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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지를 뽑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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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제게 너무 교훈이 되는 말씀이라 남기고 싶습니다. 혹시 인터넷에서 없어질까 봐 여기에 copy 해 놓습니다.

  • 원글
  • 글쓴이: 김웅민 목사님, LA복음연합감리교회 CA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성경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씨 뿌리는 농부에 대한 비유를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봄철이 돌아와 그 동안 잘 간수해 놓았던 최상급 곡식종자를 정성스럽게 밭에 뿌렸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그 농장주인의 원수가 몰래 밭에 들어와 씨를 뿌린 그 위에 아주 질 나쁜 잡초의 씨를 또 뿌린 것입니다. 한국에서 벼농사 짓는 분들이 아주 골치 아픈 문제가 벼와 함께 자라는 돌피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피 뽑기는 농사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 두 차례 거쳐야 하는 홍역과 같습니다. 벼 심은 곳에 돌피가 생기듯, 조를 심는 곳에는 가라지가 생깁니다. 1세기 팔레스타인에는 이런 일들이 흔히 있었던 모양입니다. 미운 사람을 몰래 골탕 먹이는 것입니다. 밤중에 들어와 몰래 가라지 씨를 뿌려 놓으면 다 자랄 때까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삭이 맺혀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데 잘못해서 가라지 이삭이 밀 이삭과 섞이게 되면 독성이 있어서 먹는 사람들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제 씨 뿌린 지 몇 주가 지나 일꾼들이 보니 밭에 밀과 함께 수없이 많은 가라지들이 보이는 것 아닙니까? 놀라서 주인을 향하여 소리 질렀습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좋은 씨만을 밭에 뿌리지 않았습니까? 이 가라지 들은 다 어디서 온 것일까요?” 주인이 말했습니다. ”원수가 와서 그리 하였소.“

후에 예수께서 이 비유를 설명하셨는데 밭은 세상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밭에는 원래 곡식만 자라야 하는 것인데 우리 세상의 현실 속에는 언제나 가라지가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특별히 악해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글쎄요? 예수님 당시의 세상에도 가라지는 많았습니다. 중세시대도 세상은 악이 성했습니다. 앞으로도 여전히 악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비유는 결국 심판 날까지 악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일은 왜 가라지를 그냥 두는 가입니다. 일꾼들이 주인에게 답답하여 물었습니다. “우리가 가서 그것을 뽑아 버릴까요?”

얼마나 자주 세상의 가라지를 우리 손으로 뽑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까? Arnold Schwazeneger가 Terminator라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와 유명한 배우가 되었습니다. 범죄자들을 경찰 한 사람이 하나씩 차례로 죽이는 내용입니다. 법에 맡기자니 너무 느리고 답답했습니다. 그런 거추장스럽고 비효율적인데다가 맡길 것 없이 손쉽고 빠른 방법으로 세상의 가라지들을 뽑아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아마 속이 시원했을 것입니다. 저희들이 가끔 한국영화를 보는데,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형사, 조폭입니다. 범죄자나, 악의 세력을 재판이나 법에 의지하지 않고 제 손으로 제거하는 내용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시원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도 종종 그런 유혹을 느끼지 않습니까? 힘이 없고 감쪽같이 방법이 없어 못하는 것이지 우리도 세상의 가라지들을 뽑아 버리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뽑아 버릴까요?”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 세상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내버려두어라” 내버려두어라-- 이 말씀은 얼른 잘 이해가 안 되면서도 참으로 깊은 지혜가 있는 말씀입니다. 내버려둔다는 것이 무슨 말씀인가요? 왜 내버려둡니까? 내버려두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 있어봐야 공동체에 유익이 안 되는 사람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것은 꼭 사회악에 대한 것만 아닙니다. 우리들의 자신의 안에 있는 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선 내버려두라는 말씀 속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라지를 뽑아야 한다고 할 때 바로 그 뽑아야 할 가라지가 여러분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 자신을 으레 곡식으로 생각하고 가라지는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지만 꼭 그럴까요? 교회 안에도 역시 악의 씨는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성스레 가꾼 정원이지만 이 정원에도 역시 원수인 악마는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저런 사람은 교회에 있으면 좋지 않은데- 우리의 마음에 그렇게 생각되는 사람이 있어서 어떤 이는 노골적으로 “목사님! 저런 사람은 제명하거나 출교를 하는 것이 교회에 유익합니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불의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쫓아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는 그런 사람도 사실은 가라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에는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일을 삼가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심판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입니다.”(롬2:1)

가라지를 뽑기로 한다면 우리는 온전할까- 하나님의 참으시는 은혜는 세상에 흉악무도한 죄인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내버려두라는 하나님의 분부 속에 바로 우리 자신을 향해 참으시는 음성을 들을 때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농장주인이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 있습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그것과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우리가 느끼는 가장 교묘한 유혹 중의 하나는 우리가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을 닮아가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내 뺨을 때리게 되면 우리의 마음속에 즉각적인 유혹은 나도 그 사람을 때리는 것입니다. 누가 내 마음속에 아픈 상처를 주면 나도 그 에게 똑같은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이 움직여 나가는 동안에 전쟁과 폭력과 미움은 날로 많아져 악이 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마의 전략입니다. 악으로 갚는 동안에 상대방도 상하지만 나도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멸망하게 되는 그것이 악마의 꾀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이 원리 속에서는 우리 모두가 이빨 빠진 장님이 되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퀘이커교도의 격언에 이 같은 말이 있습니다. “짐승과 싸우려면 너 자신이 짐승같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에서 결국 이기는 것은 짐승의 세력이다.” 가라지를 뽑으려고 혈기를 가지고 싸우는 동안에 우리 자신이 인간성을 읽어버리게 됩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동안에 우리 얼굴과 마음이 짐승같이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을 읽어보게 되면 사울의 인생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나이 들어가면서 점차로 정신을 잃어가고 추한 모습을 가지게 되는데 왜 그런가요? 어제 새벽기도회에서 사울왕이 무당을 찾아간 이야기를 읽고 묵상했습니다. 후에 어느 집사님이 젊을 때 그토록 멋있던 사람이 늙어지면서 추하고 미련해지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고 말씀했습니다. 그가 마음에 불안과 분노와 의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자기에게 위협이 되는 사람을 없이하려 하는 데서 그의 인간성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준수한 용모와 겸손한 인격과 놀라운 지혜가 원수 없애는데 낭비가 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인생을 원수 갚는 일에 쓰지 말아야 한다는 안타까운 하나님의 권고가 성경에는 반복해서 나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낭비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심고 가꾸고 무엇을 세우는 일에 쓰여질 일이지 아무리 정당하게 생각이 되어도 남을 제거하고 무너뜨리고 뽑아내는 그런 일에 쓸 일이 아닙니다.

농장주인이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이제 때가 오면 추수 때가 되면 내가 일꾼에게 명하여 밀은 곡간에 모으고 가라지는 따로 모아 불 아궁이에 던지라고 하겠다.” 악에 대한 심판이 없으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악을 징벌하기 위해 열심인 우리들을 향해 “악의 징벌은 내가 책임지마.”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스스로 악을 징벌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악을 심판하실 것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를 사랑하고 믿는다고 하지만 원수 갚는 일 앞에서 우리의 믿음의 진실함이 시험을 받게 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며 꼭 갚아주고 싶습니까? 재산의 손해를 보면 꼭 받아내고 상대방에게도 손해를 입혀야 하겠습니까? 참으로 이기기 어려운 시험이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참으로 믿으면 이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큰 일, 신기한 일만 주장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매일매일 일상사에도 주인이 되시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어떤 것이라도 그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다 아십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다 아십니다. 심지어 우리 머리카락 하나도 그에게 다 세어진 바 되어 허락이 없으면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 내게 헛된 말로 모함을 하고 억울하게 나를 핍박하면 그 사정도 다 하나님께 알려진 바 됩니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때에 그 악을 심판해 주시고 나의 억울함을 풀어 주십니다. 그는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절대로 실망을 주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이 믿음 속에서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윗이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다윗을 영광스럽게 소개하는 것은 그의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인격도야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최종목표는 “하나님은 확실히 살아 계시며 우리의 삶을 주장하신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항상 이런 고백과 신앙 속에 살았습니다. 그가 자기를 억울하게 핍박하는 원수중의 흉악한 원수인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몇 번이나 그냥 지나친 것도 이런 신앙 때문입니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좋은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런 다윗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나 기독교 역사상에서나 한결같이 위대한 신앙인의 고백은 이 한 가지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그는 이 세상을 주관하시며, 내 삶에 함께 하신다”입니다. 고백할 뿐만 아니라 인생의 위기가 올 때마다 이 말씀을 기초해서 행동하였습니다. 믿으십니까? 그 믿음은 여러분의 삶에 나타납니까?

그런데, 이 참는 것, 용서하는 것이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들을 그렇게 항의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폭력과 무서운 악의 세력을 어떻게 내버려둠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용서하고 참는 것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악한 자를 용서하고 내버려두면 더 성할 것이 아닙니까?” 물론 악한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한다 고해서 100% 그들을 돌이킬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고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악으로 악을 이기는 가능성보다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가능성이 백배 많습니다. 용서하는 것, 인내하는 것, 사랑하는 것은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정복하시는 방법입니다.

또한 가라지는 내 마음에 있는 악한 생각이나 상처일 수 있습니다. “내버려두어라.” 부정적인 것에 집착하면 그 상처나 생각이 내 삶을 지배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번 목회자 학교에서 우리는 귀신이나 악령에 사로 잡힌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은 우리가 부정적인 것에 관심을 더 많이 쏟게 되면,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기와 같은 질병을 앓을 때, 그 아픈 것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게 되면, 늘 병든 자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내 버려두면 치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벽증은 너무 지나치게 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데서 오는 것이지요. 마찬 가지로, 우리의 마음도, 비록 과거의 상처에서 오는 분노, 의심, 열등감 같은 것들이 있다 해도, 너무 그런 것을 없애려고 하다 보면, 거기에 붙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내 버려 두고 선한 생각과 은혜에 더 많은 것을 쏟아라. “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라지 비유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비록 농사에서 만나는 가라지는 한 번 가라지이면 영원히 가라지일찌 모르지만, 우리 인간에 있어서는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라지와 곡식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회복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할 수 있으시고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잠시 악마의 종으로 살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은 회복의 대상입니다. 나도, 다른 사람도 다 하나님은 알곡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내버려두어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원수와 같은 존재가 있습니까? 맡기십시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써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18-21)

때때로 여러분 자신이 가라지와 같이 느껴지십니까? 그 어두운 것을 다 내어놓고 맡기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일단 내어 놓고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심과 용서하심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치유와 회복, 가라지가 변하여 알곡이 되는 역사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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