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6 (거룩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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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라는 베드로전서 3:15 말씀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가끔 이 말씀을 되새기며 복음을 나누는 마음을 점검하고 스스로 권면하기도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과 복음의 기쁜 소식을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전하며 함께하시는 성령님과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며 너무나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2주 여행을 마치며 미국으로 돌아오기 하루 전 마지막으로 아버님께 복음을 전했습니다. 2주간의 경험을 합하여, 저는 자신 있게 복음을 잘 전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다 듣고 난 후, 아버님의 대답은 No였습니다. 저는 매우 실망하여 심지어 화를 냈고,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믿지 않으신 것에 대한 실망과 제가 화를 낸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합쳐져 무거운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왔어야 했습니다.

후에 제가 좋아하는 베드로전서 3:15에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뒤에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씀을 온전하게 마음에 담았다면 불미스러운 상황을 피할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건으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잘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아픈 경험을 통해서 얻었었는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그 사건이 기억났습니다.

본문 요약

오늘 본문을 요약하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다윗 왕은 당시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기로 합니다. 다윗은 장정 3만 명을 동원하여 궤를 수레에 얹어 옮기기 시작했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음악도 연주하며 기뻐했다. 그런데 수레를 끌던 소가 발을 헛디디자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궤를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궤를 만진 웃사는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두려워하며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지 못하고 대신 오벧에돔의 집에 옮겨 놓습니다.

참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쁜 마음으로 궤를 옮기고 있었고, 웃사는 흔들리는 궤가 넘어지지 않게 하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웃사를 죽이기까지 하셔야 했는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어려운 말씀이지만, 말씀을 묵상하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참사 뒤에 있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헤아리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함부로 만지면 안 되고 옮기려면 덮고, 궤 옆 고리에 막대를 끼워서 어깨에 메고 옮겨야 했습니다(민 4:15, 신 31:9, 수 3:3). 그런데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은 궤를 수레에 올려 소로 끌고 갔으며, 만지면 죽으리라 했는데, 웃사는 하나님의 궤를 만졌습니다.

  • (삼하 6: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웃사의 '잘못함'은 영어 성경에는 'irreverent', 즉 궤를 만진 불손함에 벌을 내리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인원을 동원했고, 새 수레와 여러 악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열심을 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요? 그가 말씀이나 규례 자체를 몰랐다기보다는, 은혜에 너무 흥분하여, 고귀한 하나님의 거룩을 잠시 잊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6:2)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궤 위의 그룹들, 천사들 사이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 위대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언급하며, 사무엘서의 저자는 그것이 얼마나 특별하고 거룩한 것인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경외함으로 말씀을 잘 지켰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죠. 하나님은 자비, 은혜, 긍휼, 인내,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또한, 죄를 쳐다보지도 못하시는 공의, 거룩의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함을 잊은 이유

그렇다면,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다윗과 이스라엘이 왜 하나님의 거룩함을 잊고 말씀을 가볍게 여기게 되었을까요? 두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교만함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온갖 역경을 지난 후 드디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기게 해 주셨고, 대적이 된 사울 왕을 가장 선한 방법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철옹성 같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막강한 블레셋과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다윗은 이제 하나님의 궤를 '다윗'의 성으로 옮기며, 인생 최고의 순간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과정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했습니다. 그 흥분으로, '인간' 다윗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잠시 잊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승리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이지 다윗이 위대하기에 이룬 것이 아닙니다. 다윗도 평소에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 다윗이 이 사실을 잠시라도 잊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겸손함이 아닌 교만함으로 그분의 거룩함을 잊었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과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역대상 13장에도 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윗이 기도했고,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승리의 기쁨에 겸손함을 잊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승리의 순간에 겸손함을 잊고 실수한 다른 예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고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이 질문에 베드로는"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고, 100점짜리 대답을 합니다. 베드로는 이 대답으로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는 최고의 칭찬을 듣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고 하신 예수님께,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며 항변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 16:23)라는 말씀을 들으며, 이번에는 최악의 야단을 맞습니다. 예수님의 칭찬으로 들뜬 마음이 베드로 스스로 고백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지극히 높은 권위 앞에 겸손해야 함을 잊게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 16절 바로 뒤 17절에 보면,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즉 베드로의 고백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잊게 하고 말씀을 가볍게 여기게 합니다. 우리도 서론에서 간증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흐름을 느낄 때, 종종 흥분하여 실수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적용은,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삶에서 승리나 혹은 고난의 터널을 지나며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 앞에 항상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사역이나 삶에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허락하실 때 우리는 모든 영광을 홀로 받기 합당하신 분께 돌려야 합니다. 모든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것이고 주시기 것도 거두시는 것도 그분의 주권이라는 것을 명심하며 하나님 앞에 머리 조아릴 때 더 높여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줄 믿습니다.

친숙함

하나님의 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오기 전 궤 안을 들여다보다가 70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사무엘상 6:19). 그 사건 후 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옮겨져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이상 있었다고 합니다. 몇십 년의 긴 시간이 지나며 70명이 죽은 그 사건의 기억은 퇴색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웃사가 그 사건을 직접 보고 경험하지 못했었다면 그 심각성을 더 쉽게 잊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집에 있었던 언약궤에 친숙해졌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며 웃사의 마음에 하나님의 궤는 멋진 장식장으로 변해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친숙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잊고 수레 위에 궤가 흔들릴 때 두려움 없이 그 궤를 만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친숙이 볼손을 낳는다"(familiarity breeds contempt)라는 미국 속담이 떠오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그의 어린 시절을 잘 아는 고향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고 도리어 배척했습니다(마태복음 13:55-57).

크리스천 여론조사 기관인 바나 그룹의 2014년 한 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미국인은 거룩이 무엇인지 모르고 크리스천들도 거룩함의 중요성이나 의미를 이해하거나 거룩한 삶을 갈망하지 않고 있다 합니다. 그 조사는 이렇게 결론짓고 있습니다. 오늘날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크리스천의 수는 매우 드물다. 기독교 국가라고 자부(?) 하는 미국에서, "매우 드물다"라는 참 두려운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기독교가 진정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아닌 그저 친숙한 문화가 되어간다면,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이 아닌, 내게 편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고 더 나아가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친함은 주님을 거룩하지 못한 우리에게 낮추는 것이 아닌, 우리가 그분의 거룩함을 닮아 가는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은 교만과 잘못된 친숙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고 그것은 죽음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 (6:11)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웃사를 치셨던 같은 손이 오벧에돔과 그의 집안에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후에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하나님의 규례'대로 예루살렘 성으로 잘 옮깁니다. 거룩하신, 그리고 자비의 하나님은 다윗과 이스라엘의 실수를 용서하십니다.

제가 아버님께 복음을 전하다 교만해져서 화를 내며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은 후 약 석 달 뒤, 어머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어머님과 함께 세례를 받으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에 주인 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주권자 하나님. 저의 부끄러운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지각을 추월하는 선을 행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자비를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한 걸음 더 가까이 오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렸습니다.

교만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거룩은 불편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좋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한 저와 여러분에게 거룩은 아름다운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만남인 십자가가 아름다운 것처럼요. 말씀과 순종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더 알아가려 노력합시다. 그러면 당신의 거룩하심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겨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는 저와 여러분 될 거라 믿습니다.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뛰어난 거룩과 자비를 경험하며 다윗의 믿음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고, 이스라엘의 뛰어난 왕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다윗 왕을 기뻐하며 잘 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더욱 뛰어난 왕이 계십니다. 주중에 주되시고 왕중에 왕 되시는 예수님입니다. 천국의 천사들을 그를 향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양합니다(계 4:8). 그분을 기뻐하며 잘 섬깁시다.

참고한 자료

관련 문서

검색: 사무엘

일자: 2016/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