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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 (속박하는 자유)

Good4Joy
  • 설교 본문: 고전 10:23-11:1
  • 2015/10/15 (목)

도입 (간증, 질문)

자유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8/15 광복절, 7/4 미국 독립기념일, 언론의 자유,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 등이 생각납니다. 변호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패트릭 헨리는 1775년 버지니아 컨벤션의 한 연설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유명한 말도 했습니다. 또한 돈에서 자유, 아픈 몸에서 자유, 자식 걱정에서 자유, 그리고 성생활에서 자유 등 사람들은 자유를 간절히 추구합니다. 그런데 자유를 찾는 데모나 운동은 오늘날에도 여러 모양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고, 돈이 많은 부자도, 건강한 사람도, 자식이 모두 잘 되어 보이는 부모도, 여자 친구가 많은 playboy도, 더 많은 혹은 또 다른 자유를 찾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합니다. 모든 자유 추구를 다 함께 싸잡아서 비유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세상적인 자유의 추구는 마치 바닷 물을 마시며 더 목말라하는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해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즉 예수님을 아는 것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구속에서 자유하고 창조하신 목적데로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리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 줄을 저희는 압니다. 그 진리를 조명하셔서 저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게 하시는 성령님께, 그리고 더는 갈증없이 생수를 마실 수 있게 하시고, 의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다시 한 번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유함에 대해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오해가 있었고 잘못된 관행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사도 바울의 충고와 권면을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같이 묵상해 보겠습니다.

본문

방종은 자유가 아님

바울의 편지 내용에 의하면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은사는 많았지만 (1:4-7) 영적으로 미숙했다고 합니다(3:1-4). 교회는 여러 파로 나누어졌고 (1:10 - 4:21), 근친상간, 동성연애 등 도덕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문란했습니다. (5; 6:12-20) 또한 교인들 간의 법정 소송 (6:1-8) 등 교회 내에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치 여러 교회의 문제들을 한 곳에 종합적으로 모아 놓은 것 같습니다. 이런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보며 그 교회를 개척한 영적 아비로서 바울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모든 것이 가하나 제가 가지고 있는 NIV 영어 성경에는 “I have the right to do anything,” you say 라 해서 바울이 아니고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모든 것이 가하다" 말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 더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ESV와 KJV 성경에는 그렇게 쓰여있지 않던데, 6장에서 음란 행위 등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도 6:12절에 같은 문장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아 NIV 번역이 좀 더 이해하기 편했습니다.

구원 받았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고 그런 관행이 유익하거나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바울은 지적합니다.

진정한 자유 (속박의 자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자유, 권리, 혹은 즐거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서 그것을 자제해야 합니다.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많은 세상적인 자유의 바램이나 행함은 가만히 드려다 보면 뿌리는 자신의 편함이나 유익을 위한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유는 이기주의의 죄에 빠지는 것이 아니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라 바울은 가르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유를 행함이 설상 우리 지혜로 합법적이거나 옳은 것이라도 그리스도인은 남의 입장과 유익을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우상 숭배에 쓰였던 음식이라도 시장에 나와서 팔리고 있는 것은 우상 숭배에 직접적인 의미는 잃은 것이기에 질문하지 말고 먹으라 합니다. 우상 숭배가 아닌 우상 자체는 의미가 없는 것이고, 목사님께서 저번 설교에서 설명해 주셨듯이, 고기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 중에 하나니 우리는 우상 숭배에 쓰였던 고기라도 감사하며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그분의 의견이나 입장을 무시하며 그것을 그냥 먹는 것은 옳은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 분에게 우상 숭배를 눈감아 주거나 심지어는 우상 숭배에 참여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에 쓰였던 고기를 먹는 것이 옳지 않다고 그의 양심에는 거슬림에도 불구하고 그 고기를 먹거나 혹은 다른 죄를 범하는데 과감하거나 불감하게 되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로마서 14: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즉 남을 고려하지 않은 우리의 이해 내에서 책임감 없이 행하는 자유는 악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NIV 주석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행동에 있어 남을 고려하는 신중함이 있어야 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말을 조심하지 않고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럽고 이 자리를 빌어 반성합니다.

바울은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결론/적용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오늘 읽은 본문뿐 아니라 8-10장까지 다루어졌던 주제에 대한 개괄적인 결론으로 더 나아가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행실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이 아침에 함께 되새겨 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에 대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말라기 1:14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분의 피조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저희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은 극히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이기주의를 비롯한 어떠한 죄라도 짓지 않도록 노력하며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런 삶은 그리스도인이건 이방인이건 모든 이들 에게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 개인의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하나님의 교회에 덕을 세우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자제되어야 합니다. 또한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분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데, 혹은 믿음이 약한 지체를 세우는데 유익이 된다면 그 자유는 기꺼이 포기되어야 합니다.

(33)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바울은 영혼 구원에 대한 당위성과 그에 대한 목적의식을 분명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9: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고 그 영광을 인정하는 자,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로 나아가는 자. 그 예배자를 찾고 예배자로 만드는 것에 바울은 자기의 모든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였습니다. 자신의 모든것을 내어놓고 한 영혼이 하나님의 영광 앞으로 나오기를 원하는 간절함은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목사님도 얼마 전에 예를 드셨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유대인의 생명을 구했던 오스카 쉰들러가 생각납니다. 나치의 학살에서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 그는 노력했습니다. 이생의 생명을 위한 그의 노력을 생각한다면 영생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영혼 구원을 위한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시며 열심히 전도하시는 여러분을 그리고 선교사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의 마지막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본받는 것의 순서로 보면, 먼저, 예수님께서 최고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베드로 전서 2:21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리고 로마서 15: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이땅에 오신 것은 그분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고 성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그리고 복음서의 다른 여러 절에서 (5:30, 6:38, 8:26, 9:4, 10:37-38, 12:50, 14:31, 15:10, 17:4)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종은 고통과 죽음이 따르는 것이었지만 결과는 성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마치면서 올려드리는 찬양입니다.

로마서 16: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셨고, 그 본을 받아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그들의 십자가를 졌던것을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도들의 본을 받아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의 생명이나 자유가 아닌 남의 영생과 유익을 위한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그 삶을 살아가시느라, 많은 사람이 가지 않은 좁고 험한 길 가시느라 때로는 외롭고 힘들고 혹 지쳐 있을 여러분께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강구합니다. 구하면 주시겠다고 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성령 충만함으로 그 삶을 천상의 기쁨으로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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