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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2 (의인의 복)

Good4Joy
Good4joy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7월 14일 (토) 04:03 판

서론

구약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얼마 전 옛 이웃의 한 할머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다녀 왔는데, 할머님이 유대인이라서 유대식으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랍비의 인도로 시편을 교독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하나님과 천국의 복을 거론했습니다. 이미 오신 그리스도 주 예수님 믿지 않고,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는, 구약 시대를 살아가는 분들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구약 가르침의 적용

오늘 본문은 의인을 찬미하며 의인이 누리는 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묵상하며,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구약의 가르침을 어떻게 해석 적용할까 고민했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은 오늘 본문처럼, 의인에게 이 땅에서의 물질적 풍요, 자손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요셉은 하나님 축복받으며 땅에서 물질적 부유함과 자손이 풍성함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제자가 되어 자신을 따르겠다고 하는 서기관에게 (마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물질적 풍요가 아닌, 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또한, 부모, 자식, 전대를 다 버리고 따라야 한다 하셨고, (눅 8:21)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며 육적이 아닌 영적 관계, 믿음 공동체, 교회를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결혼 않고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구약의 물질이나 자손의 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2002년 판 NIV Study Bible 설명에 의하면, 이 땅에서 물질이나 자손의 축복의 약속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진 것이라 합니다. 마치, 구약의 제사나 음식에 대한 규례들이 당시 이스라엘에 적용되고, 오늘날 적용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자손이나 물질적 복이 아니라면,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인의 복은 무엇일까요? 먼저, 의인은 누구입니까?

본론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성경은 세상에 의인이 없다 했습니다. (롬 5:1)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믿음으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습니다. 우리의 선행,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의인이 됩니다.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롬3) 세상에 의인이 없는 것 뿐 아니라, (롬 3: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그런데, 의인은, 여호와를 경외 (who fears the Lord), 즉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여기서 두려워 한다는 것은, 악한 것에 느끼는 무서움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사 6:5)",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깨닫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5:8)" 고백하는 장면들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경외 한다는 것을 단순히 존경하는 마음이라 설명하기는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죄와 분리된, 죄를 쳐다보지도 못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의 죄 때문에 아들이 죽기까지 하신 하나님. 죄 많은 우리 입술이 표현하기 어려운 완전하신 공의와, 유한한 우리의 지혜가 상상하기 힘든 완벽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깨닫고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 하나님의 고귀하심과, 자신의 더러운 모습을 보며, 그 죄에 대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그 분의 자비 만을 바라보는 마음. 그래서 눈물로 회개할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심령. 그것이 제가 표현할 수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것, 지혜의 근본, 회개, 의인의 기본이라 믿습니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워하는,

의인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1)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고, (시 1) 복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했습니다. 계명, 율법, (요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며 예수님을 말씀으로 소개합니다. 계명, 율법, 말씀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계시 즉,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아 갈 수 있도록 보여 주시는 그 분의 형상이라 이해합니다. 그러니, 계명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고, 율법을 사랑한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말씀을 사모합니다. 성경공부 하지 말라고 해도 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더 알아 가려 노력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은 세상이 추구하는 지식의 유희는 아닙니다.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 곧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죠. 세상은 자기 육이 좋은 것, 계명, 율법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추구합니다. 그런데, 의인은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주님께 종이되는, 완벽한 하나님 사랑에 구속되는, 순종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러니 기뻐 순종하며 인격이, 삶이 변합니다. 자기 사랑에 빠져 있던 이가, 이웃을 사랑하고, 두려움으로 의를 지키지 못했던 이가, 의를 행하기 시작합니다. (4, 5, 9) 가난한 이를 긍휼히 여기며 선을 행하고, 약한 자를 보호하며, 악한 자 편에 서지 않으며, 정의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큰 의는 무엇입니까? 구제, 사회 정의 구현보다 훨씬 더 값진 선행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근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십자가, 바로 복음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선행이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상 명령으로 주셨습니다. 신약시대 의인들은 성령님의 권능을 받고, 하나님의 의, 복음을 전합니다. 주님 명령에 순종하며 진정한 생명 주는 복음, 가장 큰 선행을 하는 것이죠. (9)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 풍성한 삶을 주는 복음을 나누어 줍니다. 은혜로 값없이 받은 것이니, 값없이 풍성히 나누어 줍니다. 그러며 신약시대 의인들은, 하나님의 의, 복음 때문에, 고난 겪습니다. 복음의 진보를 막으려는 사단의 여러가지 방해, 고난에도 의인은 타협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의,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겁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기가 사랑하는 주님 따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죠.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워하는 의인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의인의 복

그렇다면 신약시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인의 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 복음 때문에 핍박 받는 성도의 복은 무엇입니까? (빌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신약의 의인, 바울은 물질 소유에 구애받지 않고 자족합니다. 그리고, (딤전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 바울은 디모데를 참 아들 (my true child in the faith)로 부릅니다. 디모데 뿐 아니라 디도, 실라, 에베소의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 빌레몬, 데살로니가의 아리스다고 (행 19:29) ... 바울은, 육신의 자손이 아닌, 영적 자손이 풍성합니다. 당시 뿐 아니라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저와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치며 풍성한 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인의 가장 큰 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좋으신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복이라 믿습니다. 계명, 즉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크게 즐거워하며, (4)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흑암 즉 힘든 상황에도 함께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 의인에게 가장 큰 복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니,(6) 흔들리지 아니하고, (7)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고 거짓, 유혹, 위협에도 (8)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복음을 전하다 메를 맞고 협박을 당한, 사도들은 (행 5:41)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합니다" 의인은, 물질이나 눈에 보이는 복이 아닌, 세상 즐거움이 아닌,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 없는, 좋으신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복을 누립니다. 그리고, 한 때 있다 사라지는 세상 복들 처럼 유한하지 않고, (6) 의인은 영원히 기억됩니다

전도 여행에서 성령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눅 10:20)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십니다. 성경은, 세상 의인의 이름이 아닌, 베드로, 요한, 스데반, 누가, 마태, 바울 ... 하나님의 의, 복음 전도자, 성도, 믿음의 의인들의 이름을 풍성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경외하며, 사랑하며, 주님 뜻대로 행한 의인의 이름은 생명책에 영원히 남습니다.

(9)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 즉 그의 품위 품격이 영광스럽게 나타납니다. 창조주이신 존귀한 하나님의 영광을 피조물이 감히 함께 나누는, (벧후 1:4)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의 복을 누리는 것이죠. 미움, 오해, 죄악, 분쟁, 두려움이 없고, 대신 사랑, 이해, 선, 평화, 기쁨으로 가득한 천국에서 주 중에 주, 만왕에 왕, 완벽하신 통치자,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영화로운 복을 누립니다. 할렐루야.

악인은 망합니다

반면, (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 악인은 망합니다.그렇다면, 악인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가 악인입니다. 세상에서 볼 때 아무리 선해도, 세상에서 무슨 공적을 쌓았어도 예수님 믿지 않으면 악인이고, 예수님 통하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구약시대를 살아가는 유대인분들 예수님 믿어야 합니다. 이 천 년 동안이나 이어지는 천주교의 선행으로 얻는 구원 - 자신이 이룰 수 없다는 것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만 믿어야 합니다. 오늘 교회에 팽배한 기복신앙,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제자도가 아닌 값싼 복음, 행함 없는 죽은 믿음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해왔으니까." "남들도 이렇게 하니까"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오늘 교회 열매 좋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단 거짓 가르침 많습니다 500년 전, 종교 개혁자들이 당시 교회 가르침과 비교하여 성경 말씀으로 돌아갔듯, 우리도 오늘 교회 문화나 전통이 아닌 예수님 가르침으로 우리 신앙의 모습 경외함으로 두려움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믿습니다.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잘못된 믿음으로 천국이 아닌 지옥에서 눈을 뜬다 사랑으로 경고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좁은 문 험한 길이 아닌, 멸망으로 가는 넓은 길 택한다 하셨습니다. 자기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두고, 간지러운 귀를 긁어주는 거짓 가르침 따르며,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악인이고, 악인은 이를 갈면서 소멸됩니다

맺겠습니다

유대인 할머님의 장례식 후 아드님을 만났는데, 그 아드님이 얼마 전 예수님을 믿었고, 할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 믿으라 권면했다고 합니다. 할머님께서 마지막 눈을 감으시기 전, 주님을 영접했을 수도 있겠다 희망이 생겼습니다. 오늘 교회 모습 보면 참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복음주의 목사님을 리더로 세우는 SBC, 타협하지 않고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고, 회개를 외치는 목사님들, 하나님 경외하고, 사랑하며, 기쁨으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의인들, 예수님 믿는 형제 자매 보면 희망이 있습니다. 참 감사하고 도전과 위로가 됨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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