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Good4Joy 프로젝트는 위키를 기반으로 하는 독립 웹사이트(good4joy.org)와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love_of_jesus) 두 곳에서 콘텐츠를 제공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최근 문서들이 있고, 위키는 후에 업데이트하려고 하니 참고하세요."
요한복음 21 (나를 사랑하느냐): 두 판 사이의 차이
(→관련 문서) |
|||
| 88번째 줄: | 88번째 줄: | ||
* [[:분류:설교]] | * [[:분류:설교]] | ||
검색: 요한복음 | 검색: 요한복음 | ||
{{#ask: | {{#ask: [[분류:요한복음]]|format=ul|}} | ||
[[분류:설교]] | [[분류:설교]] | ||
2023년 5월 29일 (월) 16:42 기준 최신판
- 설교 본문: 요한복음 21:15-25
- 일자: 2017/4/20 (목)
- 오디오 파일:요한복음21장.m4a
서론
오늘은 요한복음의 마지막입니다. 먼저, 전체를 요약해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 12장까지 대중 앞에서 복음 사역을 하십니다. 다락방 강화로 알려진 (13-17) 제자들에게 형제간의 "사랑",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제자들이 박해를 당할 것과 도우실 "성령님"을 가르치신 후 "기도"하십니다. (18-20) 잡히시고,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 하시고 돌아가신 후, 장사한 지 3일 째 되는 날 부활하시어 막달라 마리아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21) 제자들에게 3번째 나타나시어 오늘 본문은 베드로에게 "내양을 먹이라" 명령하시는 장면입니다.
요한은 복음서를 쓴 목적을, (20:31)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더하고 생명을 확신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본론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자신을 사랑하냐고 질문 하시는데,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하십니다. 이는 제자들이 배신할 것이라 예언에, (마 26:33),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한 베드로의 고백과 연결하여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질문하셨을 것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질문에 베드로의 대답은 "그러하나이다"였고, 예수님은 "내 어린 양" 즉 예수님의 사람을 먹이라 명령하십니다.
먹이는 것, 양식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찾아보았습니다. (마 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막 1:38) "전도"라 하셨으니, 양식은 말씀과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3년 공생애 동안 계속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며 전도하셨고,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을 먹이는 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며, 그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성장하며 진정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베드로는 "양을 먹이라"는 명령에 순종했던 것을 그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벧전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본문으로 돌아가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계속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16) "내 양을 치라 (take care of my sheep)", (17) "내 양을 먹이라", 조금씩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의미로 풀이하는 해석도 있지만 같은 의미를 다른 표현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이해해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느냐" 3번 물으신 것은, 베드로의 첫닭 울기 전 예수님을 3번 부인한 사건과 연결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세 번째 질문에 (17) "베드로가 근심하여 (Peter was hurt, 슬퍼하며)" 그러며, 베드로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매" 하며 예수님께서 전지하시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베드로는 예수님과 대화에서 자신의 의지나, 영적 우월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달으며 부끄러워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능하신 예수님께 온전하게 의지하는 믿음과, 부족하고 쓸모없는 자신을 제자로 회복시키시는 주님을 향한 진정한 감사와 사랑을 고백했다 생각합니다.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띠 띠고 (dressed)" 유대인의 옷은 띠를 매어야만 제대로 갖추어 입은 옷이라 합니다. 베드로가 지금은 스스로 옷 입고 원하는 곳으로 자유로이 다니지만, 후에는 팔을 벌리고 남이 옷을 입히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리고 가는, (19) 순교의 모습입니다.
"내 양을 먹이라"는 명령을 잘 이행하고 순교의 자리까지 간 베드로의 마지막을 보시는 예수님의 예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여러 번 제자들이 박해받을 것을 예언하시는데 이는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환란을 당할 때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환란 속에서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미리 알려 주시는 것이라 알 수 있습니다.
성경 외 자료에 의하면 베드로는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고, (19)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19)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나를 따르라"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따르라 명령하십니다.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따르라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에 베드로뿐 아니라 (20) 요한과 다른 제자들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는 이제 더는 만선 하는 어부의 꿈이 아닌, 누가는 더 이상 뛰어난 의사로의 꿈을 좇는 것이 아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21) 베드로는 요한의 마지막에 대해 궁금해하고, 예수님은 남 상관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 또 명령하십니다. (23) 초대 교회 때 요한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루머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 정정해 주고, (24) 요한복음의 저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며 복음서를 맺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다 쓰면 세상이 부족하다. 이는 요한뿐 아니라,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요한의 고백을 오늘 말로 바꾸어 본다면 "구글닥 용량을 초과해도 페이스북을 다 채워도 하나님의 은혜를 다 쓰기에는 부족할 줄 아노라."
적용/결론
예수님을 사랑하시는지요?
저와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꽤 했으니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보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 이름 때문에 박해받고 있는지요? 직장이나 이웃에서 하나님의 의를 행하며 복음을 전하며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지요? 예수님은 베드로의 순교뿐 아니라 제자들이 박해받을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며 박해받았습니다. 예수님도 어려서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셨지만 복음 사역을 시작하시며 박해받으셨습니다. 그럼,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들이 박해 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 15:18)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에 속하지 않기에 예수님의 제자는 박해받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4장에서 제자가 되는 길을 설명하시며 "비용을 계산하라" 하셨습니다. 2002 NIV 성경의 해설을 보면, 예수님은 축복 만 바라는 눈먼 혹은 순진한 (naive) 선택이 아닌 건축가가 건물을 짓기 전 비용을 계산하듯 왕이 전쟁 전에 군사력을 평가하듯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숙고해야 한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혈기 있고 용감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걸까요? (고전 10:13)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원하시는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용기나 지혜가 아닌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믿고 순종하며 좁고 험한 길을 가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세상에서 미움받고 박해당하고 있는지요? 바꾸어 질문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는지요?
예수님의 양을 먹이십시오
얼마 전, "사역입문" 클래스에서 한 집사님께서 자기는 "전도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교회 생활을 몇십 년 하셨고 집사라는 타이틀이 있으십니다. 이것이 과연 그분 만의 혹은 그분이 섬기시는 교회에 만 있는 현상입니까?
19세기에 영국 교회 교인이 줄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교회들은 여러 가지 지혜를 내어 교인을 모으려 노력했고, 일환으로 교인이 듣기 편한 가르침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목회자였던 챨스 스퍼젼 목사님은 "Downgrade Controversy" 알려진 사건을 통해 영국 교회의 세속화를 경고했습니다. 오늘날 미국 교회의 현실이 19세기 영국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교인들은 이기주의와 기복 신앙으로 세상을 따라가고 있고, 교회는 책망과 바르게 함 보다는 그들이 듣기 편하고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가르침, Seeker friendly 등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노력이 좋은 의도로 시작되었을 수도 있고 잠시 효과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룩이 퍼져나가듯 교회 세속화를 가속 시키며 예수님의 양들이, 진정한 seeker들이 교회에서 영적 공급을 받지 못하고 방황하게 될 것이라 우려합니다. 저는 한국 교회 현실도 미국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다 사려 합니다.
19세기 영국 교회는 챨스 스퍼젼 목사님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계속 Downgrade 되어 오늘날 텅 빈 혹은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것이 아닌 사람의 지혜를 선택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복음으로 양을 먹여야 합니다. 가스펠 라이프, 말씀 공부로 계속 먹이며, 말씀대로 살고 전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제자들과 교회 밖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며 박해의 유익을 가르쳐야 합니다. (롬 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박해로 주님의 약속과 천국의 소망의 기쁨을 알아가며, 믿음이 머리로만이 아닌 체험에 의한 실제적인 것으로 가슴 깊이 쌓여갈 것입니다. 딱딱한 음식의 유익을 알아가며 Downgrade가 아닌 믿음이 Upgrade 되리라 믿습니다.
마침
맺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는지요? 그럼 주님의 양을 먹이십시오. 그런데 그 길은 넓고 편한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 제자의 길은 "남이 매는 띠를 매고 가고 싶지 않은" 좁고 험한 길입니다. 세상은 절대 그 길에 박수 쳐주지 않습니다. 아니, 도리어 십자가에 매달 것입니다. 하지만, 함께 하시며 박수 쳐주시는 예수님으로 믿음이 더하고 생명의 소망을 확신하며 사도 요한처럼 차가운 감옥 안에서도 세상이 담을 수 없는 은혜를 기뻐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관련 문서
검색: 요한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