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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 (제자의 발을 씻으시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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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9일 (월) 16:42 기준 최신판

  • 설교 본문: 요한복음 13:1-11
  • 일자: 2017/2/22 (수)

서론

예수님은 12장까지로 대중 앞에서의 사역을 마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박해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위협이나 방해에 믿음을 포기했고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그들이 원하는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잘못된 종교 시스템, 기복 신앙, 세속적인 가르침이 성도를 혼란스럽게 하고 믿음을 빼앗으려는 현실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십자가 사건 전날 제자들과의 만찬 자리입니다. 공생애를 마치시며 예수님은 곧 세상을 떠나셔야 하고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 없이 어두운 세상에서 박해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위로 하시는데, 다락방 강화 (Upper room discourse)로 알려진 그 위로와 가르침을 요한은 13~17장, 다섯 장에 걸쳐 쓰고 있는데, 이는 21장으로 구성된 요한복음의 거의 1/4에 해당합니다. 양뿐만 아니라 십자가 사건 전날의 긴박한 상황에서 제자들에게만 하신 가르침이라 중요성의 무게가 더 느껴집니다. 다락방 강화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오늘 본문이 있는 13장에 형제간의 "사랑", 그리고 14, 15장에 길, 진리, 생명,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르치시고, 16장에 제자들이 박해를 당할 것과 도우실 "성령님"을 알려주시며, 17장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십니다. "사랑", "믿음", "성령님", 그리고 "예수님의 기도"는 당시 제자들에게 뿐 아니라, 오늘날, 같은 삶을 살아가는 저희에게도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오늘 아침 그리고 계속 소중한 말씀을 통해 은혜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중 오늘 본문은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본론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예수님은 전에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 몇 번 언급하셨는데 이제는 때가 이르렀습니다. 17:1의 기도에서도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하시며 십자가와 부활의 때를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곧 십자가를 지시는 힘들고 긴장된 상황에 계십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엄청난 고뇌와 유혹과 싸우시는 모습을 누가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이런 상상할 수 없는 힘든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을 위로하시고 가르치십니다. 자신의 안위보다는 이타적인 (selfless) 사랑의 선한 목자 모습이 존경스럽고 감사합니다.

참고로, "사랑 (아가페, 조건 없는 사랑)" 이란 단어가 요한복음 1~12장까지 8번 쓰였지만 다락방 강화 5개 장에서는 무려 31번 쓰며, 요한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랑을 강조하신 것을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물인 가룟 유다를 오늘 이야기 중간에 끼워 넣으며 사랑과 배신, 즉 사랑과 죄의 두 개의 테마가 전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마귀 (the devil): 악의 주체로서 (27) 사탄 (accuser: 고발자)으로도 쓰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이브를 유혹하듯 사탄은 유다를 유혹하여 예수님을 파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유다는 그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11)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4,5)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손님의 더러운 발을 씻는 것은 종의 일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하찮은 일을 예수님께서 하시기 시작합니다. 겉옷을 벗고 마치, 하늘 보좌를 뒤로하시고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을 비유하는 듯 겸손하신 예수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격이나 존귀를 완전하게 부인한 섬김의 모습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구원자로서 구원을 받아야 하는 이들의 발을,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십니다. 예수님의 겸손하심은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르는데, 바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빌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또는 본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셔서 어떤 피조물을 높이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겸손한 모습에 저는 한 피조물로서 머리 조아리며 경배하지 않을 수 없음을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께서 진정한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증거가 됨을 선포하고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섬김의 예를 보이시는데, 베드로 차례가 되었습니다.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You shall never wash my feet, (NIV) No, you shall never wash my feet) 완강한 거부의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그런 하찮은 일을 허용할 수 없다는 베드로의 존경심과 겸손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께서 (7)"이 후에는 알리라" 하셨는데, 그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는 경솔함과 예수님을 이래라저래라 조정하겠다는 죄성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하시는데, 상관 (share, NIV part), 즉 내 제자가 아니라 경고하시며 죄를 씻고 영이 깨끗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무서운 경고에,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예수님께 온 마음을 다 드리겠다는 순진하고 열정적인 모습과 동시에 "발뿐 아니라" 하며 예수님을 조정하겠다는 발언을 또 합니다.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사랑으로 인내하시며 계속 가르치십니다.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유대인들은 연회에 가기 전 목욕을 했고 샌들을 신었기에 연회장에 도착하면 더러워진 발을 씻었다 합니다. 그 관습을 비유한 이 말씀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에 이미 의롭게 된, 목욕한 상태이니, 매일의 죄에 대해 회개하는 즉 발을 닦는 것만 하면 된다 해석되고 있습니다.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 3, 10절도) "아신다"하며 요한은 예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며 모든 것에 주관자 되신다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도 끝까지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배반하고 팔게 될 유다에게 "알고 있으니" 회개하라며 계속 기회를 주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다를 강제로 회개시키지 않으십니다. 대신 자유의지를 통해 스스로 회개하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 문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저희가 강제로가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죄를 선택지 않기를 원하신다 믿습니다.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만일 죄에 대한 벌이 없다고 해도 죄를 짓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죄를 짓지 않겠습니까?

적용/결론

적용은 "종이 되자" 인데, 오늘 분문이 사랑과 죄의 두 개의 테마가 있으니 두 가지 "종이 되자"를 찾아 보았습니다.

형제에게 종이 되자

저는 종이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목사님을 비롯 여러 성도분이 겸손히 섬기시는 모습을 보며 참 좋고, 많이 배우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섬기시는 분들도 계속 섬기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특히, 섬기기 내키지 않는 분들을 대할 때 시험에 들거나 피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저희의 발을 씻기시는 상상해 본다면 우리가 낮아져 섬기기 좀 더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제 발을 씻기시는, 그런 엄청난 겸손과 사랑을 보이시며, 너도 이렇게 하렴 하시는 목소리를 기억한다면 섬김에 용기가 나지 않을까 합니다. 말씀 준비하며, 제가 몇 번 해봤는데 좀 더 용기가 났습니다. 완벽히 되지는 아직 않습니다. 형제에게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의에 종이 되자

우리가 만일 낮아져서 종이 되지 않는다면, 죄성 때문에 우리는 주인 된 모습으로 갈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래라저래라 하며 자신이 주인 된 모습이 있었고, 저도 삶의 여러 상황에서 내 의지대로 하겠다는 죄성을 봅니다.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하1:13),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회개하지 않고 죄의 종으로 죽어간 유다를 생각하면, 죄의 종으로 머무르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죄에 종이 되지 않으려면, 로마서 6장의 권면처럼 의에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의에 종이 되며, 거룩함의 유익을 알아가고, 공의의 하나님을 좀 더 이해해가며, 그러면서 더럽고 추악한 나의 죄성을 깨닫고 예수님께 납작 엎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며, 주님의 용서와 위로가 한량없음을 느끼고, 회개의 축복으로 평안함을 풍성히 누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맺겠습니다.

우리는 어둡고 험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며 박해받으며 살아가지만, 형제를 사랑하여 종이 되려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의에 종이 되려 하는 저희에게, 예수님은 기뻐하시며 이렇게 위로하실 것입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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