

잡히시다 (18)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잡히십니다. 당시 대제사장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가 예수님을 신문 하지만 구실을 찾지 못하고 당시 유다 지역 로마 총독 빌라도에 예수님을 넘깁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를 찾지 못하고 그를 풀어주려 하지만 유대인들이 반대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요한은 18장에서 예수님의 신실하심과 베드로의 불신을 대조하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같은 내용: 마 26-27장, 막 14-15장, 눅 22-23장)

잡히시다 (18:1-11)

예수님이 동산에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군대에 의해 잡히십니다. 베드로가 체포를 막으려 칼을 휘두르고 예수님은 베드로를 질책하십니다. (같은 내용: 마 26:47-56; 막 14:43-50; 눅 22:47-53)

  • (18: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베드로의 열정 어린 용맹은 잘못된 행위일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돌아가셔야 하는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잔은 고통과 심판 즉 하나님의 진노의 잔과 연관되어 있습니다.(시 75:8;[39] 사 51:17,[40] 22; 렘 25:15; 겔 23:31-34)[9]

유대인들의 재판과 베드로의 부인 (18:12-27)

대제사장의 장인과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재판하고 예수님은 그들의 재판이 정당치 않음을 질책하십니다. (같은 내용: 마 26:57-75; 막 14:53-72; 눅 22:62)

  • (18: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부인합니다. 베드로의 부인은 예수님께서 13장에 예언하셨습니다.

  • (18: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빌라도의 재판 (18:28-40)

유대인들은 당시 유다를 다스리던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깁니다. 빌다도는 예수님께 그가 왕이냐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 가르치십니다. (같은 내용: 마 27:1-2, 11-14; 막 15:1-5; 눅 23:1-5) (18: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유대인들은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 자신을 정결케 한 후에 이방인이 거주하는 관정에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유월절 만찬을 먹지 못하게 될 만큼 부정해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관정 앞에 서서 총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41]

  • (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를 찾지 못하고 그를 풀어주려 하지만 유대인들이 반대합니다.

십자가 (19)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 19:20)

예수님이 죄가 없음으로 빌라도는 풀어 주려 하지만 유대인들은 강력히 반발합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압력에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예수님은 조롱과 고통을 받으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십니다. (같은 내용: 마 27장, 막 15장, 눅 23장)

십자가에 못 박도록 예수를 넘겨 주다 (19:1-16)

  • (19: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19:17-37)

예수님은 조롱과 고통을 받으며 십자가에서 돌아 가시며 메시아의 구속 사역을 성취하십니다.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 집니다.

  •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표현하기 전에 목마름이 있었던 것처럼, 그가 그것을 선언하기 전에도 그의 일이 끝났다는 것을 아셨습니다(28절). 메시아의 구속 사업이 성취되었습니다. 성부의 명령은 순종되었습니다. 상징과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분의 생애는 마쳤고 그분의 가르침은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일도 마쳤습니다(26-27절). 끝이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죄의 삯’을 갚으십니다.[20]
  • (19: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앞 절의 강조된 증거는 피와 물이 흐르고 있다는 한 가지 사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성취가 이루어지고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확증하는 사실에 국한되어야 합니다.[5] 참조: (출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새 무덤에 예수를 두다 (19:38-42)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빌라도의 허락을 받고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 장사 지내고 무덤에 모십니다.

  •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부활 (20)

빈 무덤 (20:1-30)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사명을 주십니다. (같은 내용: 마 28장; 막 16장; 눅 24장)

  •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마리아는 그녀의 사랑하는 주님을 보고 너무나 감동되어 예수님이 지금 들어가고 있는 영광의 상태를 잊어버렸고, 예수님을 애정으로 포옹함으로써 기쁨을 표현하려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지금은 그 행위를 금지하십니다.[4]
  •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제자들은 약 40일 후 오순절에 실질적으로 성령을 받습니다(사도행전 1:8; 2:1-3). 그러므로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실 약속하시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9]
  •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어떤 문자적이고 권위적인 의미에서든 이 권세는 사도들 중 한 사람에 의해 결코 행사되지 않았으며, 그들 스스로도 그들이 소유하거나 그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결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마 16:19 참조).[42]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침해할 수 있는 능력은 그리스도께서 사역적이거나 선언적인 의미로 사역자들에게 주신 것일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위임된 능력은 교회 권징(church discipline)의 행사로 나타납니다.[43]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도마의 의심을 풀어 주십니다.

  •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우리의 혀에 믿지 아니하는 말이 없고, 우리의 마음에 믿지 아니하는 생각이 없으나 주 예수께서는 그것을 아십니다. 예수님은 도마를 믿지 아니하는 가운데 두시기보다는 오히려 그에게도 기꺼이 자신을 맞추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한 자를 배려해야 합니다(롬 15:1,2).[44] 이 경고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도, 은혜도, 소망도, 그리고 기쁨도 없습니다. 도마는 자신의 믿지 아니함을 부끄러워하며,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외쳤습니다. 그는 온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를 붙잡은 자처럼 애정을 가지고 고백했습니다. 건전하고 진실한 신자들은 비록 느리고 약하더라도 주 예수께서 은혜롭게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복음을 읽고 듣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교리와 그에 관한 기록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의무입니다(요일 5:11).[45][4]
  •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복음서의 목적 (20:31-32)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복음서 쓰게 하신 목적

  •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내 양을 먹이라 (21)

21장은 요한복음의 종결(혹은 부록)입니다. 20:30-31이 책의 결론을 담고 있지만, 21장의 종결은 책의 서두 1:1~18의 내용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종결은 독자가 가질 수 있는 5가지의 의문에 답을 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의 필요를 더 이상 채워주지 않으실까(참고 20:17)? 그 질문은 21:1~14이 답하고 있습니다. (2) 베드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 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베드로가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20:6~8로, 그와 요한이 빈 무덤을 보았지만 요한만 믿었습니다(20:8). 이 질문에 대한은 21:15-17에 있습니다. (3) 주님이 계시지 않은 지금 상황에 제자들의 미래는 어떨 것인가? 답은 18~19절. (4) 요한은 죽을 것인가? 20~23절에, 예수님께서 그에 대한 답을 말씀하십니다. (5) 요한은 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모두 기록하지 않았나? 요한은 24~25절에서 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9]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심 (21:1-14)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또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 던질 곳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그들을 위해 조반을 준비하셨습니다.

  • (21: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님과 베드로 (21:15-19)

제자들과 아침 식사하신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며 그를 회복시키고, 자신을 따르라 명하십니다.

  •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해서(18:12-27) 마음이 괴로웠을 베드로는 사명을 받으므로 회복하며 예수님에 대한 경외, 존경, 믿음,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처럼 성령께서 임하시어 권능을 받고 사명을 마치며 그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21:20-25)

베드로요한의 미래에 대해서 궁금해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라 또 한 번 강조하며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려주십니다. 요한은 주님께서 많은 일을 하셨다며 책을 맺습니다.

  • (21: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예수님의 행적 중 아주 일부분만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모든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작은 공간에 많은 내용이 있음에 감사합시다. 우리의 믿음을 인도하고 우리의 삶을 선도하기에 충분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은 불필요했을 것입니다. 기록된 내용 중 많은 부분이 간과되고, 잊혀진 부분이 많으며, 많은 부분이 의심스러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행하시고 말씀하신 모든 것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를 대하시는 그분의 섭리와 은혜의 행하심에 대한 더 완전한 지식을 통해 하늘에서 받게 될 기쁨을 고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행복이기를 바랍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4]

관련 자료

요한복음 1장, 개역개정과 ESV 번역

관련 문서

검색: 요한복음

Movie The Gospel of John

참고한 자료

각주

  1. (요 13:23)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2. https://www.bskorea.or.kr/bible/korbib_shortword01.php
  3. https://www.logos.com/bible-book-abbreviations
  4. 4.00 4.01 4.02 4.03 4.04 4.05 4.06 4.07 4.08 4.09 4.10 4.11 4.12 4.13 4.14 4.15 4.16 4.17 4.18 4.19 Matthew Henry’s Concise Commentary
  5. 5.00 5.01 5.02 5.03 5.04 5.05 5.06 5.07 5.08 5.09 5.10 5.11 5.12 Ellicott's Commentary for English Readers
  6. 6.0 6.1 6.2 6.3 6.4 6.5 6.6 6.7 Pulpit Commentary
  7. 7.0 7.1 Barnes' Notes on the Bible
  8. (막 14: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9. 9.00 9.01 9.02 9.03 9.04 9.05 9.06 9.07 9.08 9.09 9.10 9.11 John MacArthur Study Bible
  10. https://www.gotquestions.org/John-3-16.html
  11. 11.0 11.1 11.2 11.3 Zondervan NIV Study Bible (1984)
  12. (요 14: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3. (행 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14. https://en.wikipedia.org/wiki/Feeding_the_multitude
  15. 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trans. William Pringel
  16.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7. (고전 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18. (막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19. (요 18: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20. 20.0 20.1 20.2 20.3 20.4 Cambridge Bible for Schools and Colleges
  21. https://www.gotquestions.org/before-Abraham-was-I-am.html
  22. (요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23. (마 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24. https://www.gotquestions.org/triumphal-entry.html
  25. (요 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26. Benson Commentary
  27. MacLaren's Expositions
  28.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9. https://www.gotquestions.org/Spirit-of-truth.html
  30. https://www.gotquestions.org/Father-greater-I.html
  31. https://www.gotquestions.org/true-vine.html
  32. (신 32: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33. (눅 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34.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35. (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36. (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7.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38. Matthew Poole's Commentary
  39. (시 75: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40. (사 51:17)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41. Benson Commentary
  42.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43. Jamieson-Fausset-Brown Bible Commentary
  44. (롬 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45. (요일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