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공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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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에게 보여지는 계시 (요한계시록 1장)

성경의 모든 책은 유익합니다.

  •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다른 책들과 마찬 가지로 당연히 요한계시록를 공부하는 것도 유익하지만 여러 이유로 쉽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요한계시록 공부의 동기, 해석 방법 등을 정리하며 그 은혜를 나눕니다.

요한계시록 공부의 필요

아름다운 열매

요한계시록은 상징이 많아 해석은 물론이고 이해하는 것이 싶지 않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공부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봅니다.

물론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계시록(Revelation)은 감추려는 목적이 아니라 드러내려(계시, reveal)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예언의 말씀을 감추지 말고 알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 (계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성경을 가르치는 분들뿐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는 성경을 공부하고 분별해야 하는 특권과 책임이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베뢰아인들은 바울의 가르침이 바른지 성경과 비교하며 분별했습니다.

  • (행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요한계시록은 신약에서 유일한 예언서 일 뿐 아니라 성경 중 유일하게 읽으면 복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의 약속처럼 요한계시록을 공부함에 은혜가 풍성합니다. 저는 아직도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것으로도 많은 은혜 받았는데 그 중 가장 큰 은혜는 “동기(motivation)” 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예수님 재림, 새 하늘 새 땅 생각하며 제가 얼마나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천국을 소망하는 “동기”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동기는 두려움이나 혼란이 아닌 선명한 소망의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공부 방법

예수님의 재림 - Greek icon of Second Coming

두 가지를 권면합니다.

첫 번째는 성경의 다른 책들의 공부와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도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문맥(context)을 고려하며 공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인간의 죄, 그리고 예수님의 구속과 심판의 커다란 테두리를 염두에 두고 종말에 대한 다른 책들(다니엘서, 데살로니가서, 복음서 등)의 가르침과 연결하며 공부합니다.

두 번째는 인내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며 배우는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는 오래 참으심입니다. 그 성품 당신의 자녀에게도 요구하십니다.

  •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요한계시록을 공부함에도 그것을 적용하며 시간과 끈기로 공부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갑니다.

요한계시록 해석 견해

요한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네 가지 견해

요한 계시록에 대한 해석은 크게 네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 과거주의(Preterism): 계시록의 이야기를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해석
  • 역사주의(Hisotricism): 부분적 과거주의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연결하여 해석; 일곱 인을 떼는 것을 로마 제국의 붕괴, 황충을 이슬람, 짐승(적 그리스도)을 교황권으로 …
  • 미래주의(Futurism): 4장 이후를 미래에 일어날 사건으로 해석; 대 환란 후 예수님 재림, 천년 왕국, 최후의 심판 그리고 영원
  • 관념주의(Idealism): 모든 것을 상징으로 해석

비평

로마 제국이 망했는데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 지지 않았으므로 과거주의나 역사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구원 받는다(Universalsm)”, “예수님 외에도 길이 있다(Eccumanical)” 등의 잘못된 가르침들이 요한계시록을 과거주의로 해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휴거와 대환란

천년설 대환란설 비교

대환난이 시작될 때 그리스도께서 교회(성도)를 이 세상에서 데려가십니다.

  •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교회 휴거 후 (7년의) 대환란이 있습니다.

  • (욜 2: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요엘서의 이 말씀은, 마24:29, 막13:24, 눅21:25, 그리고 행 2:20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휴거 후 대환란 해석을, 신학적으로, 전환난설(Pretribulationsim)이라 합니다.

  • 후환난설 (Posttribulationism): 휴거 없이 교회가 대환란을 함께 겪는다는 주장입니다.

천년왕국 (Millennial)

재림과 대환란 후 예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이 땅을 천 년 동안 다스립니다.

  •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이렇게 천년왕국 전에 재림이 있다는 해석을 전천년설(Premillennialism)이라고 부릅니다.

  • 후천년설 (Postmillennialism): 천년왕국 후에 예수님 재림 설로, 오늘날이 천년왕국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은 예수님의 현재 승리를 상징합니다.
  • 무천년설 (Amillennialism): 아예 천년왕국이 없다는 해석입니다.

관련 문서

검색: 요한계시록

참고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