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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래햄 (Billy Graham)

Good4Joy
Good4joy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3월 3일 (토) 04:50 판

빌리 그래햄 목사의 죽음 (2018년 2월) 으로, 애도와 더불어 그의 신앙의 진위성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이미 죽인 이에 대한 논란은 무익할 것 같아 관심 없었는데, 한 자매님께서 나누어 주신 기사를 나누어 주셨기에, 빌리 그래햄의 신앙의 진위에 대해, 말씀과 함께 묵상하며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신앙의 진위성과 더불어 오늘 교회에 팽배한 기복신앙의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계와 목적

먼저 기사 분석의 한계와 목적을 나열해 봅니다.

  • 우린 모두 죄인이고 우리의 분별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 성경 만이 오류가 없고 최종 권위가 있습니다. 그 외 자료는 100% 신뢰하지 않고, 그리고 죄인이기에, 제 양심까지도 신뢰할 수 없습니다.
  • 마지막 때에 거짓 가르침이 많고 심지어는 택함 받은 자도 넘어뜨리려 한다는 성경의 경고들을 명심합니다.
  • 악한 세상에서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말씀도 명심하며, 불필요한 비판이 아닌, 우리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을 분석의 목적으로 하겠습니다.

기사 분석

기사 시작이, (눅 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입니다.

“거짓선지자”, “심판”, “지옥”, “회개”, “제자도”, “복음 때문에 박해” 등의 주제는 성경에 많이 경고하고 있지만, 오늘날 팽배한 기복신앙을 가르치는 교회에서 는 다루지 않는 주제입니다. 이유는 명목상 교인들이 불편할까 사람을 두려워하고, 혹은 자신의 가르침이 성경과 다르다는 것을 알려질까 불편하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에 관련 말씀으로 시작하는 기사가 제게는 신뢰를 줍니다.

그리고, 기사는 빌리 그래햄 목사가 세계교회주의 (ecumenicalism) 와 천주교와의 친분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세계교회주의 (ecumenicalism)

Wikipedia의 기사도, 빌리 그래햄의 세계교회주의 논란과 그의 발언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친분에 진실성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계교회주의 (종교다원주의)는 천주교뿐 아니라, 불교, 회교, 등 여러 종교와의 화합을 주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성경과 명백하게 대치됩니다.

  • (고후 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
  • (요이 1: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천주교

개인적으로, 천주교의 가르침을 공부해 본 적이 없지만, 열매를 보며 잘못된 복음을 가르친다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열매는,

  • 천주교 교회는 오래도록 세상에서 부, 권력,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사실 만으로도 천주교 교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의 이름, 복음 때문에 세상에서 영광이 아닌 피박 받는 다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 10:22, 요 15:19, 막 10:30, 행 14:22 …). 성경에서 보여주는 제자의 대부분은 순교했는데, 그들은 주님께 “너희들이 배운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바르게 배웠다면, 세상에서 영광이 아닌 피박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 천주교 교회는 마리아, 베드로, 바울 등 성도들을 우상으로 만들어, 말씀 공부, 전도는 특별한 성도만 하는 것이라 가르치며, 교인을 예수님 제자가 아닌 종교의식을 행하는 종교인으로 만들어 갑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없으므로 느끼는 두려움을 피하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그로 인해 교회는 금전적 부와 함께 세상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 두려움을 피하려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와 종교의 목적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생명과 죽음의 선택에서, 생명을 택하는 것입니다.
  • 천주교 교인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선행이나 자신이 선해서 구원받는 다고 믿고 있고, 말씀 공부와 전도의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당연히 기도는 기복적인 것입니다.
  • (엡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기사의 의도

기사를 쓴 목적과 적용이 뚜렷지 않아 아쉽습니다. 기사의 마지막을, “빌리 그래햄이 잘 못 인도해서 죽은 이들을 위해 애통해야 한다”라고 맺고 있는데, 제 마음에 와닿는 결론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기사의 의도가 부정적이라 가정하고, 그 의도를 추론해 보겠습니다.

  • 만약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방해하려는 의도라면, 빌리 그래햄은 이미 죽었기에 효과가 없습니다.
  • 빌리 그래햄에 대한 개인적인 질투나 앙심이라면, 그 의도가 너무 유치하기에, 수고하며 저런 기사를 쓸 가능성이 작습니다.
  • https://billygraham.org/ 사역 방해라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쓴 분, 웹사이트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제가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사를 전해 준 자매님을 주님 안에서 형제/자매로서 사랑하고, 그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이기 (고전 13:7) 때문입니다. (참고로, 자매님은 어려서 천주교 교회에 계셨고, 그래서 천주교의 잘못된 점을 잘 알고 계십니다.)
  • 빌리 그래햄이 전한 복음을 듣고 믿은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려는 의도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사의 목적이 부정적인 것이었다면, 가장 유력한 의도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라 (갈 6:1) 권면하고 있으니, 기사는 그 면에서 나쁜 영향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것 입니다. 왜냐하며,

(1) 만약 그 성도가 진정으로 믿는 이라면, 그는 구원의 중요성을 알기에, 자신의 믿음을 겸손하게 돌아볼 것입니다. 주위에 자문하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그는 주님과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2) 만약 그가 믿지 않는 명목상 교인인데, 기사를 통해 겸손하게 자기의 믿음을 돌아보고 진정한 성도가 된다면 … 할렐루야, 천국에 잔치가 열릴 것입니다. (3) 반대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 교회에 있으며 자기가 천국 간다 믿고 있는데, 주님 앞에 섰을 때 “나는 너를 모른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큰 재앙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결론적으로 기사는 좋은 의도이고, 그 의도는 성도들에게 거짓 가르침을 주의하고, 자기 믿음을 돌아보며, 기복 신앙, 값싼 복음(Cheap Gospel)을 전하는 교회에 경고의 메시지라 판단합니다.

인터뷰 자료 분석

기사에서 인용한 인터뷰 자료와 더불어 다른 한 자료도 분석해 보았습니다.

로버트 슐러 (Robert Schuller)

기사에서 인용한 영상자료로, 빌리 그래햄의 “those who have never heard the name of Jesus Christ can be saved as long as they are turning to “only light that they have.”라는 발언에 대해 기사는 예수님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을 부정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경 지식이 부족해서 인지, 저는 어린아이, 복음을 들어 보지 못한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 계시가 있을 거라 믿기에, 이 발언이, 기사의 비평처럼, “예수님만으로 구원”을 부정하는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불교에 있던, 회교에 있던 …” 발언은 성경 말씀과 (위에 언급된, 고후 6:14-16, 요이 1:10) 명확히 배치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내주하는 성도라면 그 종교 시스템 안에 머물 수 없을 것입니다. (기사를 전해주신 자매님의 예처럼)

또한, 영상 자료의 마지막에, 빌리 그래햄의 발언을 “하나님의 자비의 확대”라 극찬하며 기뻐하는 슐러 목사의 모습은 기사 비평에 신뢰를 줍니다.

참고로, 슐러 목사는 빌리 그래햄과 오랜 친구이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다는 보편 구제설 (Universalism) 에 속한 것으로 인터넷에 검색됩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다면, 물론 그럴싸한 해석을 하겠지만, 지옥을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거짓 가르침을 한 것이 됩니다. 또한, Wikipedia 기사에 의하면, 슐러는 의도적으로 죄나 심판은 피하고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가르침을 한다고 합니다. 조웰 오스틴 (Joel Osteen) 목사의 “긍정의 삶”과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슐러 목사의 가르침은 제가 모르지만, 신앙생활 시작하기 전에 조웰 오스틴의 가르침을 좋아했고 따랐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말씀을 알아가며 그의 가르침이 성경과 다르고, 그런 가르침은 (기복신앙), 결국 교인이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래리 킹 (Larry King) Live

래리 킹과의 인터뷰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참고로, 래리 킹은 미국의 유명한 TV, 라디오 토론 진행자로 래리 킹 라이브는 지명도가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빌리 그래햄 목사는 “심판, 공의를 가르치는 것은 다른 이들의 사명이고 나의 사명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그는, 조웰 오스틴 같은, 값싼 복음을 전하고 있음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또한, 빌리 그래햄의 말을 잘 들어보면, 많은 이들과 적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롬 12:18)”고 가르치고 있으니 우리는 모든 사람과 화평 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상 숭배, 이단, 거짓 가르침에 적용할 수 없는 구절은 아니라고 봅니다.

심판, 공의를 가르치지 않고 기복신앙을 가르치는 목사는, 자신의 인기, 영광을 위해 사람을 두려워하며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거나, 복음을 잘 못 해석하거나 (주로 육이 편한 쪽으로), 아니면 진정한 복음을 실제로는 믿지 않는 것이죠. 바로 간지러운 귀를 긁어 주는 가르침 (딤후 4:3)입니다.

기사의 시작처럼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가 적합한 말씀입니다.

바른 리더는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말을 바꾸지 않고, 복음을 위해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적은 수” 지만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같은 래리 킹 라이브의 존 맥아더 (John MacArthur) 목사님의 인터뷰 자료입니다.

Altar Calls (즉석 영접초청?) 비판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000명이 바로 회개하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빌리 그래햄의 Altar Calls 어떻게 비판할 수 있습니까?

사도행전 당시와 오늘날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당시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자체가 이미, 세상 주류를 떠나, 박해와 고난으로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그것을 감수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비용 (눅 14장)을 알고 믿는 것이죠. 오늘날 LA 나 여의도에서 부흥회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고난이 시작되지 않습니다. 아니, 도리어, 좋은 친목 단체의 일원이 되고, 편안한 교회, 아이들 프로그램, 행복한 가정 세미나 등 풍성하고 좋은 대접을 받습니다. (교회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처럼, 주님이 기뻐하시는 “적은 수”의 교회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참고로, “적은 수”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 7:14, 눅 13:24))

만일 기독교 박해가 극심한 북한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Altar call을 했다면 그 반응의 결과는 위의 것과 비교가 될 것입니다. 물론 어떤 개인의 믿음을 우리가 정확히 헤아릴 수 없지만 이성적으로 예측해 볼 수는 있고 오늘 교회의 열매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따르는 비용을 알지 못하는 혹은 잘 못 알고 하는 Altar Call에는 문제가 있겠습니다.

빌리 그래햄의 반응

자료는 빌리 그래햄 목사가 젊었을 때부터 나이가 들어까지 “예수님만으로 구원”을 외치는 장면을 보여주며, 논란에 변호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는 문제는 예수님만으로 구원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 아니라, “다른 것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기서는 저렇게 말한다면 더 나쁜 것이지요. 주님은 바르새인과 종교 지도자의 외식 (거짓)에 대해 가장 많이 그리고 심하게 질책하셨습니다.

그리고, 빌리 그래햄의 회개 자료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이, 제게는 빌리 그래햄 논란에 결론을 내리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회개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죄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안에 거짓이 있다는 것이죠. 혹은, 그것들이 (종교 다원주의, 보편구제설, 값싼 복음 …) 잘못인지 모른다면 영적 분별력이 없으니 리더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고요.

결론과 적용

제가 빌리 그래햄 목사의 속을 알 수 없고 제 분별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 내에서 제가 내리는 결론은 빌리 그래햄은 바른 전도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만일 그가 바른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교회에 가장 문제가 되는 기복신앙과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랑, 자비만을 강조하며, 죄, 공의, 심판, 제자도, 피박, 박해를 가르치지 않는, 간지러운 귀를 긁어 주는 가르침, 값싼 복음은 잘못된 복음입니다. 그 열매는, 천주교 교회의 그것들 처럼, 교인들이 교회 안에 앉아 종교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유럽 교회가 문을 닫는 것처럼, 미국과 한국 교회가 이기적이고 기복신앙이 계속 팽배해진다면 유럽 교회 처럼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하는 것은 제가 빌리 그래햄 목사에 대해 많이 연구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이 분석의 주목적은 제게 (혹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필요한 적용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찾아본 적용입니다.

깨어 있자

  • (마 25:13)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기사를 나누어 주신 자매님 아들이 (초등 2년생 - 아! 기특해), 주중에 가장 은혜받은 말씀이라며 나눈 구절입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Therefore keep watch”).

항상 말씀(예수님)을 붙잡고 깨어 있읍시다. 깨어서, 혹은 깨어 있기 위해,

(1) 내 믿음, 깊숙히 돌아보고 회개합시다.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저는, 너무 쉽게 죄에 빠집니다. 가증스러운 모습을 보며 제가 괴수 중의 괴수 임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나 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촛대를 옮기실 주님을 두려워하며, 성도는 마지막 때에 거짓 가르침은 많고 택함 받은 자도 넘어뜨리려 한다 경고를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구원은 매우 매우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2) 말씀을 열심히 공부합시다. 말씀을 알아야, 자기 믿음이 바른지, 가르침이 바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오늘 교회에 팽배한 기복신앙, 말씀으로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열매로 분별하라 했으니, 열매로 거짓을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누구도 우리의 구원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말씀)만으로 구원에 이릅니다.

바른 복음을 전하자

물론 요한복음 3:16 한 구절 만을 듣고도, 성령님의 감동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분이 계시다 믿습니다. 하지만, 전하는 이는 두려움을 가지고 바른 복음을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마 7:22, 23, 딤후 3:2-4)

예를 들어, 성경은 “행위 없는 믿음으로 만의 구원 (이신칭의)”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그 믿음에는 주님을 따르는 “비용”과, 그 믿음이 맺는 “열매”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하는 이는,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는 복음을 바로 전해야 합니다. 또한,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강조 혹은 더 설명이 필요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500년 전 종교 개혁 당시는 “행위”로 구원을 가르치는 천주교 교회를 향한 복음은 “이신칭의”를 강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복신앙과 값싼 복음으로 부패한 교회 현실에 “비용”과 “열매”를 강조해야 한다 믿습니다. 하지만 바른 복음을 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바른 복음을 전하기 위해,

(1) 하나님을 두려워하자 (fear God)

복음을 전하면 박해받습니다. 그런데, 박해하는 사람은 우리의 육체는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일 수 없습니다. 바른 전도자는 사람을 두려워하면 안되겠습니다. 만일 사람을 두려워하면 우리는 바른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500년 전에 종교 개혁 당시 “이신칭의”를 외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것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에 “비용”과 “열매”를 강조한다면 우리가 어떤 대우를 받을지 각오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욕먹으며, 외톨이로 살다 천국 가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주위에, 바알 신에 절하지 않는, 7000명이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두려워해야 합니까?

  •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fear)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 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해야 합니까? 노아의 가족 8명 만 남기고 인류, 동물, … 모든 것을 파멸하신 공의의 하나님. 오늘, 신약 시대에도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 단락의 소제목을 “경외”가 아닌 일부러 “하나님을 두려워 하자”로 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 그 경외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리라 믿습니다.

(2)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읍시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적은 수”의 성도들, 순교자들, 일제시대 때 우상에 절하지 않은 목사님들 … 혹, 만일, 오늘 세상에 바른 리더가 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겐 성경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복음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제자들이 주님 본받아 복음 증거하는 것에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습니다. 사람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과 성경에서 보여주는 제자들을 본받읍시다.

  •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주님 그리고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 복음에 목숨을 겁시다. 그래야 삽니다. 살려고 하면, 사람을 두려워하면 죽습니다. 생명과 죽음의 선택입니다.

  • (마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