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2 (선지자 미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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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4joy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6월 26일 (금) 17:24 판
아합여호사밧 왕 앞의 선지자 미가야 (왕상 22장)
  • 본문: 열왕기상 22:13-21

제가 미국에 처음 이민 왔을 때, 직장 동료분의 초대로 동네의 한 한인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교회였지만, 어른들을 위한 한국어 예배와 더불어 아이들은 위한 영어 예배도 있었습니다. 믿음은 없었고, 영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영어 예배를 드려도 되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젊은 영어권 목회자분께서 교회는 예배를 드리는 곳이지 영어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고 거절했습니다. 저는 믿음은 없었지만, 그분이 틀린 말씀하시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교회에 교인을 한 명이라도 더 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생기고 나니 그분이 가끔 생각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미가야 선지자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생각해 보며, 얼굴이나 성함은 생각나지 않지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서론

열왕기의 오늘 본문까지 내용을 요약해 보면, (1-2장) 다윗의 말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권을 잡습니다. 솔로몬은, (3-4장)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나라의 번영을 이루고, (5-8장) 성전 건축으로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그런데, (11장) 많은 이방 여인과 결혼한 솔로몬은 나이가 들어가며 (11:4) 이방 신 섬기며 패망의 길로의 행보가 시작됩니다. 12장부터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분단 시대가 시작되고 부패한 왕들이 소개됩니다. 남 유다에는 가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왕들이 있었으나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기까지, (열왕기하 17장) 20명의 왕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특히 16장부터 등장하는 아합은 이스라엘 7대 왕으로 22년을 다스렸는데, 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16:30-31)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열왕기 기자는 이 가장 악했던 아합 왕의 이야기를 열왕기상 16장부터 22장까지 무려 7장에 걸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한 왕들로 인하여 멸망으로 가고 있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그냥 버리지 않으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회개하라 경고하십니다. (14장) 여로보암 왕 때 아히야 선지자, 바아사 왕 때 예후, (17장) 아합 왕 때 엘리야 등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는 선지자들의 이야기가 악한 왕들의 이야기와 함께 전개됩니다. 오늘 본문은 선지자 미가야 이야기입니다.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 아합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아합이 아람(Aram, ESV, KJV Syria) 공격해서 영토를 뺏자고 제안합니다. 여호사밧은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고 합니다. 아합은 400명의 선지자들을 부르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아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22:6) 합니다. 이에, 여호사밧은 다른 선지자가 없는지 묻고, 아합은 자신이 싫어하는 미가야를 부릅니다. 미가야는 이미 구금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본문 공부

  • (13절)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이 일러 이르되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 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400명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조언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언론, 문화, SNS, 대중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하면 좋은 게 좋은 거야 ...",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 ..", "뭔, 전도 당신 삶이나 잘 살아 ...". 설교도, 죄, 공의, 예수님 재림, 혹은 심판 등의 경고보다는 축복, 은혜, 사랑 만을 이야기하는 설교가 듣기 편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언제나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 (14)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미가야의 위대함은 용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며, 세상을 듣는 것보다, 말씀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느낍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세상을 보며 세상을 따라가는 가르침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미가야 같은 선지자, 바울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용감하게 복음의 삶을 산 믿음의 선배를 보며 우리는 믿음을 지키는 힘을 얻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그것이 우리에겐 복음이지요.

아합은 미가야가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지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미가야를 미워했습니다. 미가야가 아닌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지요. 많은 불신자가 있는 이곳에서, 그리고 기복과 이기주의가 팽배한 문화를 보며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지켜야 할지 묵상해 봅니다. 미가야 처럼, 400명 중에서 1명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누구도 왕따 당하는 것을 즐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은혜 아니면 성령님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두려운 생각이 들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이루신 승리로 우리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 (15) 이에 왕에게 이르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또는 말랴 그가 왕께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6절에서는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하는데 여기서는 "우리가"로 바꾸어 여호사밧과 함께라며 미가야에게 좀 더 좋은 대답을 들으려 합니다. 이에, 미가야가 처음에는 400명의 선지자들과 똑같이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라고 말한 것은 진심이 아니라 영적 '풍자(Sarcasm)'이자 '반어법'이었습니다. 아합 왕이 하도 거짓말만 좋아하니 "원하시는 대로 영혼 없는 축복을 해드리겠습니다"라는 뉘앙스였습니다.

아합은 미가야가 비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몇 번이나"(16절) 하는 것으로 보아 미가야는 여러 번 왕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7절 "목자 없는 양", "주인 없는 무리" 하며 왕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 (18)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아합은 그의 불쾌함을 잘 드러냅니다.

  • (19)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진정한 선지자는 하나님의 실질적인 계시를 보기에 진실한 말씀을 선포할 수 있었다. 미가야의 하늘 보좌에 대한 설명은 땅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확실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와 10절의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좌와 대조하며 기술되어 있습니다.

즉, 미가야는 땅의 왕보다 하늘의 왕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땅에서는 아합, 여호사밧이 왕좌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진짜 왕좌는 하늘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 대조가 열왕기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 (21)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미가야는 자신이 본 환상, 곧 거짓말하는 영이 거짓 선지자들을 책동하여 아합을 유혹할 것이라는 환상을 담대히 전하였습니다. 미가야가 왕에게 이와 같은 흉조를 선포하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확신과 담대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아가페 큰글 성경 2005

하늘 보좌 환상은 단순히 흉조를 예언한 것이 아닙니다. 땅의 왕들(아합과 여호사밧)이 화려한 보좌에 앉아(10절) 스스로 역사의 주관자인 양 전쟁을 결정하지만, 진짜 역사를 통치하시는 분은 하늘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적용과 결론

제가 미국 이민 와서 처음 갔던 교회의 젊은 목회자분은 저에게 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셨기에 진실을 말할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미가야도 세상이나 권력자 아합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과 타협하는 아합의 400명의 선지자들입니까? 아니면 손해를 보지만 진실되게 살아가는 미가야 선지자입니까? 세상이 두렵게 느껴져,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습니까? 박해의 두려움보다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담대히 전합니까?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많은 이들이 가지 않는 좁고 험함 길을 갑니다. 쉬운 일이 아니고, 주님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행 1:8) 우리는 세상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박해에서도 복음을 지키며 자신을 증거하게 도우십니다. 그래서 삶의 순간순간에 복음을 지키고, 바른 복음을 가르치고, 그리고 순교의 현장에서도 믿음을 지키게 하는 것이 주님이라 믿습니다.

맺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바른 말을 하는 미가야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까? 아니면 세상이나 권력에 타협하는 400명의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까?

사실 우리는 미가야보다 400명의 선지자에 더 가까운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부르시고 성령으로 담대하게 하셔서 진리를 말하게 하십니다. 우리도 400명의 선지자처럼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이 듣기 싫어하는 진리를 끝까지 말씀하셨고, 결국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늘도 우리 안에서 미가야처럼 살 힘을 주십니다.

관련 문서

검색: 열왕기상

참고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