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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4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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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4joy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8월 26일 (토) 16:1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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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문: 시편 74:12-23
  • 날짜: 2016/12

도입 (간증, 질문)

(1-11) 어제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의 현실이 매우 어렵고 황폐한데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지 질문하며 간절함을 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지만,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며, 복음을 전하며 힘든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또한 연약한 육체나 죄의 유혹과 싸우며 하나님을 찾는데 때로는 오래도록 답을 얻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에서 시인의 간절함을 넘은 절망감마저도 느껴집니다. 우리에게도 가장 힘든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라 아닌가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해 괴로워하며 이런저런 방법으로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려 노력한 경험이 우리는 모두 있을 줄 압니다. 물론 이런 시련들을 통해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시는 것인 줄은 알지만 낙담하거나, 의심하고, 때로는 실족하는 것이 우리의 연약함이고, 실족이나 그로 인한 상처가 아닌 좀 더 지혜롭게 그리고 은혜롭게 어려움을 지나가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램일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힘든 상황에서 시인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며 함께 복받는 시간 되기를 기원합니다.

본문

나의 왕이시라

(12-17)

(1-11) 황폐한 현실에 하나님께서 왜 침묵하시는지 절망스럽게 질문하는데, (12)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영어 성경은 Yet (NIV, But) 즉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현실이 절망스럽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희망과 구원자이다고 기억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13-14) 고대 근동 (Ancient Near East, 현재 중동지역)의 신화 중 머리가 여럿인 괴물로 묘사되는 태고의 혼돈 상태의 바다(waters)를 정복하고 세상의 질서를 이룬 신이 있다하는데 시인은 그 신화를 빌어 강력하신 하나님의 출애굽 구원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4) 리워야단 (Leviathan)은 시편, 욥기, 이사야서에 언급되고 있는데 사단과 같은 악마, 또는 괴물로 설명하고 있으며, 악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15) 홍해의 기적, 광야에서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을 내어 백성들이 마신 사건 (민수기 20:11), 그리고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 강을 건널 때 강물이 마르게 하신 (여호수아 3장) 하나님의 역사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2-17) 요약: 이스라엘을 위해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인들을 물리치신 구원과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이루신 창조, 구원과 창조, 두 개의 테마를 조화롭게 전개하며 시인은 하나님만이 세상의 적들을 이기시며 그의 나라를 건설하실 수 있다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1-11)에서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힘들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들을 기억하며 찬양하면 도움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제 구원의 역사들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믿음 생활을 시작하며 layoff를 당했었고 허리가 심하게 다쳐 한 달을 누워 있었고, 또 교회에서 힘들었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 고난에 시간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는 은혜와 크고 작은 기적을 체험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죄의 사망에서 건지셔서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 또한 제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영혼 구원에 동참케 하시며 행하신 특별한 사건들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최근 여러 가지 이유로 영적 암흑기를 걷고 있는 느낌이 있는데, 연약한 믿음 때문에 힘들지만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들을 기억하며 다시 찬양하며 말씀 앞에 설 수 있는 은혜가 있음을 감사하게 고백합니다.

어려운 상황들을 통해 시편 기자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에 길로 인도하시는 멋진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소서

(18-23)

이어지는 18-23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의를 나타내시고 백성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청원하고 있습니다. 즉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합니다.

(18) "여호와여 기억하소서" 시편뿐 아니라 이런 "기억해 주세요"라는 요청이 성경에 여러 곳 있고 우리도 종종 그렇게 기도합니다. 또한, 기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 (Omniscience) 하시니, 이런 기도는 잊으셨으니 잘 생각해 보시라는 요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하신 언약을 실행하신다"라는 의미라 합니다. 그러니, "기억하소서" 기도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실행해 달라는 요청이고 더 나아가 그 약속을 신뢰한다는 믿음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20) 그 언약 (your covenant)을 눈여겨 보소서 언급하며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을 지키고 축복한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실행해 주시라 요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하며 사나운 짐승 (7:2)처럼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적들을 (18) "우매한 백성": (19) 들짐승 (10) 대적, 원수 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3) 대적들의 소리, 떠드는 소리는 '음모하다' (NIV 2:1 conspire로 해석 - ESV rage)의 히브리 단어와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을 음모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들, 반면 이스라엘의 예정을 담은 상징적 표현인 (19) 주의 멧비둘기 (21)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 즉 물질의 부족 뿐 아니라 스스로 삶의 안정이나, 행복할 수 없고,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그래서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어려움을 지나고 있으니 구원하셔서 그들이 기뻐하며 (21)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소서 요청합니다.

(22) 일어나: 당장 행하여 주시기를 구하는 긴박한 요구의 히브리 표현이고, 주의 원통함을 푸시고 (defend your cause): (1-11절) 이스라엘과 성전을 파괴한 적들이 놀려대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도 없고, 하나님 백성이 고통을 당하며 하나님의 명예가 실추되었으니 당신의 명분을 지켜주세요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은 제가 강조하지 않아도 다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경험하며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돈독해 지고 믿음이 성장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 뿐 아니라, 시인 처럼 하나님만이 의지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명분을 구하는 것 즉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이 기도의 참 목적이고 유익이라 믿습니다.

시인은 어려운 상황에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그분 만이 의지할 수 있는 분임을 인정하며 기도하며 시를 맺고 있습니다.

적용 & 결론

이스라엘의 황폐한 상황에서 시편 기자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에 길로 인도하시는 구원자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함으로 그분께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불순종, 타락, 우상 숭배 등 죄에 결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완벽하지 못하기에 알게 모르게 죄를 짓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방법으로 사역을 하거나 삶을 살지 못하여 때로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자녀로서 의에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매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뿐 만 아니라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미워하고 고통을 줍니다. 왜냐하면,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행하며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 제자의 삶을 살면 어려움이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니까요. 그렇지만 어려운 상황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선을 행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성경에서 은혜가 되는 '그러나'의 예들을 몇가지 찾아보았습니다.

우상 숭배를 거부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지기 전의 다니엘의 세 친구의 고백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 3:18)". But even if he does not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아시아가 아닌 마게도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 16:25-26)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바울은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했는데, 감옥에 갇히고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기도와 찬양으로 나아 갑니다. 그 믿음에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고 기적으로 그 영광을 더하셨지요. 그리고 간수를 비롯한 더 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는 선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계속 드러난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가장 은혜가 되는 예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하신 기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눅 22:42)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but)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육신으로 예수님은 육체의 원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원함이 아닌 아버지의 뜻데로 이루어 지기를 소원하십니다. 그 기도로 하나님의 영광은 창대히 빛나셨고 그 기도로 저희가 오늘 이 은혜에 자리에 있는 것임에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세상에서, 그리고 연약한 육체와 죄성과 싸울 때 우리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단어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닌가 합니다. 원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니 사랑하겠습니다. 정욕으로 이쁜 여자를 처다보며, 남을 헐뜯는 가십으로 내 육이 즐거워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삶을 바라시는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힘을 주세요. 육체가 약하고 지쳐서 힘듬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하며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도와주세요. 그런 순종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그 은혜로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약속을 기억하며 찬양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여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관련 자료

74편 개관

  • 저자: 아삽 (ASAP, Asaph), 다윗의 3개의 레위 성가대 중 한 대장

(1) 1-11 성소의 황폐함, (2) 12-17 하나님 (찬양), (3) 18-23 청원 (기도)

(1) 우리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2) 하나님은 이런 분이 시지 않습니까? (3) 그러니 구원해 주세요.

시가 표현하고 있는 것은 (1)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기념하고 (2) 애굽에서의 구원을 기념하고 (3) 이스라엘의 미래의 구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The desolations (황폐한) of the sanctuary. (1-11) Pleas (간청) for encouraging faith. (12-17) Petitions for deliverances. (18-23)

관련 문서

검색: 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