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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3 (회개 - 하나님의 자비)

Good4Joy
  • 본문: 누가복음 13:1 - 9
  • 날자: 2016/2/18

도입 (명목상 교인)

조슈아 프로젝의 한 선교 자료에 의하면 복음이 전해진 국가들의 총 기독교 인구는 2008년에 2.33B이라 합니다. 그런데 그 중 명목상의 기독교인 (Nominal Christian)에 인구가 1.35B이라 하는데 이는 총 기독교 인구에 60% 가까이 이르는 숫자입니다. 감히 우리가 남의 믿음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교인의 삶의 모습, 세상과 합한 교회, 가려운 귀를 긁어 주는 가르침 그리고 그 결과인지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며 그 통계를 좀 더 두렵게 생각해 봅니다. 저 자신도 "개가 그 토한 것으로 돌아가는 듯 (잠 26:11)" 믿은 후에도 쉽게 죄를 짖는 모습에 한탄하며 오늘 주제가 회개이기에 설교를 준비하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1) 누가 회개해야 하는가, (2) 회개치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3) 회개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 나누어 볼 수 있었고 결론으로 진정한 회개란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누가 회개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읽은 오늘 본문의 바로 앞 12장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고발하는 자에게 끌려갈 때 화해하라"는 예를 드시며 하나님과의 화해 즉 회개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셨고 오늘 말씀은 빌라도의 악행으로 제사를 드리던 갈릴리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건을 보고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큰 사고는 죄가 많은 이에게 내리는 벌이라 여겼고 당시 유대 랍비들은 "죄가 없는 곳에 죽음이 없고, 부당한 것이 없는 곳에 고통이 없다."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고통 받는 욥에게 친구 엘리바스는 (욥기 4: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라고 했고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맹인을 보며 그 불행이 부모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맹인 본인의 죄 때문인지 묻는 장면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실 고대 이스라엘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나쁜 일이 발생하면 무언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닌가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시며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4절에서도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지는 사고로 죽은 사람들도 예로 드시며 5절에 똑같은 문장을 사용하셔서 모든 사람이 회개해야 한다 강조하십니다. 복음을 통한 구원 신학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알려진 로마서의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희 모두는 죄인이기에 인격, 지위, 혹은 가정환경에 상관없이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가끔 어떤 분은 선하여 회개가 필요지 않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의는 헛된 것이고, 독선 (self-righteousness)이며, 그리고 우리의 의를 바탕으로 하는 신앙은 더러운 옷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이사야의 고백을 들어보시죠.

이사야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filthy rags)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우리에게는 선함이 없고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선함조차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저희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누가 회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예수님은 우리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다면,

회개치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은 망한다 하십니다

3절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그리고 5절에서도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망한다"는 영어 성경에는 perish로 끔찍하고 처참하게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셨는데 "이와 같이"는 빌라도의 악행이나 망대가 무너져서 당하는 어떤 형태의 죽음을 말씀하신다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회개를 하던 안 하던 육체적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니 단순한 육체의 죽음을 말씀하시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와 같이 망한다"는 영혼의 죽음 즉 하나님과 단절된 지옥의 영벌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많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또한 동시에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 34:7 죄를 면죄하지는 아니 하고 보응하리라 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영원히 죽고 그리고 그것은 끔찍하고 처참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인터넷에서 회개에 관련된 자료를 찾는 가운데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로 회개 관련 자료는 사랑, 은혜, 자비 등에 대한 그것보다 자료의 수가 훨씬 적고 조회한 사람도 적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흥미로운 사실은 회개에 대해 심각하게 가르치시는 목사님들에 대한 비난의 글이나 반응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분명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함께 가르치고 있지만 쉽고 편한 것으로 끌리는 것이 저희의 연약함임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만일 어느 목사님이 "하나님처럼 완벽하게 살아라", "끝까지 견뎌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모른다 하실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 알려라" 가르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완벽주의자, 교만, 혹은 이단으로 몰아가지는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들은 예수님의 말씀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중요시한다면 우리의 귀를 편하게 해 주는 가르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영원히 죽으니 회개는 심각한 삶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모두 회개해야 하고 (2) 회개하지 않으면 영원히 죽습니다. 그리고 3번째로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도 저희는,

회개의 충분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자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5-9절 까지는 포도원 주인의 예화입니다. 한 해석에 따르면 이 예화는 이스라엘을 향한 것으로 "3년"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나타내며 "한해 더" 와 "거름"은 사도들의 복음 전파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정확한 해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떠튼 저희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은 회개를 위해 하나님께서 충분한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베드로후서 3:9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많은 기회를 주신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 모든 기회를 다 저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더러운 옷을 입은 저 같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온갖 모욕과 고난을 받으시고 아버지와의 단절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 주셨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죽으심으로 그 기회는 만들어졌고 그것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저희 인간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입니다.

정리해 보면 (1)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회개해야 하고, (2) 회개하지 않으면 영원히 죽습니다. 그리고 (3) 자비의 하나님은 회개의 마지막 기회를 주셨습니다.

결론과 적용 (회개란 무엇인가)

그럼 회개란 무엇인지 살펴보며 결론으로 맺겠습니다.

고린도후서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Godly sorrow)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이루는 회개란 어떤 것일까요? 부족한 제가 그것을 잘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아 성경에서 보여주는 회개의 예를 보며 유추해 보았습니다.

잘못된 회개

먼저 잘못되고 회개에 실패한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A)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는 잘못을 깨달은 후 후회했지만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않고 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판 돈을 물리고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B)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나누어야 한다니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C) 그리고 자칭 의인인 바리새인에게 누5:31, 3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하셨습니다. 회개에 실패한 이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하나였고, 사회에서 선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그리고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며 제자 되기를 포기하는, 그리고 자신의 의로움의 교만함이 회개치 못한 이유였습니다.

진정한 회개

그럼 진정한 회개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A) 베드로는 얼마전 다른 제자들과 누가 제일 큰지 다투었는데 "마태복음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B) 키가 작아 나무에 올라 예수님을 보려 했던 사케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그가 부당하게 모았던 재산을 나누어 줍니다. (C)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가서 그리스도를 증거했고 (D) 복음을 박해하던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박해하던 복음을 증거하며 그것을 위해 목숨까지 받쳤습니다. 바른 회개는 자신은 선함이 없는 죄인인 것을 깨닫고, 돌아서서 하나님의 의에 길로 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예수님께 헌신하며 그분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게 했습니다.

NIV Study Bible (마태복음 3:2) 해설에 보면 "회개란 단순히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죄를 버리고 (forsake) 하나님께 돌아가는 삶의 철저한 (radical) 변화"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정의는 저희가 조금 전에 살펴본 진정한 회개의 예들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침

그럼 돌아가서 왜 명목상의 기독교인이 많을까요?

저는 그것이 철저한 변화의 진정한 회개가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회개가 없었기에 교인의 모임은 세상의 그것과 다를바 없고, 회개가 없었기에 교회는 세상과 동조하며 커뮤니티 센터로 변해가고, 회개가 없었기에 세상을 두려워하여 밖으로 나가야 할 복음이 교회 안에 만 머물고, 그리고 회개가 없었기에 불편하고 어려운 가르침 보다는 귀를 간지럽게 해주는 가르침으로 모이는 것이 저희의 현실이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회개해야 하는 죄인이고 회개치 않으면 망합니다. 오래 참으시고 자비하신 하나님께 통곡하며 회개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원합니다.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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