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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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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의 그리스도 동상

2022년에는 일본의 기독교인이 126만 명으로 2019년의 190만 명보다 감소했습니다. 21세기 초에는 인구의 1% 미만에서 1.5% 사이가 기독교 신앙이나 소속을 표명했습니다. 2023년 12월 현재 일본의 기독교인은 모두 약 90만 명으로 이는 일본 총 인구의 0.73%입니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전통적으로 신도나 불교를 믿습니다.[1]

역사

포르투갈 가톨릭 선교사 (1549)

일본에 처음 기독교가 나타난 것은 1549년 포르투갈 가톨릭교도들이 일본에 도착하면서였다. 나바라 선교사 프란시스 자비에르는 일본에 교회를 세우려고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현지 일본인들은 처음에 외국인들이 인도 출신이고 기독교가 새로운 인도 종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인상은 포르투갈과 인도 사이에 이미 존재하던 유대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그후 가톨릭 선교 활동은 예수회(Jesuits)와 탁발 수도회(Mendicant orders)에 의해 이어졌습니다. 일본에서 가톨릭 개종은 규슈에서 최초에 일어났습니다. 오무라 스미타다, 아리마 요시사다, 오토모 소린과 같은 지역 군벌의 개종이 많은 신민의 개종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지역의 몇몇 엘리트의 개종은 군벌들이 서로 지배권을 놓고 경쟁했던 센고쿠 시대(1467-1615)의 권력 분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테렌 추방령 (1587)

오다 노부나가 치하에서 예수회는 그의 섭정의 호의를 누렸습니다. 오다의 후계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처음에는 기독교를 보호했지만 나중에 바테렌 추방령 (Bateren Edict)을 발표하면서 선교 활동을 금지하면서 정책을 바꾸었습니다. 히데요시는 예수회가 일본인을 해외에 노예로 팔고, 기독교인들이 신사와 사찰을 파괴하고,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이로 인해 칙령이 내려졌습니다.

막부 시대의 박해 (1600)

히데요시와 그 뒤를 이은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는 가톨릭은 탄압을 받았고 교인들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1597년 천주교를 억압하기 위해 일본 신자 26명이 나가사키 외곽에서 고문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즉은 것입니다. 그리고 1613년, 1622년(겐나대순교, 나가사키, 55명 죽음), 1623년(에도대순교, 동경, 50명이 산 채로 불타 죽음), 1630년, 1632년, 1634년에도 추가적인 박해와 순교가 있었습니다. 도쿠가와는 살인, 박해, 포고령을 통해 일본에서 기독교를 근절했습니다.

1637년 마츠쿠라 가츠이에는 사람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기독교인을 억압했습니다. 이는 기근과 합쳐져 1638년 기독교인이 주도한 시마바라의 난으로 이어졌고, 약 37,000명(대부분 기독교인)이 학살당했습니다. 반란은 농민 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나중에 기독교인도 이 대의에 가담했습니다. 이것은 일본 역사상 가장 큰 반란이었습니다. 50년 동안 쇼군의 단속 정책으로 기독교인의 수가 거의 0으로 줄었습니다.

개신교 선교사 (1846)

버나드 장 베텔하임 (Bernard Jean Bettelheim)는 ​​헝가리 출신 영국 성공회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유대인들 사이에서의 교회의 사역” (Church's Ministry Among Jewish People)을 통해 의료 선교사로 일본으로 보내집니다. 1845년 9월 9일 포츠머스를 출발한 베텔하임 부부는 이듬해 1월 홍콩에 도착했습니다. 다음해 1846년 4월 30일 홍콩에서 오키나와에 도착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Elizabeth M. Bettelheim이고 그들에게 유아 딸이 함께 있었습니다.

제임스 커티스 헵번(James Curtis Hepburn, M.D., LL.D.)은 1859년 일본에 도착한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로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헵번은 미국 장로교 선교 기관 (Presbyterian Mission Agency)을 통해 의료 선교사로 왔습니다. 그는 메이지가쿠인 대학을 설립했고 일본어-영어 사전을 썼습니다.

메이지 유신 (1868)

1853년 일본이 외국과 더 많이 교류하게 된 후, 많은 기독교 성직자들이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에서 파견되었지만, 선교는 여전히 금지되었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1년에 종교의 자유가 도입되어 모든 기독교 공동체에 합법적인 존재와 설교의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기독교인 수는 다시 천천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약 100만~200만 명의 일본인이 기독교인(일본 인구의 약 1%)이며, 전국에 교회가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은 16세기에 선교사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서부 일본에 살고 있습니다.[2]

요코하마 카이간 교카이(1872)

요코하마 카이간 교카이(교회)는 1872년 3월 10일에 이 나라에서 일본인을 위한 최초의 개신교 교회로 설립되었습니다. 설립 당시 미국 개혁 교회와 장로교회의 신앙과 전통을 계승했습니다. 첫 번째 목사는 J.H. 발라흐 목사로, 러트거스 대학과 뉴브런스윅 신학 대학에서 공부한 후 1861년에 아내와 함께 요코하마에 도착한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3]

1872년 설립 이래,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일본인의 총 수는 무려 6,000명에 달합니다.

주요 교단

2020년, 개신교 신자 수는 600,000명으로 이는 일본 전체 인구의 0.45%이다. 일본기독교단 (The United Church of Christ in Japan)이 1941년 일본 내 33개의 개신교 교파 연합으로 설립되었다. 2024년 현재 신자수 200,000명으로 개신교 중 가장 큰 교단이고 WCC에 가입하고 있다. UCCJ는 현재 1,725개의 교회와 2,189명의 목회자가 속해있다.

그 외 가톨릭 약 431,000, 여호와 증인 212,000명, 몰몬 128,000명이 있다.

관련 자료

관련 문서

참고한 자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