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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감정 표현: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thumb|350px|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서더라 (요 11:35) 이사야는 예수님 십자가를 예언하며 “슬픔의 사람” (a man of sorrows, 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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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삯은 사망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가 예수님의 “고민”과 연결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인류 혹은 심지어 제 한 개인의 죄가 얼마가 큰 것인지, 비교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얼마나 깨끗한 것이지, 그리고 죄를 꼭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 … D.L. 무디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말씀으로 하셨지만, 자격 없는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아들이 고통받으며 죽게 하셨다.” | 죄의 삯은 사망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가 예수님의 “고민”과 연결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인류 혹은 심지어 제 한 개인의 죄가 얼마가 큰 것인지, 비교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얼마나 깨끗한 것이지, 그리고 죄를 꼭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 … D.L. 무디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말씀으로 하셨지만, 자격 없는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아들이 고통받으며 죽게 하셨다.” | ||
== 놀라셨다 (sore amazed) == | |||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 |||
(막 14:33) <u>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u> | |||
개역개정에서 “놀라셨다”로 해석한 이 단어를 대부분의 영어번역은 “distressed” 혹은 “troubled” 즉 "괴로워하시다"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KJV은 개역개정처럼 “began to be sore amazed” 해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
신학자 프래드릭 레히(Frederick S. Leahy)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헬라어 원문의 이 단어는 어떤 물체가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것에 대한 표현에 쓰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과 슬픔에 대해 이미 알고 계셨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태풍 같은 커다란 고통(성부님의 진노의 잔을 마셔야하는)이가 가까이 다가옮에 대해 마치 갑작스런 고통처럼 심하게 느끼셨을 것입니다. | |||
* [http://www.twinstonewarden.com/2012/01/sore-amazed-what-does-this-mean.html 참고 - “sore amazed”란 무슨 의미인가 - Twinstonewarden.com] | |||
== 찾을 수 없는 것 == | == 찾을 수 없는 것 == | ||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는 예수님의 감정 표현: “웃으셨다”, “서두르셨다”, |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는 예수님의 감정 표현: “웃으셨다”, “서두르셨다”, "놀라셨다 (surprised)", “두려워 하셨다” | ||
* [https://www.ligonier.org/learn/qas/did-jesus-ever-laugh/ Did Jesus ever laugh - Ligonier.org] | * [https://www.ligonier.org/learn/qas/did-jesus-ever-laugh/ Did Jesus ever laugh - Ligonier.or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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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6일 (토) 08:19 기준 최신판
이사야는 예수님 십자가를 예언하며 “슬픔의 사람” (a man of sorrows, 53:3) 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또한, 셩경에 예수님께서 웃으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과연 진짜 웃으신 적이 없으셨을까 아니면 기록만 하지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복음서에서 보여주는 주님의 감정 표현을 찾아보며 주님 더 알고 더 닮아가기 원합니다.
불쌍히 여기사 (compassion)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불쌍히 여기셨다” 일 것이다 - C. H. Spurgeon
- 나사로의 죽음에 (요 11:33, 35)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 (마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불쌍히 여기다” 복음서에 가장 많이 언급한 주님의 감정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다. 죄의 종이 된,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가고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 하나님의 긍휼, 사랑이 느껴집니다. 창조주로서 피조물을 향한 그것이라 그 사랑이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기쁨 (joy)
칠십 인의 제자가 전도 여행에서 돌아와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 (눅 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기록은 여기밖에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 번 기뻐하셨겠지만, 특별히 기록하고 있으니 그 기쁨이 특별합니다. 제자들이 전도 여행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기뻐하고 주님은 그 보다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권면하십니다. 주님을 알아가는, 진리를 알아가는, 제자들의 기쁨이 곧 주님의 기쁨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분노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보시며, (요 2: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큰 감정과 화를 표현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이 감정을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이라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의 화내심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예배에 대한 우려에 근간을 두고 있으므로 순전하고 의로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다른 사건은 바리새인들을 향한 (막 3: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입니다. 바리새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영혼을 위한 배려의 화를 내신 것입니다.
고민, 슬픔 (sorrow)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입니다.
- (마 26:38)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My soul is very sorrowful even to death)
죽을 만큼 “고민하시다” 제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주님의 감정 표현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권능이 있으신 하나님께서 왜 고민 혹은 자신을 향해 슬퍼하시나? 당시 예수님의 상황을 그려 봅니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가륫 유다가 배반하고 자신을 팔 것, 수제자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아시는 예수님, 그리고 구원자로 온 자신을 거부하는 유대인들. 홀로 지셔야 하는 십자가. 그 길을 막으려는 사단의 유혹. 그리고 인류의 모든 죄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셔야 하는 … 그리고 (39)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사야는 예수님의 상황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죄의 삯은 사망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가 예수님의 “고민”과 연결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인류 혹은 심지어 제 한 개인의 죄가 얼마가 큰 것인지, 비교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얼마나 깨끗한 것이지, 그리고 죄를 꼭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 … D.L. 무디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말씀으로 하셨지만, 자격 없는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아들이 고통받으며 죽게 하셨다.”
놀라셨다 (sore amazed)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막 14: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개역개정에서 “놀라셨다”로 해석한 이 단어를 대부분의 영어번역은 “distressed” 혹은 “troubled” 즉 "괴로워하시다"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KJV은 개역개정처럼 “began to be sore amazed” 해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학자 프래드릭 레히(Frederick S. Leahy)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헬라어 원문의 이 단어는 어떤 물체가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것에 대한 표현에 쓰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과 슬픔에 대해 이미 알고 계셨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태풍 같은 커다란 고통(성부님의 진노의 잔을 마셔야하는)이가 가까이 다가옮에 대해 마치 갑작스런 고통처럼 심하게 느끼셨을 것입니다.
찾을 수 없는 것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는 예수님의 감정 표현: “웃으셨다”, “서두르셨다”, "놀라셨다 (surprised)", “두려워 하셨다”
- Did Jesus ever laugh - Ligonier.org
- Jesus ever hurry - Missionhills.org
- Is God ever surprised - Desiringgod.org
- Was Jesus ever afraid - Thegospelcoalition.org
적용/결론
주님께서 3년의 공생애, 십자가와 믿지 않는 이들을 생각하시며 고민하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제자들이 복음과 그것의 능력, 악을 물리치고, 영적으로 죽었던 이들이 생명을 얻는 능력 경험하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주님은 다 경험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진정으로,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연민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매일 회개와 거룩함을 사모하는 삶
예배자의 삶. 죄를 미워하고 회개함으로 거룩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삶. 그리고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으로 돕고 복음을 전하는 삶사는 저와 여러분 되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