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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1 (나의 피난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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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2016/9/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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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시편 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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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0일 (화) 02:19 판

  • 날짜: 2016/9/23 (금)
  • 본문: 시편 71:1-16

도입 (간증, 질문)

저는 나이 마흔이 넘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너무 감사하고 좋습니다. 그런데 좋으신 하나님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좋치 않았을까 생각했고 나이가 들어 육체와 정신이 허약해지면 하나님을 위해 과연 무얼 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기도 했습니다.

시편 71편은 시편 기자가 나이가 들어 약해지는 것을 보며 위협하는 적들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도와 찬양의 내용으로, 제목이 쓰여있지 않지만, 앞에 70편과 연결하여 다윗이 그의 말년에 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참고하고 있는 NIV Study Bible에 의하면 시편 71편은 주요 테마인 소망을 잘 표현하고 있는 14절을 전후로 3개 씩 모두 6개의 stanza (시구)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1-16절로 4개의 시구를 포함하고 있는데, 본문을 통해 시편 기자의 소망이 무엇이고, 그 소망의 대상은 누구인지, 왜 그분에게 소망을 기대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소망의 열매는 무엇인지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함께 시를 음미하며 그 소망을 묵상하며 은혜받는 시간되기를 기원합니다.

본문

하나님의 도움을 청원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2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3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4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악인의 손 곧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grasp)에서 피하게 하소서

(2) 주의 의 (righteousness)라 하는데 (2)절에서뿐 아니라 15, 16, 19, 24에도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의를 기뻐 찬양하고 있습니다. (3) 바위, 반석 (rock)은 다윗은 광야로 피신하며 자주 바위에 숨어 지내고 있었기에 피난처로서 든든한 바위를 하나님의 보호로 종종 비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3)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give the command to save) 하는데 "명령하신"이라는 이 히브리 표현은 구약에서 여기와 시편 44:4 딱 두 곳에만 쓰였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주권과 그를 향한 시편 기자의 강한 믿음이 느껴집니다.

시편 기자는 도움을 청하고 있는데, 그가 구하는 도움 즉 소망은 무엇입니까? (2) '건지시며 (rescue)', '풀어 주시며 (deliver)', '구원하소서 (save)' (3)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4) 피하게 하소서 하며 시편 기자는 악인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것 즉 구원을 청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 뿐 아니라 악한 세상과 매일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에게도 구원이 필요합니다. 또한, 죄에서 혹은 죄의 유혹에서 우리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유혹이나 죄악이 없는 천국에서의 삶이 우리에 궁극적인 소망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희망이었음

5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6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7 나는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 같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8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6)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창조주로 그를 지으셨고 그는 그 지어진 목적 즉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아감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7)을 영어 성경은 버젼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데, 7절의 두개의 어절을 'but'으로 연결하는 번역과 'because'로 연결하는 번역,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었습니다. 'but'으로 한다면 앞 어절은 부정적인 의미이니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한다고 하는데 인생이 왜 저렇지 하는 이상한 징조로 설명이 되고 'because'로 연결한다면 저런 고난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좋아 보이네 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11과 20절과 관련해서 'but'으로 하는 해석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첫 번째 시구에서 시편 기자의 소망은 구원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구원의 소망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5)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하나님께서 당연히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7) 피난처 (Refuge): 영어로는 같은 단어가 (1) '피하오니', (3) '피하여' 에 3번이나 쓰며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자신이 피할 수 있는 구원자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노년에도 계속 도움 주실 것을 기도

9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10 내 원수들이 내게 대하여 말하며 내 영혼을 엿보는 자들이 서로 꾀하여 11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은즉 따라 잡으라 건질 자가 없다 하오니 12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13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들이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 하시며 나를 모해하려 하는 자들에게는 욕과 수욕이 덮이게 하소서

(11)은 어려움에 처한 시편 기자를 어떻게 조롱하는지 악인들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고난을 지날 때 악인들은 "저것 봐! 하나님 믿는다는데 저런 꼴을 당했어." 놀리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람들을 믿음에서 때어 놓으려 노력합니다. 이런 악인들에게 시편 기자는 (12, 13) 하나님께서 정의를 베풀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13) "욕과 수욕 (scorn and disgrace)"로 악인들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시편의 이런 기도들은 적용이 애매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정의로운 심판을 그리고 그 죄와 악행의 뒤에 있는 나쁜 영에게 날카로운 근절을 구해야겠지만 죄인은 사랑해야 하는 것이 바른 적용이라 생각합니다.

앞에 두 시구를 통해, 소망은 구원이고 그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찾아 볼 수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소망이 왜 하나님께 있을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고 주권자라는 이유 만으로 그 분께 소망이 있다면 그 소망은 강제적인 것이 될것이고 심지어는 그것은 소망이 아닌 절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좋으시기에, 시편 기자의 표현으로 한다면, 그 분이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의로운'는 영어 성경에는 'righteous' 혹은 'just'로 해석하고 있는데 원문은 '곧은', '동일한'이라는 뜻의 단어이고 '바른'과 의미가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라는 것은 그의 행함은 언제나 바르고, 꼭 필요한 것이며, 그리고 편파와 편견없이 일관하여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의로우심으로 하나님은 그분이 하신 약속에 신실하시고, 약한 이에게 보호, 억눌린 자에게 정의(redress), 그리고 갈급한 자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반면 그 분의 거룩함에 어울리지 않는 죄나 악에는 공정한 심판을 행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좋으시다는 의미는 의인에게는 진짜 좋은 것이고 악인에게는 반대의 의미가 되는 것이죠.

"만일 의롭지 않은 세상이나 사람에게 의지해야 한다면 얼마나 소망이 없을까요?" "만일 하나님께서 의로우시지 않다면 우리가 의를 행하는 것이 어떤 가치나 의미가 있을까요?" "만일 순종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보상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가 의를 행하고, 복음을 전하며, 박해받으며 과연 기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항상 바르시기에, 의로우시기에 우리의 소망이 그 분께 있는 것이 가장 확실한 것이라 믿습니다.

인터넷의 한 자료는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 만을 너무 강조하여 가르치고 있어 교인들이 순종이나 희생이 아닌 이기주의 적인 신앙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자료는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의를 훨씬 더 많이 가르치고 있다해서 참고 삼아 세어 보았습니다. 성경 전체는 아니고 시편 1-10편까지 찾아 보았는데, 하나님의 사랑(love)이 2번 그리고 의(righteous)는 7번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자료의 평가가 모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의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 믿음에 매우 유익하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죄와 예수님 십자가가 의미하는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잘 이해하면 감사할 것이고 그 감사가 자발적인 순종을 이끌어낸다면 건강한 신앙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기에 시편 기자는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고 그 의로우심이 반석 같기에 그 소망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확실한 소망의 열매는 무엇일까요?

전하리이다

14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15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16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

(14) 주요 테마이고 15-16 4번째 시구의 일부로 시편 기자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고 그분의 구원, 행하신 일, 그리고 의를 전하겠다 고백합니다. 구원이 소망이고, 소망이 의로우신 하나님에게 있기에 그 소망이 이루어 질것을 확신한다면 그 열매는 당연히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자연스럽게 자랑으로 이어질것입니다.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종일 전하리이다",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 확실한 소망의 열매입니다.

한편, 구원의 소망 되시는 하나님을 계속 찬송하겠다 고백하고 있는 시편 기자는 젊은 청년이 아닌 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의로우신 하나님 만을 전하겠다고 한 노인은 은퇴 후의 편안한 노년을 보내는 것이 아닌 그의 생명을 노리는 적들이 둘러싸고있는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적용 & 결론

나이가 들어가며 우리는 작은 글이 잘 보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기억력, 몸이 조금씩 허약해지며 연약한 몸과 정신으로 하나님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노후 대책에 안달하거나, 자기 고집이나 불평이 늘어가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바울이 육체의 가시가 떠나가게 3번 간구했는데 예수님께서 거절하십니다. 고리도후서 12:9-10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병이들고 연약해지는 것은 가시가 하나씩 더 늘어가는 것이고 소망이신 하나님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은혜로 더 들어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도 그리고 생을 마칠 때까지 의로우신 하나님께 구원의 소망을 더 굳건히 하며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을 기뻐 찬송하며 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참고

71편의 개관과 목적

시편 71편은 왕이 나이가 들 때 이 약해짐에 적들이 보고 위협이 있을 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 제목이 쓰여있지 않지만 70편과 연결하여 다윗이 그의 말년에 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주제 테마: 소망 (14절)
  • 1-4: 하나님의 도움을 청원 (The initial appeal for God's help)
  • 5-8: 하나님께서 언제나 희망이었음을 고백 (A confession that the Lord has always been his hope)
  • 9-13: 노년에도 계속 도움 주실 것을 기도
  • 15-18: 찬양을 맹세
  • 19-21: 주님께서 여전히 희망 (그의 모든 어러움 앞에)
  • 22-24: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며 찬양하리라 맹세

관련 문서

검색: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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