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Sermon on the Mount)

Good4Joy
Good4joy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8월 29일 (토) 00:31 판
산상수훈 (마태복음 5-7장)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설교로 마태복음의 5개의 설교 (Five Discourses) 중 첫 번째입니다.

산상수훈은 복음서에 기록된 설교 중 가장 긴 것으로 “팔복”, “주기도문” 등의 유명한 가르침을 포함한 예수님의 아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입니다. 산상수훈은 실용적인 담론입니다. 그 안에는 기독교의 신조, 즉 믿어야 할 것들이 아닌, 해야 할 일들과 관련된 의제가 전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해야 할 일들로 설교를 시작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그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 문서는 "산상수훈 개요"와 그 주제가 되는 "천국의 백성", "율법",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기", 그리고 관련 자료로 "평상수훈"에 대해 정보를 모으고 정리해 봅니다. 주님께서 직접 하신 설교를 묵상하며 그분에 대한 사랑이 더 커지는 우리 되기를 기원합니다.

산상수훈 개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신 후에 첫 사역을 갈릴리 지역에서 하셨는데, 마태복음 4-14장이 그 사역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은 갈릴리 사역 중 일부이고 산상수훈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시작 때문입니다.[1] 산상수훈은 우리의 실질적인 왕으로서 예수님의 취임사로 비교할 수 있으며 그 취임사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어떻고 그 백성이 어때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 주제: 천국(축복, 기쁨, 행복)과 천국 백성의 윤리
  • 시간: 공생애 시작; 갈릴리 사역; AD 30년경 (4:12-25)
  • 장소: 갈릴리 (이스라엘 북쪽, 갈릴리 호수 서쪽) 지역의 한 산 (5:1); 전승에 의하면 가버나움 (Capernaum)과 디베랴 (Tiberius) 사이의 한 언덕
  • 청중: 제자 (5:1, 7:28), 천국 백성이 될 사람
  • 산상수훈은 한 번의 가르침이 아니고 여러 번 하신 가르침의 모음이라는 의견도 있음
  •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중 34개 절이 누가복음 6장에 있고 이를 평상수훈(Sermon on the Plain)이라 부름

가르침의 기준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도덕과 윤리의 기준이 높습니다.[2]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가르침이 실제적이지 않다고 일축하거나 미래 천국에서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오늘을 살아가는 제자(크리스천)에게 기준을 주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이 천국에서 박해받을 일(5:10)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힘으로는 이 가르침의 기준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에 있어 우리의 어떤 것도 내세울 수 없음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 (롬 3:19-2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 (갈 3:23-24)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산상수훈은 선행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방법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 죄인임을 깨달은 이(심령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회개하고 진정한 믿음이 순종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 믿습니다.

  •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설교 구조와 특지

산상수훈은 3포인트 설교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3 포인트 (도입, 본문, 결론/적용):

  1. 천국 백성 (5:3-16): 팔복 (Beatitudes) 즉 천국 백성의 축복과 역할 (빛과 소금)
  2. 천국 율법 (5:17-7:6): 예수님의 율법 완성, 예수님의 윤리 가르침과 유대의 율법주의 전통의 대조
  3. 천국 들어가기 (7:7-27):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좁은 문, 분별/열매, 반석 위의 집

그리고,

  • 산상수훈은 한 번의 가르침이 아니고 여러 번 하신 가르침의 모음이라는 의견도 있음
  •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중 34개 절이 누가복음 6장에 있고 이를 평상수훈(Sermon on the Plain)이라 부름

천국 백성 (5:1-16)

천국 백성은 어떻고, 이 땅에서 그들의 목적을 소개하며 설교를 시작하십니다.

  • (마 5: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여기서 “입을 열어” 하는데, 예수님이 입을 여시는 것 자체가 축복이요 그분의 말씀이 곧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복 있는 자는” 하십니다. 행복, 기쁨, 천국의 복음 즉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고 설교의 끝은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마 7:28)로 맺고 있습니다. 세금 징수원인 마태는 자신의 글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금 징수원들은 속기 형식으로 글을 쓸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는 마태가 사람이 말하는 대로 그 사람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능력은 마태복음의 말씀이 성령의 영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일부 설교를 그대로 받아 적은 것임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된 산상수훈은 그 위대한 메시지를 완벽하게 기록한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3]

팔복 (The Beatitudes, 5:3-12)

팔복 (The Beatitudes), 월터의 원고, W.171(15세기)의 폴리오

천국 백성의 축복의 선언으로, 여기서 복(Blessed)은 처한 상황에 좌우되는 세상적 행복(happy)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받은 백성이 누리는 완전한 행복(well-being)이고 특별한 영적 기쁨입니다. (같은 가르침: 눅 6:20-23)

  •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팔복은 라틴어 불가타역 성경에서 첫 단어인 "beati"(복 있는 자)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이 팔복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을 단계별로 보여줍니다. 첫째, 영적인 가난함은 회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마음자세이며, 따라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입니다. 둘째, 죄에 대한 슬픔입니다. 셋째, 온유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며,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자신의 특징입니다. 넷째, 의에 대한 영혼의 갈망입니다. 그다음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중요한 세 가지 덕목이 나오는데, 각각은 추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게 되는 보상을 가져다줍니다. 바로 자비, 순결, 그리고 화평을 이루는 것입니다. 10-11절에 나오는 마지막 두 가지 복은 제자들에게 격려가 되며, 그들의 진정한 제자됨을 시험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4]

빛과 소금 (5:13-16)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사 42:6)을 이루시며 “이방의 빛”이 되심을 이루셨습니다.

  • (사 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보며 (눅 2:30-32)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할을 계속 이어서 수행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참고 말씀:

  •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빌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천국의 율법 (5:17-7:6)

계명을 기록한 돌판과 모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자비가 아닌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의 율법의 기준을 낮추거나 변질시켰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정리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하거나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곡하고 잘못 행하고 있는 것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17-20절에서 예수님과 율법/율법의 완성으로 개관 설명하시고 5장 마지막까지 하나씩 설명해 주십니다.

율법의 완성 (5:17-20)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리심으로 그것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내재한 깊은 원리를 가르치시며 그 율법을 단순한 지식, 외형, 혹은 종교 행위로서가 아닌 온전한 순종(하나님을 온 맘으로 사랑)을 강조하십니다.

  •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은 두 가지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새겨 주신 십계명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심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율법입니다. 그러나 십계명 외의 생활 율법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폐하게 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사 율법은 단번에 영원한 속죄양이 되어주심으로 우리가 다시는 양을 잡아 하나님께 대속 물로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히브리서 10장 참고)

또한 유대인들은 당시 많은 규례를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벗어나 그들 스스로 의인임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즉 마음에서는 멀고 행위만을 함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했고,

  • (마 15:3)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예수님은 이러한 잘못된 율법 적용에 대해서 재정리해 주십니다. 즉 노하지 말라 (살인), 간음하지 말라, 맹세, 용서와 사랑으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십계명을 비롯한 구약의 주요 가르침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노하지 말라 (5:21-26)

"살인하지 말지니라"(출 20:13)의 구약의 가르침과 비교하여, 살인이라는 행위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내면적이고 원론적인 부분을 지적하시며, 화내는 것은 마음으로 살인하는 것과 같다 가르치십니다.

  •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같은 가르침: 눅 12:57-59

제자 요한의 관련 가르침:

  • (요일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간음하지 말라 (5:27-32)

“간음하지 말지니라"(출 20:14)의 구약의 가르침과 비교하며, “살인”(“노하지 말라”)에 대한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중요성 지적하십니다. 성적 타락 주의에 대해 예수님께서 여러 번 강조하셨고 제자들도 서신서를 통해 같은 내용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심지어는 영적 리더들의, 간음의 죄와 유혹의 위험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의 성적 타락에 대한 죄에 대해 극단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같은 가르침: 마 19:9; 막 10:11-12; 눅 16:18)

  • (마 5:28-2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눈을 빼고” “손을 찍어 내버리는 (cut it off and throw it away)” 표현을 쓰며 극단적인 대응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예를 들면, 맹인도 상상하며 간음의 죄를 지을 수 있으니, 예수님은 우리에게 불구가 되라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고 죄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 같은 표현: 마 18:8-9; 막 9:43-48

참고 말씀:

  • (욥31:1)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 (잠6:25)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5:33-37)

구약은 신성을 모독한 이 외의 맹세/서원(oaths)은 허락하고 있습니다. (레19:12, 신23:21, 삿 11:30) 하나님도 하십니다. (창 26:3; 시 132:11) 그리고 신약의 예도 있습니다. (행 18:18, 계 10:6)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결혼 서약, 법적 계약 등 약속을 해야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맹세를 많이 했을 뿐만 아니라 등급을 정해놓고 했었습니다. (참고: 마23:16-22) 깊이 생각지 않고 무심코 난발하는 것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즉흥적인 “하나님 이름이로”, “내 목숨을 걸고” …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맹세는 마치 믿음이 강한 것을 자랑하는 과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없으며 우리가 미래를 주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히 맹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은 말할 수 있고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 (마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 제자 야고보의 같은 가르침: 약 5:12

보복하지 말라 (5:38-42)

보복하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와 약한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주신 자비의 율법을 유대인들은 보복하는 “권리”로 악용했습니다.

  • (출 21: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모든 문제를 보복이나 폭력으로 풀려하지 말고 평화하기를 명령하십니다. 

평화를 위하여 가능한 참고 주님께 걱정을 맡겨라. 크리스천은 분쟁과 분란을 피해야 합니다.

  • (마 5:39)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참고 말씀:

  • (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원수를 사랑하라 (5:43-48)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

당시 유대인들은 이웃을 이스라엘 즉 같은 민족과 같은 종교의 범위에 두고 그 테두리 안에서 사랑의 율법을 지키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편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이들뿐 아니라 원수를 포함하여 모두를 사랑하라 명령하십니다. 특히 모든 이의 영혼을 사랑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같은 가르침: 눅 6:27-36)

  • (마 5:44)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세상 사람과 다르게 (우리의) 원수까지 사랑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러므로”

  •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참고 말씀:

  • (벧전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 레 11:44; 19:2; 20:7

은밀한 선행 (6:1-18)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마 6:6)

구제, 기도, 금식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종교 행위였습니다. 3가지 모두에서 예수님은 외식(남들에게 보이려는)을 삼가라 지적하십니다. 모두 비밀스럽게 즉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마음으로 하라고 가르치십니다.

  • (마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3가지는 (2) “구제할 때에”, (5) “기도할 때에”, (16) “금식할 때에”로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때에”의 영어 해석은 “when you …” 입니다. “if”가 아닌 “when”으로 3가지를 할 때 이렇게 하라 가르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이 구제, 기도, 금식하는 것을 전제하십니다.

  •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리고 예수님은 주기도문으로 알려진 (마 6:9-12)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 찬양, 하나님 나라의 완성, 죄 용서, 그리고 필요를 구합니다. (같은 가르침, 기도: 눅 11:2-4)

  •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6:9-13)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입에 말씀을 넣어 우리의 이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9절).” 많은 유대인들이 기도를 잘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기도를 위한 새로운 지침서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반적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이 기도의 주제와 방법은 우리가 틀로 잘 사용될 수 있게 말로 주어졌고 우리 기도의 여러 세부사항을 요약하거나 내용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형식만을 사용하거나 마치 이것이 우리의 다른 기도 제목들을 봉헌하는 데 필요한 것처럼 항상 이 형식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이런 말로, 또는 이런 취지로 기도하라는 지침을 받습니다.[5]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 (6:19-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 6:34)

예수님은 본문에서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즉 현세 것들을 위해 살지 말고 하늘에 보물 즉 영생을 위해 살라고 가르치십니다. 천국 백성은 다른 사람의 눈 때문에 외식하거나, 자신을 위한 이기주의가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같은 가르침: 누가복음 11:34-36; 12:22-34; 16:13)

비판하지 말라 (7:1-6)

우리 구주께서는 여기에서 다른 사람의 결점과 관련하여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지시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책망은 당시 매우 완고하고 가혹하며 오만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기 위해 의도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교만하고 자만하여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모든 사람을 정죄했습니다.[5] (같은 내용: 눅 6:37-38, 41-42)

천국 들어가기 (7:7-29)

7:7~29절은 전체 산상수훈 설교에서 적용/결론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반석 위에 집을 짖는 것, 즉 믿음이 있어야 함을 가르치시며 결론을 맺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7:7-12)

하나님은 찾는 자를 만나 주신다고 하셨습니다.(같은 가르침: 눅 11:9-13)

  • (마 7:11)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악한 자라도”(If you then, who are evil, ESV) - 예수님께서 인간의 타락 즉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의 교리를 미리 추정하십니다.[6]

"좋은 것” - 누가는 "성령"이라 썼는데(눅 11:13)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는 보다 일반적인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둘 모두 기도를 계속하면 응답을 받고 허락될 것이라는 주님의 보증이 있고 기도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어야 한다는 중요한 제한이 있습니다.[7]

좁은 문 (7:13-14)

넓은 길과 좁은 길 - Charlotte Reihlen

예수님이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좁은 문이십니다. 예수님만을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같은 내용: 눅 13:24)

  •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노력” 하라고 지시하시면서 이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힘쓰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아고니조마이(agonizomai)인데, 여기서 영어 단어 agonize가 유래되었습니다. 여기서 암시하는 바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마치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선수처럼 모든 근육을 팽팽하게 하고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우리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믿음의 선물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엡 2:8-9). 누구도 노력해서 천국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인간의 교만, 죄에 대한 우리의 본성적인 사랑, 사탄과 그가 지배하는 세상의 반대 때문에 여전히 어렵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영원을 추구하는 우리와 싸우고 있습니다.[8]

참고 말씀:

  •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열매로 분별 (7:15-29)

거짓 선지자는 열매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바른 믿음을 가진 이는 말씀을 듣고 행하므로 좋은 열매를 맺고 그들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같은 가르침: 눅 6:43-44, 47-49; 13:25-27)

  •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열매가 없다는 것은 그 믿음의 진정성을 드러냅니다. 말로 하는 믿음일 뿐 진정으로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닌 진정한 믿음은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고보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약 1:22-25; 2:26)[6]

설교는 반석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의 비유로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가르치며 마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실 심판자라 말씀하시며 산상수훈의 결론을 내리셨고 청중은 그의 가르침의 권위에 놀라며 산상수훈은 마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이는 믿음이라는 선물을 받고 주님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관련 자료

평상수훈 (Sermon on the Plain)

누가복음 6:17-49에 기록하고 있는 평상수훈은 복과 화 (Blessings and Woes), 원수 사랑, 비판하지 말라, 열매/듣고 행하는 자 산상수훈의 일부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평상수훈이라 부르는 이유는, (눅 6: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왜 같은 내용을 마태는 산에서 누가는 평지에서 했다고 기록했을까 라는 질문에, 어떤 이는 예수님께서 비슷한 설교를 여러 번 하셨다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대중적인 해석은 높은 산도 아니었고 산에도 평평한 지역이 있을 수 있기에 같은 설교라고 설명합니다.

참고로 누가는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내용을 4:14-9:9에 담고 있습니다.

참고한 자료

관련 문서

각주

  1. (마 5:1) 산에 올라가
  2.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3. https://www.gotquestions.org/Gospel-of-Matthew.html
  4. 케임브리지 성경 (Cambridge Bible for Schools and Colleges)
  5. 5.0 5.1 메튜 헨리 주석 (Matthew Henry's Commentary)
  6. 6.0 6.1 존 맥아더 스터디 바이블 (John MacArthur Study Bible), 2nd Edition, 2021, Thomas Nelson
  7. 강단 주석 (Pulpit Commentary)
  8. https://www.gotquestions.org/narrow-gat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