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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8 (비록 피곤하나)

Good4Joy
Good4joy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4월 10일 (화) 02:14 판
  • 본문: 사사기 8:1 -12 (사사 기디온의 전쟁)
  • 날자: 2015/9/18

도입 (간증, 질문)

사사기의 순환 패턴인 우상숭배, 징벌, 사사를 통한 구원, 그리고 다시 우상숭배의 사이클이 이어지는 가운데 6장부터 이스라엘은 미디안 등 주변 국가들에게 약탈을 당하고, 궁핍함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6),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큰 용사(12)여" 하시며 부르십니다. 사사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300명의 용사와 함께 7장부터 적군을 (7:12) 무찌르며 큰 승리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8장은 전쟁이 마무리되어 가는 상황입니다. 설교의 제목은 4절에 있는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로 정했습니다.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본문

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하나로 기드온이 속한 무낫세과 함께 요셉에서 나온 두 지파 중 하나입니다. 7장에서 기드온은 미디안과 전투에서 큰 승리를 했고 7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에브라임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과 협력하여 적군의 잔병들을 무찌르며 승리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사람들이 왜 전쟁의 처음부터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냐고 기드온에게 크게 싸움을 걸어옵니다. 적군과의 전투 중인 긴박한 상황인데 에브라임 사람들의 이 같은 이기적인 모습에 저 같았으면 "지금 때가 어떤데 너희 밥그릇 챙기려 하느냐"며 화를 내었을 텐데 기드온의 반응은

2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그들의 끝물 (gleanings, 그리닝스) 즉 추수하고 남은 포도가 기드온이 속한 아비에셀 부족의 맏물 (harvest) 즉 정식으로 추수한 것보다 좋고 미디안 리더인 오렙과 스엡도 너희가 잡지 않았느냐 하며 그들을 도리어 칭찬하며 세워 줍니다. 사사 기드온은 적과 전쟁 중 이스라엘이 내분으로 갈라지지 않고 연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지혜와 자신의 감정을 control 하는 절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3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기드온은 지혜와 절제로 유순한 대답을 할 수 있었고 그것은 에브라임 사람들의 노를 풀게 했습니다.

잠언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순한 대답으로 내분의 위기를 막은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적 미디안과의 전투를 계속 이어갑니다.

4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exhausted yet keeping up the pursuit) 5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노라 하니

기드온과 용사들은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포기하지 않고 요단 강을 건너 동쪽 숙곳 (Succoth, 쉼터), 8절에 브누엘 (Peniel, 하나님의 얼굴) 쪽으로 추격을 이어 갑니다. 참고로, 숙곳은 야곱이 에서를 만나 헤어진 후 정착한 곳 (창33:17), 브누엘은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곳 (창32:30-31) 입니다. 기드온이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전투 중에 지치고 힘든 동족의 요청을 거절하고 심지어는 조롱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6 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세바와 살문나 손이 네 손에 있느냐" 당시에 전쟁에서 죽은 적군의 body count를 위해 머리, 표피, 혹은 손을 잘라 왔다고 합니다. 숙곳 사람들은 기드온이 미디안을 이길 것을 의심하였기에 세바와 살문나 즉 적군리더들이 이미 죽었느냐며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후에 미디안 사람들의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뒤에 8절에 브누엘 사람들도 같은 대답을 합니다. 피곤한 동족을 돕지 않는 숙곳, 브누엘 사람들은 이기주의이고, 비겁하고, 그리고 동족을 믿지 않고 사랑치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역하면서 이런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세상이 전도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당연히 예상해야 하는 어려움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코너스톤에는 그런 분이 않계시지만, 교인 중에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동료를 밎지 못하고 심지어는 전도를 비웃는 듯한 교인을 만날 때가 아닐까 합니다.

7 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이에 대해 기드온의 반응은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했던 그것과 사뭇 다르게 가혹한 징계를 예고합니다. 숙곳, 브누엘, 그리고 에브라임 사람들이 동족에게 죄를 짓는 모습을 보며 두 가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 우리도 죄인이기에 질투, 이기심, 그리고 두려움으로 알게 모르게 다른 성도들을 불편하게 혹은 시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 처럼 저도 제 이름이 알려지는 원하거나 성도분들께 내가 좀 잘 못 해도 용서해 주실 꺼야 생각하며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숙곳과 브누엘은 기드온이 예고한 것처럼 징벌을 당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뒤에 12장에서 또 비슷한 상황을 만들었고 그때는 사사 입다에게 4만 2천명이 죽음을 당하는 가혹한 벌을 받았습니다. 죄에는 결과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주위에 분들이 불편하지 않게 그리고 더 나아가 그분들의 사역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저희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들에게 화내고 징벌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럼 사사 기디온처럼, 사사 입다처럼 그런 사람들에게 가혹한 벌을 주어야 합니까? 그렇다면 아마 교회에 벌을 받지 않고 살아 남아있을 사람은 많치 않을 것이고 저는 가장 먼저 큰 벌을 받을 것입니다. 감사하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12-13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권면하니"는 영어로는 "answer kindly", 모욕을 당하면 축복하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그리고 비방을 받으면 온유하게 대답하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까?

누가복음 23: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창조주이시고 구원하러 오셨는데, 조롱하고, 채찍으로 때리고, 침을 뱉고, 죽이기 까지 한 인간들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용서와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커다란 용서는 예수님께서 사랑이신 하나님 되심을 그리고 저희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진정한 주님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사는 영어 성경에 judge라 해석하고 있지만, 원어에는 deliverer라는 뜻도 있다 합니다. 저희에 영원한 사사 즉 구원자되시는 예수님께서 박해하는 자를 용서하라 그리고 비방하는 자를 축복하라 가르치십니다.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육체적으로 지치고 피곤한 것뿐 아니라 동족들이 훼방하는 어려운 상황에도 기드온과 용사들은 포기하지 않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를 계속합니다.

12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진영을 격파하니라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는 적의 온 진영을 격파하고 끝까지 싸워 승리합니다. 우리도 세상과, 내부의 적과, 그리고 가장 크게 우리 안에 죄들과 계속되는 전쟁를 해야 하고 끝까지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마태복음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를 예언하시며 하신 이 말씀은 격려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힘든 말씀임을 고백합니다. 창, 칼, 그리고 보이는 적들과 싸워야 했던 기드온의 상황도 힘들었지만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과 싸워나가야 하는 우리의 상황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닙니다. 아니 더 힘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번 주일 목사님께서 예로 드셨던 "거짓 신들과의 전쟁", 물질 만능, 문란한 성생활, 이단, 이기주의, 바쁨, 육체의 약함, 온갖 악을 쏟아놓는 인터넷과 미디어, ... "overwhelmed"라는 영어 단어가 있습니다. "휩싸이다", "제압되다", 혹은 "어쩔 줄 모르게 되다"라는 뜻인데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느낄 수 있는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날 주위의 상황을 보면 overwhelmed 되어 힘들고 때로는 좌절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어떻게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견디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결론/적용

기드온의 승리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부분은 아니지만, 6:16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6: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을 그리고 300명의 작은 수의 병사를 택하신 것은 그들이 지혜롭고, 그들이 용맹스럽고, 그들이 인내하여 전투를 잘하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그들과 함께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기드온은 동족이 방해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수십만 명의 적군과 싸워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 승리 깃발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기디온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저희에게는 어떤 약속이 있습니까? 마태복음 28:19, 20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이십니다. 그 약속을 믿고 오늘도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끝까지 승리하며 그리고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기뻐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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