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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9 (회개의 기도)

Good4Joy

서론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교회

한 선교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기독교 인구 중, 명목상 교인 (Nominal Christian), 믿는다고 하고 종교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진정으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는 않는 이가 60% 라했습니다. 우리가 어느 개인의 믿음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숫자가 놀랍지 않은 것은, 오늘 교회가 도덕적으로 보나 영적으로 보나 세상과 별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교회 리더들의 불미스러운 사건 뉴스는 흔하고, 교인들의 이혼율, 인터넷 포로노 중독 숫자는 세상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이단은 물론이고, 자유신학, 종교다원주의, 기복신앙이 팽배하고, 교인들은 세상에 나가 예수님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건물에서 일주일 한두 번 종교 활동하는 것이 더 중요한 종교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예수님이라는 간판은 걸었지만, 세상 복을 비는 우상 숭배, 다른 종교와 별다를 바가 없어보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과 에스라의 회개 기도의 장면인데, 함께 묵상하며 저와 여러분 그리고 코너스톤에 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겸손하게 찾아 보겠습니다.

에스라서 소개

에스라와 느헤미야 이 두책은 처음에는 한 권의 책이었는데, 2세기경 에스라 1, 2로 나눠었고 4세기경 오늘 처럼 에스라와 느헤미야로 제목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이 두 책은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며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두 책에는 3번에 걸친 귀환과 사역이 소개되는데, (1) (BC 537 - 516) 스룹바벨의 지휘 아래 귀환하여 무너졌던 성전 재건축 (1-6장), (2) (BC 458 - 457) 에스라는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 개혁 (7-10장), (3) (BC 444-432)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무너졌던 성벽을 재건합니다.

그러면, 에스라서 시작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스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70년 포로 생활도 허락하셨고, 바사 즉 페르시아 왕을 사용하셔서 백성의 귀환도 시작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모든 것에 주관자 되시고 통치하신다 선포하며 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1차 귀환이 시작되었고, 성전 재건 후, 7장부터 에스라의 2차 귀환 이야기입니다. 7장에 보면 에스라는 (5) 대제사장 아론의 자손이고, (10) 말씀을 잘 공부하고, 지키고, 가르쳤고, (11) 율법학자 겸 제사장이었습니다. (9)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6), (28) 에스라는 하나님의 권능과 총애를 입은 인물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돕고 있는 에스라가 (8장) 귀환하고,

본론 (본문)

이스라엘의 죄와 에스라의 반응

(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이 일 후에 (8:31) 에스라와 일행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하고, (33) 바벨론에서 가져온 은과 금을 제사장에게 주어, (35) 하나님께 제사 드렸고, 그리고, (36) 아닥사스다왕, 에스라의 귀환을 도왔던, 왕의 조서를 관리들에게 넘기는, 이 일 후에, (1) 방백들 즉 리더들이 에스라에게 보고하는데,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have not separated themselves) 즉 이스라엘이 이방 사람들과 분리된 삶을 살지 않았다고 합니다. (2) 거룩한 자손 "거룩"은 분리된, 죄와 분리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죄와 함께는 물론이고 죄를 쳐다보지도 못하신다 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스라엘은 거룩해야, 죄와 분리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족속 여인과 결혼하며 죄와 분리가 아닌 죄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제사 드리고 종교 활동을 했지만, 실질적인 삶은 거룩하지 못한 것이죠. 하나님 만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세상도 따라며, 우상도 섬겼습니다. 그런데, 백성은 물론이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 즉 영적 리더들이 더욱 으뜸이 되어 가증한 죄를 짓는다고 합니다.

이 보고를 들은 에스라는, (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옷을 찢고 머리털을 미는 것은", 유대 사람들의 큰 슬픔이나 정신적 괴로움의 표현입니다. 애통하고 괴로워하며, 기가 막혀 앉으니 (sat down appalled, 간담이 서늘해서, 끔찍해서) 말씀을 잘 알고 지키던 에스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스라엘의 가증한 죄를 간담이 서늘하게 두려워 합니다. 그렇게 앉아 있는데, (4) 떠는 (trembling) 자 에스라 처럼 죄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에스라에게 모여들고, 에스라는 두려워하며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앉아 있습니다. (5) 근심 중에 일어나서 (I rose from my fasting, (NIV) I rose from my self-abasement 자기 비하, 겸손), 자신을 낮추는 금식 후에, 에스라는 찢어진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듭니다.

회개의 기도

(6) 말하기를 (saying, (NIV) prayed) 기도를 시작하고, 15절까지 회개의 기도 내용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ashamed and disgraced) 죄악이 뼛속 깊숙이 사무쳐 하나님 목전에서 가증한 악을 행하는 부끄러움을 표현하며, (7) 조상들이 죄를 짓고,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유다는 바벨론 멸망하는, 하나님의 심판 후 다시 또 그들은 죄를 행한다고 고백합니다.

(8)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거룩하시고,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은, 조상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은혜를 베푸셔서, 다 심판하셔도 되는데, 얼마를 남겨 두어 (remnant, 남은 이들이) 포로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박힌 못 거처를 든든히 하는 텐트의 못처럼 남은이들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눈을 밝히사 "눈이 밝아진다는" 활력과 기쁨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여 살아남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성전이 재건되는 은혜를 입고, 활력과 기쁨으로 구원의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 하나님을 세상에 널리 알리며 영광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남은 이로 남겨 두었는데,

(10)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15)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회개의 기도를 마치고 있습니다.

심판, 멸망, 포로생활, 귀환 후에도 이스라엘의 죄는 계속됩니다. 뒤에, 10장에 보면 에스라의 기도와 가르침으로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영적 개혁을 이룹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고, 다시 죄로 돌아간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기적의 구원으로 잠시, 율법이나 심판으로 잠시 좋아지지만, 계속 죄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스스로 죄를 벗어날 수 없고 결국에는 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만, 예수님 보혈의 십자가로 만 구원 받을 수 있음을, 에스라 뿐 아니라 성경 전체가 증거하고 우리의 입술도 그렇게 고백합니다.

적용

왜 죄를 두려워하지 않을까?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죄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혀 앉아 있었고 떠는 이들이 그와 함께합니다. 그들은 죄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 세속화나, 기복신앙, 교회도 섬기고 세상도 따르는 명목상 교인이 많은데 우리는 그리 두려워하지 않아 보입니다.

(예화) 감기걸린 이와 악수 후 우리는 손을 씻는다.

우리는 육체에 병이 나고 심하게는 죽게 하는 바이러스를 두려워하여 매일 열심히 손을 씻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것은 어떻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손이 죄를 지으면 잘라버리라 눈이 죄를 지으면 빼 버리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그만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요? 인터넷에서 동영상 보며 음란한 생각을 했기에 눈을 빼야겠다 고민하는 형제를 보셨는지요?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전도 사명에 불순종하는 죄에 우리는 손을 자르듯 심각하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도 섬기는 교인이 많은데, 오늘 본문의 에스라처럼, 기가 막혀, 끔찍이 놀라, 두려워하며 회개하는 교회를 주위에서 보셨는지요?

우리는 왜 죄를 심각하게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둔다" 간지러운 귀를 긁어 주는 스승을 많이 둔다.

미국에서 아닌 전 세계에서 영적 리더로 가장 존경받았던 한 목사가 Larry King Live 토크쇼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가르치는 것은 다른 이들의 사명이고, 나의 사명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는 것이다." 교인이 듣기 불편해하는 하나님의 공의, 심판 빼고, 나는 교인들이 듣기 편한 것만 전하겠다. "긍정의 힘”으로 유명한 텍사스의 한 목사의 가르침이 떠 올랐습니다. 거룩, 공의, 죄, 심판, 회개, 제자도, 십자가, 고난은 빼고 은혜, 자비, 축복, 사랑, 듣기 편한 것 만을 가르치는 가르침이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한국의 한 신학대 총장은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복음서의 대사명이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교회가 전도 시키기 위해 나중에 넣은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런이는 신학교에서, 교회에서 무엇을 가르칠까요? 그 결과는 어떨까요?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CLD 교육을 받으면서, 여러 교회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권사님은 저에게, "교회에서 지옥을 언급하는 것이 좋지않다" 권면하셨습니다. 한 집사님은 "자신이 전도해야 하는지 몰랐다" 고백했습니다. 교회에 수십년 계셨고 집사라는 타이틀이 있으십니다. 교회는 교인이 듣기 편한 것 만 가르치고, 교인들은 적당한 가르침, 주위 사람이 적당히 인정하는 교회를 찾으며, 세상 논리적으로 적당하게 해석해 주는 스승을 많이 두며, 내 육이 편한 대로, 내가 좋은 것만 골라서, 하나님을 자기 편한 모양으로 만드는, 마치 우상숭배 같습니다.

예수님의 교회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오늘 오셔서 교회를 설립하신다면 그 교회에 얼마나 많은 교인이 모일까? 오늘 왠 만한 교회는 박사학위 없으면 담임 목사 안수도 못 받는다 했으니 목수 출신 예수님은 교회 면접도 못 보십니다. 그렇다면 개척을 하셔야 하는데, 그 교회는 편안한 의자, 교회 건물도 없고, 아이들 프로그램, 행복한 가정 세미나가 없습니다. 좁은 문, 험한 길, 부모 자식 전대 다 버리고 따라야 합니다. 거지처럼 돌아다니며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쫒고, 전도하고, 그러면서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조롱, 피박 받습니다. 그 교회, 누가 갈까요? 더 나아가 예수님은 부패한 교회의 강대상을 뒤엎어 버리시고, 간지러운 귀를 긁어주는 목사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 욕설을 퍼부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회개할까요 아니면 바리세인들처럼 예수님을 이단이라 몰아 붙일까요? 저와 여러분은, 과연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간지러운 귀를 긁어 주는 목사들과 함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까요?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거짓 가르침이 많고, 많은 이들이 그런 가르침을 따른다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주여 주여 하지만 나는 종교 활동하는 너를 모른다 하신다 경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닌, 자기를 사랑하며,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간지러운 귀를 긁어 주는 가르침을 따르며,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스라엘 처럼,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도 섬기는, 명목상 교인, 세속화, 기복신앙 심각하다 사려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 우리 신앙은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믿음은 진실한 것입니까? 성경은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후 13:5)

결론

에스라의 회개 기도 문을 묵상하며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우리" 였습니다. 기도가 시작되는 6절부터 15절까지 28번이나 쓰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는 "우리"가 회개해야 한다 했습니다. 에스라는 나는 죄를 짓지 않았으니, 나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함께하니, 나는 구원 받았으니 상관없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교회 명목상 교인이 많은 것, 기복신앙에 빠져 있는 것, 아이들이 교회 떠나는 것, 남의 책임이 아니고 다 우리의 책임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 했습니다. 에스라처럼 우리도 제사장으로, 우리의 맡겨진 영역에서 영적 리더로서 회개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옷을 찢고, 기가 막혀, 끔찍히 놀라 두려움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릎 꿇고, 손을 들어 하나님의 자비를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강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진실된 회개로 영적 개혁, 진정한 영적 부흥 이루는 저와, 여러분, 코너스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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