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Good4Joy 프로젝트는 위키를 기반으로 하는 독립 웹사이트(good4joy.org)와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love_of_jesus) 두 곳에서 콘텐츠를 제공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최근 문서들이 있고, 위키는 후에 업데이트하려고 하니 참고하세요."
에스라 4 (예루살렘 재건 방해)
- 본문: 에스라 4:1-10
- 일자: 2018/04/05 (목)
- 오디오: 파일:Ezra4.m4a
서론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후반부)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은 스룹바벨의 지휘 아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무너졌던 성전 재건축이 시작됩니다. (3:12)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대성통곡하고 어떤 이들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 재건을 방해하는 장면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하고 백성들은 나라에서 추방되어 강제로 적국에서 이국땅에서 70년의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조상들이 우상 숭배와 영적 타락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귀환,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전 재건축의 감흥, 기대, 기쁨, 그리고 영적 부흥으로 가고 있는데, 방해를 받습니다. 그들의 대적 사마리아인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방해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어떻습니까? 사단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그리고 계속, 예수님 뵙는 그 날까지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할 것입니다. 전쟁이라 표현되는 맹렬한 영적 방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그런 방해와 그에 대해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지혜를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본론
성전 건축 방해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 (adversaries, enemies),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의 남유다와 비교되게 나머지 10지파의 북이스라엘은 사마리아 지역 살았습니다.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점령했을 때 (2) 에살핫돈왕은 (앗수르의 5번째 왕, BC 720 경, 왕하 17), 이스라엘 백성을 앗수르에 포로로 데리고 갔고 또한 이방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습니다. 그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건축 소식을 듣고, (2) 자신들도 돕겠다고 합니다.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하며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사마리인들은 바알을 비롯해 가증한 우상들을 많이 섬겼는데, 하나님도 겸해서 섬겼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인도에 보면 여러 신상 중에 예수님상도 갖다 놓고, 마치 보험 드는 것처럼, 다른 우상들과 함께 하나님도 섬기는 것이죠.
이런 사마리아인들의 제의에 유대인들이 거절했고,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손을 약하게 하여 (discouraged ... and made them afraid) 사기를 떨어뜨리고 afraid 두렵게 하는데, 히브리 원문의 이 단어는 전쟁터 등에서 느끼는 두려움에 쓰는 단어라고 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을 매우 두렵게 위협하고,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방해합니다.
성벽 건축 방해
(6) 아하수에로 ... (7) 아닥사스다 ... 바사 왕 ... 에게 글을 올렸습니다
아하수에로 왕 (BC 486 - 465, 에스더를 왕비로 맞았던), 아닥사스다 왕은 아하수에로의 아들로서 (BC 465 - 424) (스 7)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킨 왕입니다. 그래서 시간순으로 볼 때, 6절부터는 성전이 완공된 후, 성벽 공사 때, 즉 느헤미야 때의 이야기입니다. 에스라서 저자는 시간적 흐름을 잠시 벗어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하는 사건의 관점으로 책을 써나가고, 5장에서 다시 성전 건축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우리는 시간적인 흐름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시간순으로 흐르는 이야기가 이해가 편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꼭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처럼 시간순이 아닌 때로는 주제 중심적인 전개 방식을 쓰고, 그리고 성경 66권 책들이 시간순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공간 개념은 우리가 인식하고 혹은 이해하는 것을 초월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이런 시간 흐림이 아닌 주제 중심적인 전개 관점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묵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에스라서 저자는 사마리아인들의 지속적인 예루살렘 재건 방해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가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왕에게도 글을 올리는데, 고대 근동 지방 왕들은 지역의 근황 감시, 스파이 목적으로 지역 백성이 왕에게 글을 올리는 상소 같은 시스템을 장려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글을 아람어로 썼다고 하는데, 아람어는 바사 제국 당시 국제 외교 통상 언어였습니다.
그 글은, (8) 방백 (the commander, NIV the commanding officer) 르훔과 서기관 (the scribe, the secretary) 심새 (9) 그의 동료 (their associates) 그리고, 바사 사람 다블래, 바벨론, 수산 사람들 (수사, 에스더, 느헤미야가 살았던) 하며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고발함을 쓰고 있습니다. (10) 오스납발 왕은 (2) 에살핫돈 왕에 이어 앗수르의 6번째 왕인데, 그 왕이 귀환 혹은 이주 시킨, 유브라데 강 (유프라테스강) 즉 바벨론에 볼 때 강 서쪽 건너편 유다 땅 쪽 사람들이 함께 고발한다 하며 오늘 본문을 맺고 있습니다.
적용/결론
영적 방해를 인식하자
사마리아인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성전 건축, 예루살렘 재건을 방해합니다. 그리고 계속 방해합니다. 손을 약하게, 두렵게 하고, 실망시켜 사기를 저하합니다.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세상 주관자들에 글을 올려 고발하고, 여러 방법을 쓰고 계속 방해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단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우리를 방해했고, 지금 이 순간도 방해하고, 그리고 계속 방해할 것 입니다. 두렵게 하고, 실망 시키고 사기를 저하하고, 미디어, 사회, 지역, 문화, 국가를 통해 방해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오늘날 교회에 가장 효과적인 방해가 무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며 접근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거절하지 않고 사마리아인들과 서로 도와서 하면 일도 빨리 되고, 미움이나 방해도 없이 평화롭고 좋았겠다도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뿐 아니라 우상도 함께 섬기는 이들 이었습니다. 민수기에 거짓 선지자 발람 이야기가 있는데, 발람은 이스라엘의 영적 붕괴를 꾀하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방해한 것이 아니라 이방 여인들과 동침시키고 우상도 함께 섬기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단은 교회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하게 보기 좋게 예수님과 함께 다른 것도 섬기게 합니다. 종교 다원주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커다란 마음 같습니다. Seeker Friendly 교회, 믿지 않는 사람들이 편하게 참석할 수 있게하는, 넓은 사랑을 배푸는 것 같습니다. 험한길, 좁은문, 박해 받는 십자가의 삶이 아닌 듣기 편하고 좋아 보이는 가르침. 예수님 이름도 걸고, 종교 활동도 하고, 믿는 것 같고, 평화롭고 좋아도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결국은 우리의 신앙의 방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다른 이들처럼, 대충하지 뭐 하며 사기를 저하시키고. 더 나아가 자신의 믿음에 의심하거나 두려움도 줍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기복신앙 같은 세속적이고 간지러운 귀를 긁어 주는 가르침이 가장 효과적인 영적 방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적 방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목적은 같습니다. 우리를 세상으로 끌어드려 거룩하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도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고, 결국 세상의 많은 영혼이 복음도 들어 보지 못 한 체 죽어가게 하는 것이지요. 많은 영적 방해. 그것도 지속적이고 맹렬한 방해가 있다는 것 예상하고 인식하고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영적 방해를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오늘 본문 관련,
영적 순결로 이기자
스룹바벨과 유다의 리더들은 사마리아인들의 제안에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다" 하며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유다 리더들은 적대하는 사마리아인들이 보복하여 방해할 것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공사가 지연되고 협박과 거짓 고발을 당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신앙생활에서, 의를 지키고, 복음 전하면 세상 박해받습니다. 하지만 박해를 무릅쓰고, 유다 리더들처럼, 우리는 영적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심지어는 목숨도 걸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일제 시대 신사 참배한 한 목사를 존경한다고 하더군요. 그 목사는 신사 참배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이 좋은 분이셨기에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우상 숭배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 리더로서, 순결을 지키지 못하는 것, 저는 존경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것, 예수님 말씀 순종이 아닌 편한 대로 세속적으로 가르치는 것,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종교 다원주의, 이단, 우상숭배, 기복신앙에 우리는 단호하게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다" 해야 합니다. 그런 가르침들이 눈에는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어떤 길은 사람 보기에는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는 잠언 기자의 충고를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많은 영적 방해, 우리는 어떤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영적 순결로 지켜야 하겠습니다.
맺음
사마리아인들이 방해했고, 유대인들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후에 결국, 성전은 완성되고 성벽은 재건됩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1:1) 하나님께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공격은 맹렬히 계속되지만, 주님께서 2000년 전에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승리하셨기에 우리 그리스도인, 남은 이는 결국 승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승리뿐 아니라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승리를 경험 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그 승리는 세상적인 번영의 그것이 아니고 순결을 지키는, 십자가 고난의 승리입니다. 유대인들이 우상을 섬기는 사마리아인들을 거절하여 고난받은 것처럼, 우리가 의를 위해,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박해받고 심지어는 죽을 수도 있는, 세상이 볼 때 패배하는 것 같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 순결, 십자가의 승리는 다른 영혼들을 살릴 것이고, 그 십자가의 승리는 주님의 부활의 최종 승리에 동참하는 영광의 승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많은 영적 방해, 영적 순결로 지켜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관련 문서
검색: 에스라
쿼리 설명에 조건이 비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