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5 (시므리와 비느하스)
- 본문: 민수기 25장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인들과 불륜을 행하며 이방신을 섬기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내용)
- 일자: 2017/8/4
- 오디오 파일:민수기25.m4a
서론
어제까지 이야기에서 모압 왕 발락이 거짓 선지자 발람을 고용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지만 실패합니다. 오늘 본문 25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인들과 불륜을 행하며 이방신을 섬기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내용입니다. 내일 본문 26장에는 두 번째 인구 조사하고, 30장까지는 새새대에 주는 독립적인 말씀이고, 31장이 오늘 본문과 시간적으로 내용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31장에서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심판하시는데 발람도 함께 죽습니다. 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하십니다. 그러니 오늘 25장 이야기의 배후는 발람이라는 것이죠. 발람은 어제 24장까지 에서 이스라엘을 억지로 축복했지만,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성적 타락과 우상 숭배로 유혹하는 것을 주동하며 거짓 선지자의 면모를 보여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발람이 나오지는 않는데, 시므리와 비느하스라는 두 인물 등장합니다. 시므리는 악을 행하다 죽임을 당하고 비느하스는 그 악인을 죽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말씀과 그들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우리 인간의 죄성을 배우고 적용을 찾는 시간 되기를 축복합니다.
본론
시므리의 죄
(1) 이스라엘이 싯딤에 있습니다. 싯딤은 (민33:49) 요단 강 동쪽 11Km 지점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위한 요단 강을 건너기 바로 전에 있었던 지역으로, (수2:1) 여호수아가 2명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낸 곳이기도 합니다. 그 싯딤에 있을 때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되고",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 했다 합니다.
바알브올 (Baal of Peor, 베일 오브 피오르) 브올의 바알 즉 브올산과 관련된 바알신 (아래 참고)입니다. 성적으로 문란했던 모압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간 이스라엘 남자들은 더 나아가 모압 여인들이 행하는 바알 우상 숭배에 참여하고 이에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그들은 십계명의 제일 첫 번째인 (출20:3)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것이죠.
하나님의 진노 수위는 그분의 심판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4)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음행하고 우상에 절한 리더들을 잡아 죽이는 것 뿐 아니라 대낮에 목매어 달므로 백성들이 보고 두려워하게,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보여주십니다. (9) 심판으로 염병이 돌아 24,000명이 죽었습니다. 24,000명이라는 숫자는, 참고로 (14:49) 고라의 반역으로 14,700명이 죽은 것과 비교하여 10,000명 가까이 많은 것으로 하나님의 큰 진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상황에 시므리가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6) 회중이 울며 슬퍼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당당하게 진영으로 들어옵니다. 그 남자는 (14)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하나인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인 시므리입니다. 음행과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진노 하시고 백성 사이에 염병이 돌고 있는 상황에 시므리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미디안 여인과 음행을 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한 지파의 지도자로 백성의 리더입니다. 하나님의 목전에서 그것도 백성이 보고 있는데, 리더가 하나님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몰래 숨어서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지만 시므리의 이런 행동은 마치 하나님이 없다고 세상에 떠들고 다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비느하스의 열심
이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을 보고, (8) 제사장 비느하스가 그들을 따라가 창으로 찔러 잔인하게 죽입니다. 그로 염병이 그치고 하나님께서 노여움을 푸시는데, 그 이유를 (11)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he was as zealous for my honor) 제사장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질투했다 합니다. 시므리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증했는지 그것과 비교하여 비느하스의 행동이 하나님의 심정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 엿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질투하신다는 표현이 있는데, 십계명의 첫째와 두 번째, 다른 신과 우상에 대한 경고 두 계명 바로 후,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이라 하셨습니다. NIV Study 성경의 해설은, 하나님께서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그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시는데,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마치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바람피우는 것과 같다 비교했습니다.
하나님은, (11)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하시며 비느하스의 행동이 이스라엘 백성의 목숨을 구했다 하시며, (13)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으로 축복하십니다. (12) 내 평화의 언약 (my covenant of peace with him) 비느하스의 입장에서 보면 "peace with God" 하나님과의 평화, 샬롬의 언약을 시므리를 죽인 비느하스가 받습니다. 참고로, 비느하스에게 하신 이 언약은 구약의 노아와의 언약 (창9:8-17), 아브라함 2번 (창15:9-21, 창17), 시내산 언약 (출19-24), 다윗과의 언약,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한 새 언약 (렘31:31-34)과 함께 구약의 주요 언약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17, 18) 성적 문란과 바알을 섬기게 이스라엘을 유혹한 미디안을 하나님께서 전쟁을 통해 심판하신다 하시며 오늘 본문을 맺고 있습니다.
적용/결론
시므리의 예에서
먼저, 시므리의 예에서 배울 점을 3절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가담한지라" "Yoked themselves to" 즉 멍에를 함께 지다. 이스라엘과 시므리가 이방인의 행위에 가담한 것은 그들과 멍에를 함께 진 것입니다. 같은 표현이, 고린도후서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전도를 위해 우리는 믿지 않는 이들과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의가 불법과 같이할 수 없듯, 빛에게 어둠이 사귐의 대상이 아니듯 우리에게 세상은 사귐의 대상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된 성적 문란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실리콘 밸리 즉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은 돈, 명예, 직장이나 학교에서 성취, 안정된 삶, 외모, 건강, 그리고 자녀의 "세상적" 성공이고 그것이 세상의 우상입니다. 이것들이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다른 필요를 다 채워 주신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그 필요를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나중 구한다면 우선 순위가 바뀐 것이라 믿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반대로 방해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사단이 다스리고 있고 사단은 하나님과 대적하고 있는 원수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모압이나 미디안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듯, 세상은, 문화는, 그리고 믿지 않는 이들은 우리 그리스도인을 유혹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사귀면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것은 보기에도 좋고, 먹음직도 하고, 편안해 보이고, 간지러운 귀를 긁어줍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비해 우상들은 눈에도, 귀에도, 입에도, 그리고 심지어는 느낌이나 감정에도 좋으니 우리 육이 쉽게 유혹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과 별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명목상 교인이나, 세상을 두려워하며 세상과 합한 교회의 가르침이나 교리는 우리의 분별력을 흐리게 합니다. 세상은 우리와 다른 멍에를 지고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2x). 세상은 틀린 멍에를 지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시므리는 바알브올에 가담하고 이방인과 멍에를 함께 진 결과 자신이 창에 찔려 죽는 처참한 최후뿐 아니라, 리더로서 시므온 지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첫 번 인구 조사에서 시므온 지파는 59,300명이었는데 내일 본문의 2차 조사에서는 22,200명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므온 지파의 인구가 거의 1/3로 줄었습니다. 시므리는 바알브올에 가담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믿지않는 사람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시므리를 죽인 비느하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비느하스에서
먼저, 비느하스의 행동을 개인적인 감정이나 판단, 혹은 어떤 영웅심에서 나온 돌발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되겠습니다. (4)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심판을 명령하셨고, 비느하스는 그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행함을, (11)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라 칭찬 하셨습니다.
(11)에 '질투'라는 단어가 3번 쓰였는데 영어 성경에는 'zealous'와 'zeal' 두 단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Zeal' 영어의 같은 단어가 쓰인 구절이 생각나는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 때문에 타락한 성전을 청소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요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했습니다. 여기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사모하는 열심'을 'Zeal'로 쓰고 있습니다.
비느하스에게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심, 질투가 있었고 그 질투에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으로 시므리를 죽이고, 축복을 받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목숨을 구했습니다. 비느하스는 잔인하게 시므리를 죽였습니다. 죄를 단호하게 창으로 찔러 죽인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의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적 죄는 분별하고 증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동시에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과 공의의 성품을 이해하며, 우리를 유혹하는 성적 문란이나 우상숭배에 단호히 "No"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편재한 기복신앙, 세속주의, 하나님을 자기 편한 모습으로 만들어가는 우상숭배를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그런 유혹 받고 있거나 혹은 그 죄에 이미 빠져있다면 우리는 그 죄를 단호하게 창으로 찔러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므리의 예처럼 나도 죽고 주위의 많은 사람을 죽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최소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미디안 여인과 동침하는 시므리 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러분 스스로도 한번 생각해 보시죠. 어쩌면 그것이 첫 단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가 시므리도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을 회개해야 하는 것이 첫 단추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시므리인것을 내가 괴수 중의 괴수 인것을 깨닫는 것. 그래서 그 죄를 창으로 찔러 죽이려는 질투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믿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내 죄를 위해, 시므리 같은 흉악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돌아가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간절히 따르며 험한 세상에서 유혹과 싸우면서도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맺겠습니다
시므리는 세상을 쫓다 죽었습니다.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축복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인지요?
참고
- 바알은 당시 가나안 지역의 다산 신 중에 하나로, 다산 신은 (a god of fertility) 풍요의 신으로 풍요, 다산과 더불어, 성 (sex), 임신, 분만과 관련된 우상입니다. 가나안 지역은 성경뿐 아니라 다른 역사 자료에도 성적으로 매우 문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는데 바알의 종교 행태와 연결하여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습니다.
검색: 민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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